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그 참을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에 대하여 :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2014 Annual Letter

2014. 3. 14. 20:57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속담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정치 이슈였던 민생 안정을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였음에도, 빈곤이 여전히 풀리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는 오늘날에 한번쯤 떠올려볼 법한 속담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스마트폰으로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친구와 함께 떠날 휴가 계획을 세우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게 된 요즘이라 해도, 빈곤이 여전히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크나큰 과제 중 하나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요.

특히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빈곤에 대한 재정의는 빈곤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빈곤’이 단순한 경제적 소득의 부족을 넘어, 주거·고용·교육·건강·정치 등에 걸친 다차원적 기회의 박탈을 의미하는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로 나타난다는 관점인데요. 이와 같이 빈곤이 단순한 경제적 결핍을 넘어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파괴하는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빈곤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더 커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에 따라 정부와 비영리 등 각종 섹터에서 국경을 초월하여 전세계적으로 빈곤 퇴치를 위한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는데요. 빈곤 문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은 물론, 조달 가능한 자원의 부족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빈곤 퇴치를 위한 노력 자체에 대해 제기되는 의구심이라는 것입니다. 즉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각종 구호 및 원조 등의 활동들이 소용없거나 무익하다는 회의적인 관점이 빈곤 퇴치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라는 것이지요.

세계 최대의 민간재단인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운영하고 있는 빌 게이츠(Bill Gates) 역시 이와 같이 ‘세계가 극심한 빈곤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단순히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개선되어가는 일을 가로막는 해로운 것’이라고까지 말하며 비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게이츠 재단의 2014년도 연례서한(Annual Letter),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진보를 방해하는 3가지 오해(3 Myths that block progress for the poor)”의 내용을 살펴보며 빈곤 퇴치를 가로막는 오해들을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 myths that block progress for the poor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자선재단으로, 1997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전세계의 보건(Healthcare) 수준을 향상시키고 빈곤을 경감시키며,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기술 정보에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았던 자선 섹터에 비즈니스 관점의 도입과 기술의 적용을 통해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게이츠 재단은, 그간의 자선 섹터가 받아온 비판과 편견이 자선 섹터 자체의 본질적인 결함이 아님을 직접 증명해보이며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요.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 빌 게이츠의 모습

이와 같은 재단에서의 수년에 걸친 경험으로부터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하여,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는 “3 myths that block progress for the poor”이라는 제목으로 빈곤 퇴치를 둘러싼 보편적인 오해를 지적하고 이에 반박하는 연례서한을 지난 달에 발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빈곤 퇴치를 가로막는 3가지 오해에 대해 어떻게 반박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3 myths that block progress for the poor을 번역한 내용입니다.)

Myth One : Poor countries are doomed to stay poor

Bill Gates, “Foreign Aid Works”

첫 번째 오해는 특히 아프리카와 관련하여 많이 거론되는 오해로, 가난한 나라는 지리적, 환경적, 역사적, 그 외 여러가지 이유 등에 의해 가난한 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게이츠는 이러한 오해의 뿌리를 세계가 3개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미국과 서구 연방(First World),  소련 연방(Second World), 그리고 지금까지도 제3세계라 불리우는 나머지 중립국가(Third World)로 대립하던 냉전 시대에서부터 찾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철의 장막(Iron Curtain)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서구 세계에게 있어 장막 너머의 제3세계는 아이들이 학교도 제대로 가지 않고,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죽으며, 가난의 덫에 빠진 미지의 세계 쯤으로 각인되었고, 이러한 인식이 냉전 종식 이후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경제 지표 역시 이러한 인식의 밑바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960년 미국의 1인당 GDP(게이츠는 GDP에만 의존하는 추정이 매우 부정확함을 지적하며, 본 글을 통틀어 Penn World Table에서 제시하는 GDP를 인구 수로 나눈 값을 1인당 국민소득(income per person)으로 부르고 이를 기본단위로 삼고 있습니다.)가 연간 15,000불이었던 것에 비해, 당시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은 브라질 1,982불, 중국 928불, 보츠와나 383불 등으로 비교도 안 될만큼 낮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게이츠는 이와 같이 가난했던 국가들이 그대로 발전 없이 가난한 상태로 머무를 것이라는 추측은 잘못되었다며, 현실이 이미 그 반증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터키나 칠레, 말레이시아, 가봉 등 당시 가난했던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현재 미국의 1960년대 수준까지 올라섰을 뿐만 아니라, 부국과 빈국 사이에 텅 비어있던 공백을 채우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중간층 국가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게이츠는 50년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부국과 극도로 가난한 빈국 사이에 어떤 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던 황무지와도 같은 지대에 이제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포함되게 되었으며, 1960년 이후 실제 1인당 국민소득 역시 인도의 경우 4배, 브라질의 경우 5배, 중국의 경우 8배, 심지어 영세국가인 보츠와나의 경우 30배 가까이 증가하여 가난한 나라들이 결코 가난한 상태로만 머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Poverty Curve] 50년 전 극도의 빈곤국가와 그 외 나머지 선진 서구국가로 양분되어 있던 세계가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정규분포 곡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게이츠의 말은 한마디로, “과거에 가난하다고 불렸던 국가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지난 50년간 가난한 채로 머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극도로 빈곤한 사람들의 비율이 1990년 이래 절반 이상 줄었다는 통계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구요.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이 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시아의 호랑이들” 혹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린 신흥 성장국가들이 지난 50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점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아프리카의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앞으로도 아프리카만큼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의구심까지 포함해서요.

이에 대해 게이츠는 아프리카는 50년 전보다 분명히 좋아졌다고 반박합니다. 지난 50년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증가하였으며, 1980년대 부채 위기로 인해 급락했던 이후에도 1998년 이후 다시 ⅔ 가량 증가하여 약 1,300불에서 2,200불로 도약하였다는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지요. 또한 그는 지난 5년간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10개국 중 7개가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프리카는 보건 및 교육의 측면에서 더욱 확실한 진보를 보이고 있어, 1960년대 이후 HIV 유행에도 불구하고 여성 수명이 41세에서 57세로 대폭 증가하고, 1970년대 이래 아이들의 출석률이 40% 대에서 75%까지 증가하는 것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는데요. 게이츠는 이와 같은 보건 및 교육 상의 발전은 인적 자원 발달을 통한 향후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아프리카에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되어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Myth Two : Foreign aid is a big waste

Bill Nye, Science Guy, Dispels Poverty Myths

게이츠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두 번째 오해는 바로 “해외 원조는 낭비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해외 원조는 선진국가에 의해 개발도상국가에 제공되고 있는 각종 현물, 현금의 원조를 주로 일컫는데요. 특히 일부 언론에서는 소모적이었던 개별 프로그램의 사례를 제시하며 해외 원조는 낭비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조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라 유권자들 또한 해외 원조 예산 삭감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게이츠는 이러한 오해와 잘못된 인식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실제로 해외 원조 예산을 삭감하는 일을 합리화할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 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나라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게(self-sufficient) 되기까지 걸리게 되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며 두 번째 오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물론 그도 두 번째 오해에 대해 논의해보기에 앞서, 어떠한 프로그램도 완벽하지는 않으며, 지금 현재 행해지고 있는 원조 프로그램도 대부분의 경우 개선의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원조(Aid) 역시 가난과 질병에 맞설 수 있는 여러가지 도구 중 하나일 뿐이며, 원조를 제공하는 선진국이나 이를 제공받는 개발도상국이나 각자 원조 외에도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통해 빈곤 퇴치에 힘써야한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츠는 원조는 분명히 훌륭한 투자이며, 현재보다 더 많은 원조 프로그램이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해외 원조는 낭비에 불과하다는 오해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The Amount of Aid

첫번째 측면은 많은 사람들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원조의 금액이 선진국 예산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전체 예산 중에서 해외 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25%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이니,  해외 원조를 줄이면 예산을 상당히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이들은 “정부는 해외원조에 예산의 어느 정도를 투입하여야하는가?”라는 질문에 10% 수준이 적당하다고 대답했지요.

그렇다면 과연 현실은 어떨까요? 세계에서 가장 후하고 관대한 나라라는 노르웨이에서조차 해외원조에 투입되는 예산은 전체 국가 예산의 3%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심지어 1% 미만이구요. 미국 총 예산의 1%가 연간 약 300억 달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중 대략 110억 달러가 백신, 모기장, 가족계획, HIV 치료제 등의 보건 부문에, 나머지 약 190억 달러가 학교 설립, 도로 및 관개사업 등에 이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간 110억 달러라는 돈이 적은 돈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죠. 대략의 추정치를 얻기 위해 1980년 이후 보건과 관련된 원조에 대해 기부자들이 투척한 금액을 모두 더한 후, 같은 기간 동안 사망으로부터 보호된 아동의 수로 나누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한 아이가 죽지 않도록 돕는데 약 5천 달러 이하가 들었다는 결과가 나오는데요, 다소 비싸다고 생각되신다면 아마도 미국 정부가 미국인 한 명의 목숨의 가치를 수백만 달러로 생각하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남은 아이들은 단지 살아남기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들은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일터에서 근로를 하게 되며, 이를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나라가 스스로 유지될 수 있게 되는 데에 기여하게 됩니다. 사람의 생명을 화폐 가치로 단순히 환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만약 그렇게 계산한다 해도 결국엔 아이 한 명 한 명을 살리는 데 드는 돈이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라는 것입니다.

 

2) Corruption

해외 원조를 낭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근거로 삼는 두 번째 측면은 바로 부정부패와 관련한 것입니다. 해외 원조를 위해 책정된 예산이 부정부패로 인해 부적절한 곳으로 새어나가게 된다면 해외 원조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낱 낭비가 되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게이츠는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상대적인 규모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어느 정도 작은 규모의 부패는 해외 원조를 수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포함되는 세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불가피한 비효율 요소라는 것이지요. 물론 줄이려고 노력해야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정부 프로그램이나 비즈니스들과 마찬가지로요. 어떤 사업을 수행하든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비효율적 요소가 있는 법이고, 한 생명을 살리는데 드는 비용에서 그러한 비효율적 요소에 해당하는 부정부패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면 그러한 노력이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생명을 살리는 일을 중단해야 할까요?

게이츠는 언론과 시민이 자선 섹터의 부패에 대해 지적하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는 자선 섹터의 책임성 제고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하면서요. 그렇지만 언론과 시민들이 이와 같은 이슈를 대함에 있어 갖는 이중 잣대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해외 원조 프로그램에서 단 1달러라도 부패가 발견된다면 당장 그 프로그램을 중단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편, 일리노이 주의 7명의 주지사 중 4명이 부패 혐의로 투옥되었다고 해서 일리노이 주의 학교들이 문을 닫아야 한다거나 고속도로가 폐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선 섹터에서도 ‘측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실천가들은 물론 후원자들까지도 각종 해외 원조 및 자선 단체들이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향상을 가져다주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원조에 투입된 비용 대비 실제 임팩트를 측정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가는 오늘날, 심각한 부패로 말미암아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게 하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러한 프로그램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게이츠는 나아가 인터넷 발달을 통한 각종 정보에의 접근성 향상은 시민들의 지식 수준의 발달을 가져오고, 이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며, 결과적으로 해외 원조를 위한 돈은 부패한 곳이 아닌 그것들이 원래 쓰여져야할 곳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껏 제3세계에 원조해봤자 독재자들의 궁전을 짓는데 쓰일 것이라는 이야기는, 해외 원조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맹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되었던 냉전 시대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지요.

 

3) Aid Dependence

‘원조는 낭비다’라는 오해에 대해 살펴볼 마지막 측면은 자선 활동 자체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가까운 ‘의존성’의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원조는 정상적인 경제 성장을 방해하고, 수혜국가들로 하여금 외부로부터의 지원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게이츠는 이러한 논리에 몇 가지 맹점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첫 번째는 이러한 주장이 서로 다른 종류의 원조들을 모두 같은 것으로 묶어 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해외 원조가 개발도상국의 의존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에서의 ‘원조’라는 단어는 그들의 정부에 직접적으로 보내지는 펀딩과, 새로운 백신 및 씨앗 품종 등의 도구를 연구개발하기 위해 보내지는 펀딩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1960년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 위치한 국가들에 보다 생산적인 곡물 품종 개량을 위해 보낸 원조는 그들을 더 의존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훨씬 덜 의존적이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이른바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을 위해 보내지는 돈 역시 그들 스스로 식량의 자급자족을 가능케함으로써,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의도를 띠고 있구요. ‘원조’가 중요한 이유도 그것이 보건과 경제 성장을 위한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차원의 공공재를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자금원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두 번째 “원조가 의존성을 키운다”는 주장의 맹점은 이것이 원조 수혜국가였다가 이제는 이를 탈피한 대부분의 나라를 무시하고 아직까지 원조를 받는 상태로 남아있는 소수의 극한 케이스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보츠와나, 모로코, 브라질, 멕시코,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 태국, 모리셔스,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들은 원조를 통해 큰 성장을 이루고 현재 거의 원조를 받지 않고 있는 상태이며,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방대한 양의 원조를 받은 이후 지금은 원조를 받지 않고 오로지 기부만 하는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중국 역시 원조를 받지 않고 기부만 하고 있는 국가가 되었으며, 인도는 자국 GDP의 0.09% 수준의 원조를 받고 있는데 이는 1991년 1%에서 훨씬 낮아진 수치입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역시, 원조의 금액은 두 배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규모 중 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년 전에 비해 ⅓ 낮아졌습니다. 아직까지 원조에 의존하는 에티오피아 같은 국가들이 존재하지만, 이들 국가는 원조에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지향점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더 적은 양의 원조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합당한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해외 원조는 낭비라는 오해에 대한 반박을 마치며, 게이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원조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냐 안하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더 효과를 잘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오해는 무엇일지 다음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Myth Three : Saving lives leads to overpopulation

Will saving poor children lead to overpopulation?

게이츠가 마지막으로 반박하고자 하는 오해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인구 과잉을 야기할 것이다”라는 오해입니다. 18C 말 맬서스의 인구론이 발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식량 공급이 인구 팽창을 따라가지 못해 일어날 전지구적 위기에 대한 우려를 표해 왔으며, 냉전 이후로는 특히 제3세계라 이름 붙여진 곳들에 대한 인구 조정책이 제1세계의 공식적인 정책 방침이 되었을 만큼, 인구 팽창에 대한 인류의 걱정은 근현대 역사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슈인데요. 이러한 인구 팽창에 대한 걱정이 최악으로 치닫는 경우에는 심지어 여성들로 하여금 임신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세계적으로 가족 계획과 관련하여 활동하는 사람들의 관점은 이와 같이 단순히 생식을 제한하자는 시각으로부터, 여성이 자신의 삶의 주도할 수 있도록 권리를 향상시키자는 시각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 개발 및 해외 원조 사업에서는 아이들이 나중에 굶주림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일찍이 죽게 내버려두자는 식의 자유방임주의(Laissez Faire)가 통할 수 없지요.  직관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세계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이기도 합니다. 이는 이러한 국가의 여성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5세 미만 아동의 사망률이 심각하게 높은 아프가니스탄의 예를 들어봅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평균 6.2명의 아이를 낳는데, 그 결과 아이들 중 10% 이상이 살아남지 못하는 높은 아동 사망률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인구가 현재 3천만에서 2050년에 5천 5백만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높은 사망률이 인구 성장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이들이 더 많이 살아남게 될 수록 부모들은 가족을 보다 작게 꾸리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태국의 예를 살펴볼까요. 1960년대에 아동 사망률이 감소하기 시작한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가 강력한 가족 계획 프로그램에 투함에 따라 출산율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태국 여성들이 갖는 아이의 수는 평균 6명에서 2명까지 감소하였고, 오늘날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아동 사망률을 유지하고 있는 태국의 여성들은 평균 1.6명의 아이를 낳고 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에서도, 브라질 역시 아동 사망률이 감소함에 따라 출산율도 감소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Mortality & Fertility & Population Growth Graph in Brazil

브라질에서도 아동 사망률이 감소함에 따라 출산율과 인구 성장률이 감소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망률과 출산율의 패턴은 전세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데, 인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18세기 말 프랑스, 19세기 후반 독일, 20세기 중반 이후 동남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두루 발견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일부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서, 세계 인구는 해마다 더 천천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게이츠는 자신이 직접 개발 원조 사업을 수행하며 만난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의 여성들이 그렇게 아이를 많이 낳는 이유가 아이들이 얼마나 살아남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음을 확인하였다고 말합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아이가 제대로 된 영양 섭취와 백신 접종이 보장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그에 따른 미래와 가족계획을 설계하여 지금과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 거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게이츠는 여성들이 충분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주도권을 보장받게 하는 역량 강화(empowerment)가 출산율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학교 교육에서 이탈하여 10대 중후반에 일찍 결혼함으로써 성과 피임, 생식 등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친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보다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배울 기회가 제한 받게 되며, 대개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편에게 가족 계획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소녀들이 일찍 결혼하지 않고 학교에 머무르게 된다면, 많은 것, 아니 모든 것이 변하게 되는데, 최근 30개의 개발도상국에서 실시된 연구에서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여성이 고등학교를 다닌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3명 이상 많은 아이를 낳는 것으로 밝혀진 바가 있습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가족 계획에 대한 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더 많은 아이들을 낳으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교육기회의 부족과 피임법에 대한 낮은 접근성으로 인해 아이들을 언제 얼마나 낳을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박탈된 여성들은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고, 치료하고, 학교에 보내는 데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빈곤의 악순환을 낳게 되는 것이구요.

한편, 아주 기초적인 보건과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을 통해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은 단순히 여성과 그 가족의 삶의 개선으로 그치지 않고, 국가 차원의 경제성장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1980년대 아시아에서 일어난 경제 성장의 기적이 해당 지역의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한 것에도 어느 정도 기인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는데, 전문적으로는 이를 “인구 배당효과(Demographic Dividend)”라고 부릅니다. 인구배당효과는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는 현상인데, 아시아에서 20세기 후반에 아동 사망률이 낮아짐에 따라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인구 구조가 바뀌면서 이와 같은 인구배당효과가 나타나 큰 폭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게이츠는 생명을 구하는 일은 인구 과잉으로 인한 위기로 이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초적인 건강 상태와 근본적인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이지요.


빈곤, 그 참을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에 대하여

이상과 같이 빈곤 퇴치를 위한 노력을 가로막는 3가지 오해에 대하여 반박한 이후, 빌 게이츠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극도의 빈곤이 룰이 아닌 예외가 되고, 새로 태어나는 모든 생명이 그 장소가 어디든지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며,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행 중임을 강조하며 연례서한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빈곤 퇴치를 위한 노력, 결국은 우리 모두와 더 나은 세계를 위한 노력인 그 과정에 이 편지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초대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작년 말 작고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빈곤을 해결하는 것은 자선적 행위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다. 노예제도나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빈곤은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의 행동에 의해 제거되고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때로 위대한 세대에 의해 몰락한다. 당신이 바로 그 위대한 세대가 될 수 있다. 당신의 위대함을 꽃 피워라(Overcoming poverty is not a task of charity, it is an act of justice. Like Slavery and Apartheid, poverty is not natural. It is man-made and it can be overcome and eradicated by the actions of human beings. Sometimes it falls on a generation to be great. YOU can be that great generation. Let your greatness blossom).”


작성자 : ISQ 백혜림

Previous
Previous

가치사슬 강화로 공유가치 창출하기 - Mars 사례 살펴보기

Next
Next

기업과 사회가 공존하는 길: CSV와 CSR 논쟁을 중심으로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