기업과 사회가 공존하는 길: CSV와 CSR 논쟁을 중심으로 알아보기
2014. 3. 14. 17:45
이 글은 임팩트스퀘어가 지속가능경영포털에 기고한 [공유가치 포커스.13&14]_기업과 사회가 공존하는 길 : CSV와 CSR 논쟁을 중심으로 알아보기를 옮긴 것입니다. 원문 PDF 파일은 지속가능경영포털 CSV 게시판에서 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와 마크 크레이머 FSG 대표가 공동으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1년 1-2월호에 기고한 아티클에서 공유가치(Creating Shared Value) 라는 개념을 제시한 이후로 3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까지 CSV는 경영 전략의 석학이 제시한 개념인 만큼 비즈니스 섹터에서 큰 주목을 받은 한편, 개념의 엄밀함과 깊이, 내용에 대해서 적지 않은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CSR을 실천, 연구해 오던 진영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는데(참고 아티클: IBR, "CSR 전문가가 바라보는 CSV: BSR Managing Director Laura Gitman 인터뷰") 그동안은 단편적인 기사로만 다루어졌던 CSV 비판이 얼마 전 처음으로 학술 저널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에 실렸다(Crane, A. 외, (2014), “Contesting The Value of The Shared Value Concept”,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56(2)).
“Contesting The Value of The Shared Value Concept” 아티클이 실린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2014. 56(2) 표지
저자들은 방대한 리서치와 분석 작업을 통해 공유가치 개념이 기업으로 하여금 사업 전략을 고려할 때 사회적 이슈를 고려하도록 설득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는 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얼마나 개념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나이브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공유가치의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쟁점들을 토론 형식으로 소개하도록 한다. 위 논문에서 소개한 내용 이외에 글쓴이가 논문을 읽으며 해석하고 비판한 내용을 첨가하여 “임팩트” vs. “스퀘어”라는 가상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토론을 꾸며보았다.
임팩트: CSV 아티클의 두 저자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는 ‘오늘날 자본주의는 포위당했다(The capitalist system is under siege)’라는 다소 장엄한 문장으로 운을 뗍니다. 공유가치라는 개념은 2011년 논문이 발표된 이후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비즈니스 섹터에서 중요한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였고, 글로벌 기업의 리더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이 개념을 접해보았을거라 생각됩니다.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CSV 는 기업과 관련된 사회 문제 안에서 기업이 사업 기회를 발견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죠.
스퀘어: 마이클 포터는 『경쟁전략(Competitive Strategy)』(1980),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1985), 『국가 경쟁우위(The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1990) 3부작으로 전략이라는 분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평가받는 학자인 만큼 논문은 발표되자 마자 주목을 받았습니다. 경영 전략을 고민하는 기업의 리더들을 향해 사회 이슈를 들여다보라고 포터 만큼 설득력 있게 말한 학자는 지금까지 전무한 거나 마찬가지였죠.
비난 1: "CSV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CSV is unoriginal)
임팩트: 네 저도 그 점에 대해서는 공유가치의 기여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학문적으로 공유가치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평가해 보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연구 결과를 저널에 기고하였는데 그 내용을 가지고 오늘 스퀘어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공유가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하고 싶습니다. 포터와 크레이머는 CSV를 새로운 컨셉인 것처럼 소개하지만 근간이 되는 주요 전제들은 이미 CSR, 이해관계자 매니지먼트(stakeholder management),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 쪽에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된 결과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이라고 보이는데, 두 저자들은 이 고리를 인정하지 않고 CSV가 완전히 새로운 것인 듯 이야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오히려 그 관련성을 인정하기 보다 CSR의 입지를 깎아 내림으로써, CSV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 같아요. 특히 사회적 책임과 기업의 비즈니스와 연결 고리를 찾아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몇 십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온 CSR 영역에서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데도 말이죠. 특히 1970년대 부터 CSR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키면서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은 힘을 얻기 시작했고, 전략적 CSR에서는 핵심 비즈니스 활동을 지원하면서 편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CSR을 ‘외부 압력에 대한 수동적 반응’으로 그 범위를 한정시키고 있어요. CSR 이외에도 Jed Emerson의 블렌디드 밸류(blended value),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 프라할라드 교수의 BoP(Bottom of Pyramid) 논의를 살펴보면 CSV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바를 이전부터 먼저 제시하고 있어요. 하지만 CSV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CSV는 새로운 개념을 확립하는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나이브한 수준에서 그 논의가 머물고 있다고 봅니다.
스퀘어: 저도 CSV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임팩트스퀘어에서 지속가능경영원에 기고한 "공유가치인사이트(4): 공유가치창출 전략은 새로운 것인가?"라는 글에서도 이 점을 밝히기도 했죠. 그 글에서 역시 전략적 사회공헌이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과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CSV와 유사한 논의를 던진 것 같기도 하며, BoP 개념은 마이클 포터가 공유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제시한 ‘상품과 시장을 재인식’하라는 논의에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네슬레는 CSV 논문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를 “Creating Shared Value” 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하였죠. 이러한 점에서 공유가치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며 포터는 경영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사회 이슈를 바라볼 수 있도록 프레임을 제공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두고 싶은 한 가지는, 결코 전략적 CSR과 CSV를 연장선상에서 동일한 개념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임팩트: 전략적 CSR에서 최근에 진행된 논의 역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연결점을 찾고 증명하는 데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점에서 전략적 CSR과 CSV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 전략적 CSR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개념이 CSV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퀘어: 전략적 CSR이 점차 윤리 경영, 사회 공헌, 법령 준수 등이 기업의 비즈니스와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이동해 왔지만, 거기서 이야기 하는 사회적 밸류와 경제적 밸류와의 관계는 ‘기업이 윤리적 책임을 다하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어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와 같이 간접적인 수준에 머물렀어요. 상관관계(correlation)는 증명할 수 있어도 둘 사이의 인과관계(causality)는 보여주지 못했죠. 그리고 비즈니스 밸류 역시 이윤(profit)을 기준으로 측정하기 보다는 더 넓고 간접적인 지표를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전략적 CSR이 기업의 ‘전략’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CSV는 쉽게 말해서 기업이 원래 해 오던 대로 돈을 벌려고 하는데 어떻게 돈을 벌까를 고민하는 와중에 기회로 인식할 수 있는 요소 중의 하나로 ‘사회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 사회 이슈와 이윤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하는 것이죠. 저도 CSV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해관계자 관리, 전략적 CSR과의 차별성은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난 2: "CSV는 사회적 목표와 경제적 목표 사이에 있는 긴장 관계를 무시하고 있다"
(CSV ignores the tensions between social and economic goals)
임팩트: 저는 비교적 학문적으로 비교가 많이 되어 있는 이해관계자 이론, 전략적 CSR을 CSV에서 들여다보지 않음으로써 CSV가 매우 나이브한 수준에서 논의되는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고 보는데 안타깝네요. 가장 단적으로 포터와 크레이머는 사회적 목표와 경제적 목표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긴장 관계를 간과하고 있어요.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밸류를 포기해야 하고, 사회적인 밸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윤을 포기해야 하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극복해야 한다고말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 이건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아무리 창의적인 결정을 내릴지라도, 두 영역에서 win-win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코코아 산업에서 널리 퍼져있는 강제 노동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활동하는 NGO로부터 어느 정도의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어떠한 타협도 자신의 미션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양보하려 들지 않을 텐데요. 기업과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현실을 포터와 크레이머는 비현실적으로 낙관하고 있거나 아니면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스퀘어: 방금 말씀하신 부분에서 임팩트씨와 저와의 관점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군요. 저도 CSV가 어렵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이유는 임팩트씨와 다른 것 같아요. CSV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소비자, 지역사회, 주주, 정부, NGO, 협력업체와의 협력과 타협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innovation)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 문제 안에서 비즈니스의 기회를 발견하여 수익을 내는 혁신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기에 CSV는 어려운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건드릴 수 있는 사회 문제는 선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착하고 선한 일’을 기존의 기준을 잘 준수하는 길을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예로 드신 NGO와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적절해 보이지 않네요.
임팩트: 하지만 CSV 논문의 저자들은 마치 CSV를 통해 구조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CSV로 약속하고 있는 듯 한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CSV는 너무나 단순한 개념 아닌가요. 스퀘어씨가 말한대로 기업 전략의 하나일 뿐이라면 말이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얼키설키 뒤섞여 있어서 구조적인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그것을 고치기 힘들죠.
스퀘어: CSV의 결과로 두 저자들이 거창한 미래를 제시한 것 아니냐는 점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CSV로 전략을 추진하는 기업 역시, 노동을 착취하거나 협력업체와 불공정한 조건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거나 경영자가 비리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기업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이 문제는 시민과 소비자, 주주들이 꾸준히 기업에 요구를 하고 압력을 행사해서 윤리적, 법적, 환경적 기준을 준수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놓고 ‘CSV가 아니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틀린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 이슈와 공유가치가 다른 차원의 개념이기 때문에 공유가치 관점으로 전략을 실행하는 기업을 향해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데도 더욱 신경을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CSV가 아니다’는 주장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건 CSV라는 관점이 ‘선하다’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오해에서 비롯되었죠.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기업의 수장들에게 사회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해냄으로써 그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에서 CSV는 나름의 공헌을 하였다고 봅니다.
임팩트: 그럴 경우 CSV는 사회 전체로 볼 때 위험할 것도 같은데요. 예를 들어 포터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집중적으로 연구한 클러스터 개발은, 포터가 공유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세 가지 방법 중에 하나로도 소개가 되어 있죠. 하지만 클러스터가 개발되고 나면 특정 지역에 부가 집중 되면서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해질 수 있고, 인구 과밀화와 함께 특정 산업에 지역주민의 삶이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자동차 산업이 죽은 다음에 디트로이트가 황폐해진 걸 보세요.
스퀘어: 클러스터 개발의 기여는 클러스터가 형성되기 이전과 이후의 사회적 밸류 증감 정도를 고려해서 따져 보아야지 사후적인 상황만 고려해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문제를 이유로, 그 기여를 과소평가하는 건 부당해 보이네요.
임팩트: 클러스터 개발 뿐만 아니라 첫번째 방법으로 제시된 상품과 시장을 재인식(reconceiving new products and markets)하는 방법도 매우 근시안적인 관점이라고 봅니다. 담배, 무기 제조, 석유 산업 같이 본연적으로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산업에서는 아무리 공유가치를 창출한다고 해도 기업의 전체 활동과 이 관점을 통합시키기 어렵지 않나요? 그리고 코카콜라나 네슬레 역시 공유가치 선두주자라고 평가받고 있지만 글쎄요. 특정 사업 유닛에서는 공유가치라고 인정해 줄 수 있어도 기업 내 다른 활동들을 모두 고려하면 설탕물과 소금, 지방에 소비자들을 중독시키고 있죠. 포터와 크레이머는 이러한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공적인 스토리를 취사선택하여 공유가치로 포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스퀘어: 그런 산업을 ‘원죄’를 가지고 있는 산업군으로 볼 수 있을텐데요. 임팩트스퀘어 역시 IBR, “Mining a Long-term Diamond – De Beers의 사례 알아보기” 라는 글에서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라는 문구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채굴 기업 드 비어스의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다루기도 하였습니다.
'원죄'를 가지고 있는 기업도 공유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공유가치는 기업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mindset)이라고 포터가 강조하고 있기에 산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에게 해당됩니다. 물론 그 기회를 찾기 위한 어려움이 어떤 산업에서는 더 많은 고민을 요할 수 있겠죠. 다이아몬드 광을 캐서 원석의 거래 횟수 및 구매가능한 고객의 자격을 제한하여 가격지배권을 오랫동안 행사해 왔던 드비어스의 독점적 지배력에 맞서기 위해 경쟁사들은 드비어스를 거치지 않고도 원석을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드비어스가 내전중인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군수 자금을 마련해 준다는 비난 뿐만 아니라 채굴이 진행되는 지역의 주민들의 삶을 황폐화시킨다는 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까지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도전에서 대대적인 경영 전환의 위기를 맞은 드비어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경쟁력이 다이아몬드 광이 위치한 지역사회와 그 구성원의 역량에 의존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룹니다. 그를 바탕으로 ‘1)‘지역사회 내에서 원자재 및 필요 서비스 수주, 2) 지역사회 내 자영업자들의 역량 향상을 위한 지원 및 투자 펀드 운용: 사회 기반 시설, 교육·보건 설비 확충 및 교육 시행 등, 3) 지역사회가 단순한 채굴 이상의 프로세스 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을 하게 됩니다. 산업이 없어져야만 해결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기업에게 한다면 반박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아요. 다만 공유가치를 기업 내에서 전략을 고민할 때 취할 수 있는 관점이라고 이해한다면, 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가 공유가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업부에 따라 전략을 세울 때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공유가치라고 한다면, 네슬레나 코카콜라와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에서 특정 사업 부문에서만 공유 가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현상 역시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난 3: "CSV는 기업이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매우 피상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CSV is based on a shallow conception of the role of the corporation in society)
구글 트렌드로 분석한 각 키워드 뉴스제목 노출도 비교 (2014.3.17.)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Creating Shared Value"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임팩트: 그렇다면 기업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옴으로써 자본주의를 한 단계 진화시킬 수 있다는 포터와 크레이머의 CSV에 대한 기대는 너무나 허황되지 않나요. 사회 안에 뿌리 박힌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집합적인 노력에는 전혀 기여를 못할 것 같은데요. 논문에서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는 현상은 거시적인 문제인 데 반해, 그들이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것은 미시적인 개별 기업들의 변화에요. 사회 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을 포함한 더 넓은 범위의 솔루션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CSV는 포터가 지금까지 쌓아 온 경쟁우위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기업이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스스로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로밖에 안 보이네요. 오늘날 경제 시스템 내 주체들의 정당성 위기(legitimacy crisis)를 언급하면서 저자들은 기업의 이윤이라는 단순한 논리로만 설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스퀘어: 마지막에 언급하신 것처럼, CSV는 경쟁자로부터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한다는 지적은 정확합니다. CSV는 개별 기업에게 적용가능한 관점이라는 점 역시 동의합니다. 하지만 기업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가요. 결국 가치 창출이고 이 가치 창출은 이윤이라는 결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가 사회 문제라는 것, 이 점은 공유가치라는 관점이 부재했던 시기와 비교했을 때 사회 전체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또 저 개인적으로는 구조적인 문제를 구조적인 문제로 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업과 같은 개별 기업이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내는 파열음이 하나 둘 확산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나름의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진북(true north)'을 찾기 위한 노력
토론을 바라본 독자는, 이 둘이 아슬아슬하게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가도 결국에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느낌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아마도 '임팩트'와 '스퀘어'의 논의가 CSV '개념'에 대한 논쟁이라기 보다는 '기업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의 질문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임팩트'의 입장에서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기 위한 기업의 역할은, 노동자, 지역사회,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올바른' 행동을 보여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공유가치를 외치는 기업의 경영진이 비윤리적 행위로 신문 1면을 장식할 때,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자는 사회의 목소리에 기업이 등을 돌릴 때 그 괴리에서 실망할 수 밖에 없다. CSV가 무엇을 가리키는 개념인지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기업이 보여준 관행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반면 '스퀘어'는 '임팩트'보다 기업에 더 미래지향적이며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사회 이슈'라는 요소는 돈을 버는데 걸림돌이 되거나 아예 무시해도 되는 영역이었는데 성장하기 위해, 그리고 경쟁자들과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이 영역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시사점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기업에게 '사회 안에 있는 기업'이라는 새로운 좌표를 던지며 이 위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해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런 관점이 기업의 내부에서 하나 둘 씩 확산되고, 또 다른 기업들도 성공 사례를 보면서 관점의 전환을 이룰 때 사회와 기업은 함께 번영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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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유가치 관점이 등장한 지 겨우 3년이 지났을 뿐이며, 그에 비해 지난 몇 백 년 동안 기업의 반(反)사회적인 관행으로 사회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임팩트'와 '스퀘어'의 관점 차이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공유가치가 제시하는 미래를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전에 기업이 선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는 목소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요구로 들린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각자 기업의 몫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법으로 규정한 최소한의 요구는 모든 기업이 공통으로 준수해야 하겠지만, 사회적 책임을 선도적으로 보여주는 조직이 될 것인지, 혹은 이 부분에서는 최소한의 기준만 준수하면서 공유가치를 받아들일 것인지, 혹은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는 선택을 내릴 것인지는 각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이 내려야 할 결정으로 보인다. 다만, 기업 외부에 있는 NGO, 소비자, 정책 결정자,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을 통해 기업 내부자들의 결정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지역 사회에 환원을 많이 하는 기업의 제품을 더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구매하는 패턴을 보인다면, '이윤'을 목표로 공유가치만을 신경쓰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점차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사회와 기업의 공존을 위한, '진북(true north)'을 설정해야 하는 전환점에 우리가 서 있다면, 기업을 비롯해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 역시 어떤 소비자, 근로자, 시민이 될지 고민을 하며 실천할 수 있는 책임과 권리가 있지 않을까.
작성자 : ISQ 이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