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성공하고도 실패하는가? :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풀어보는 임팩트 생태계의 딜레마

10년간 주거 취약 청년 5,000명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지원해 온 한 임팩트 조직의 사례를 가정해보자. 분명한 성과를 내며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되고 투자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거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는 대기자는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이다. 성공할수록 더 많은 수요가 드러나고, 더 큰 자원이 필요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다. 

이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누군가 부단히 새로운 일을 벌이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문제의 일부에 불과했음이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단순히 새로운 일을 벌이는 방법에서 더 나아가 '이 새로운 일이 지속가능한 해결이라는 원류에 편입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과제가 숙명처럼 주어진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실패들 

임팩트 생태계는 그간 개별 조직의 성공은 축적되어 왔다. 훌륭한 모델들이 넘쳐나지만, 그 노력들이 사회 시스템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성공하는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간극은 여러 요인에서 비롯된다.

우선, 단기 성과 증명의 함정에 빠져 있다. 기존 투자나 보조금은 3년 내 가시적인 결과를 강하게 요구한다. 이 때문에 임팩트 조직들은 장기적인 시스템 변화보다는 즉시 측정 가능한 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확장성의 딜레마도 존재한다. 아무리 좋은 모델이라도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효과가 희석되거나 비용이 급증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모델은 '복제'될지언정, 문제의 '시스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개별 조직들이 각자도생하며 노력해도, 그 노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까지는 가닿지 못 하는 것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누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이런 질문들에 집중해왔다. "누가 더 혁신적인가?", "어떤 조직이 가장 효과적인 모델을 가지고 있는가?"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이 문제 자체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끝낼 것인가?"이다. 여기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이 바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PF)이다.

전환의 키워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핵심은 간단하다. 개별 조직의 신뢰나 수익성이 아닌, 프로젝트 자체가 가진 목적과 수행 방식, 그리고 프로젝트가 창출할 미래 수익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다음 세 가지 주요 특징을 가진다.

  • 비소구 구조 (Limited or No Recourse):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대출 기관의 상환 청구권이 프로젝트 자체의 자산과 현금 흐름에만 한정된다. 이는 개별 조직의 부담을 줄이고, 프로젝트 자체의 타당성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 계약 기반 구조 (Contractual Arrangements): 다양한 당사자들 간의 명확한 계약을 통해 각 참여자의 역할과 책임, 리스크 분담 등을 사전에 규정한다. 이를 통해 모호함에서 오는 갈등과 비효율을 최소화할 수 있다.

  • 리스크 분산 (Risk Allocation): 프로젝트 고유의 리스크를 참여 주체별로 합리적으로 분산한다. 사업 주체, 금융기관, 운영사 등이 각자의 리스크를 분담하며 참여하기 때문에, 특정 주체가 모든 위험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어쩌면 그동안 왜 임팩트 영역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고위험/고성과의 임팩트 생태계에 매우 적합하다.  

특히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1. 규모와 속도가 중요한 사회 문제 해결에 최적화된 구조: PF는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사업이나 기후·사회 이슈처럼 대규모 자금과 장기적 관점이 요구되는 문제를 다룰 때 특히 효과적이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과제일수록, 계약 기반과 리스크 분산 구조의 강점이 더욱 부각된다.

  2. 조직의 업력이나 신뢰도에 상대적으로 낮은 의존: 임팩트 조직들은 대개 업력이 짧고, 초기 단계의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많다. 이들은 전통적인 투자 기준에서는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 있지만, PF는 프로젝트 자체의 실행 가능성과 수익성만으로도 자금 유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리한 대안이 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어떻게 임팩트가 되는가?

여전히 이게 임팩트 생태계에서도 적용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면, 조금 더 익숙한 개념으로부터 접근해볼 수 있다.

바로 사회성과연계채권(SIB, Social Impact Bond) 이다. SIB는 한국에서도 몇 차례 시범적으로 운영된 바 있는 성과 기반 자금 구조다. 민간 투자자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투입하고, 성과가 입증되었을 때에만 정부가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다시 말해, 성과 기반 계약(PbR: Payment by Results)을 중심으로 공공 비용 절감을 수익으로 전환하는 구조이며, 사회성과가 곧 투자 회수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홈리스 대상 주거 복지 프로그램이 응급실 방문과 범죄율을 낮춘다면, 이로 인해 절감되는 의료비, 경찰 출동, 교정 비용 등 공공 지출이 프로젝트의 간접 수익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직접적인 매출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의 절감을 기반으로 수익 구조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SIB는 임팩트 영역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원리를 실증한 대표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SIB는 PF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임팩트 PF를 상상해 봄에 있어,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출발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아래의 두 사례들은 사회문제 해결과 자본의 선순환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사례 ① HMP Peterborough – 영국 최초의 사회성과보상채권(SIB) 모델(링크)

  • 시행 시기: 2010년 시작 (SIB의 최초 도입 사례)

  • 대상: 영국 피터버러 교도소에서 1년 이하 복역 후 출소한 수감자

  • 목표: 재범률 감소를 통한 공공 지출 절감

  • 개입 방식: ‘The One Service’라는 민관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출소자에게 최대 12개월간 자발적 참여 기반의 통합 지원 제공

  • 성과 기반 구조 (PbR):

    • 전국 평균 대비 전체 재범률 7.5% 이상 감소 시, 투자자에게 성과보상 지급

    • 개별 코호트 단위로 10% 이상 감소 시 조기 성과지급 가능

  • 성과 평가 방법: 성향 점수 매칭(Propensity Score Matching)을 활용한 비교군 설정

  • 결과:

    • 재범률 9% 감소

    • 투자자에게 연 3% 이상의 수익률 실현

  • 의의: 재범률 감소라는 명확한 성과지표, 독립된 효과 평가, 성과 달성 시 민간 투자 회수 구조를 통해 혁신적인 공공서비스 전달 모델을 제시함

사례 ② Essex Edge of Care – 위기 아동 보호 비용 절감을 위한 조기 개입 모델(링크)

  • 시행 시기: 2012년 부터 총 5년 5개월간

  • 대상: 시설 입소 위기 상황에 처한 청소년 및 가족

  • 목표: 다중시스템치료(MST)를 기반으로 조기 개입, 아동의 시설 보호 진입 예방 및 가정 복귀 지원

  • 참여 구조:

    • 지방정부: 에식스 카운티 카운슬

    • 서비스 제공: 액션 포 칠드런 (Action for Children)

    • 투자 및 관리: 소셜 파이낸스(Social Finance)

    • 자금 조달: 총 310만 파운드, 8개 사회적 투자자

  • 성과 기반 구조 (PbR):

    • 보호시설 체류 일수를 기준으로 성과 측정

    • 성과 달성 시, 지방정부가 투자자에게 성과 기반 보상을 지급

  • 결과:

    • 아동 보호시설 체류율 43%p 감소 (기준치 55% → 11.92%)

    • 총 2,620만 파운드의 공공 지출 절감

    • 투자자에게 최대 1.45배 수익 실현

  • 의의: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해 공공-민간-비영리-금융이 유기적으로 협력한 구조로, SIB의 PF적 요소(비소구 구조, 계약 기반 성과지표, 리스크 분산)를 성공적으로 구현

이처럼 두 사례는 단순한 시도를 넘어, 수천만 파운드 규모의 공공 지출을 절감한 구조적 실험이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을 넘어, 사회성과와 재정 효율성을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 도구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PF는 재생에너지, 디지털 헬스케어, 공공 인프라, 지역 커뮤니티 재생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으며, 수익 구조 또한 성과 기반, 수수료 기반, 임대 수익 기반 등 훨씬 더 유연하고 확장 가능하다.

따라서 임팩트 생태계에서도 SIB 그 너머의, 보다 다양한 PF 구조를 실험하고 설계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자금을 내는가’가 아니라, 그 자금이 어떻게 문제의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는가다.

PF는 다양한 주체가 각자의 역할과 이익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사회적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이는 복합적인 협력 구조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보다,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중심에 놓는 방식이다.

임팩트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더 나은 성과와 더 큰 임팩트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다.
이제 우리는 이 구조를 하나의 자금 조달 방식이 아닌, 임팩트 생태계의 새로운 인프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PF는 결코 혼자 작동하지 않는다

솔직히, 이 생태계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그렇게 새롭지 않다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 역시 처음에는 콜렉티브 임팩트가 말하는 협력이나, 혼합금융이 말하는 자본의 방식과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건지 명확히 와닿지 않았다. 어쩌면 또 하나의 개념이 조용히 지나가는 것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사회혁신 분야에서는 새로운 개념들이 유행처럼 등장했다가, 정책 환경이 바뀌면 언제든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 “어떻게 자금을 구조화할 것인가?” → 프로젝트 파이낸싱(PF)

  •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 → 콜렉티브 임팩트

  • “서로 다른 자본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 혼합금융

이렇게 놓고 보니, 이들은 각기 다른 해법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를 완성하는 세 가지 축이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자금 흐름을 조직하는 설계 구조를 제공하면, 콜렉티브 임팩트는 그 자금이 효과적으로 쓰일 협력 환경을 조성한다. 여기에 혼합금융은 다양한 성격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촉매 역할을 한다. PF 구조 내에서 리스크를 분산하고 성과 기반 인센티브를 설계해 참여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등 대규모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안정적인 자금 확보와 효율적인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쉽게 말하면, PF는 문제 해결을 위한 ‘설계도’이라면, 콜렉티브 임팩트는 도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과의 신뢰, 혼합금융은 그것을 실현시키는 자본의 흐름인 것이다. 

결국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우리는 비로소 ‘작동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왜 지금껏 PF가 활용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질문이 핵심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분명 임팩트 생태계에 반드시 필요한 방법론이지만, 한국 임팩트 생태계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국내 상황을 보면, 정부는 여전히 보조금 지급자 역할에만 머물러 있고, 투자자들은 회수 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프로젝트를 외면하는 경향이 크다. 임팩트 스타트업들 역시 시드 투자나 보조금에만 익숙한 상황이다. 결국 PF는 어느 이해관계자의 우선순위에도 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학계에서는 PF와 같은 복잡한 성과 기반 모델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ally ambiguous)’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Tan, Smith, & Warner, 2019). 복잡한 구조가 실제로는 책임 회피나 성과 희석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복잡성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설계와 실행의 방식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임팩트 생태계 전문가 역시 비판보다는 지지의 시각을 드러낸다. 지난 5월, 서울 성수동 KT&G 상상플래닛에서 열린 ‘플래닛 써밋: 임팩트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PF의 본질과 구체적 사례에 대한 발표를 진행한 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대표는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복잡성이 곧 비효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투명하고 견고한 설계, 성과 기반 측정 체계, 지속적인 학습 메커니즘이 함께한다면, 복잡한 구조는 오히려 탄탄한 뼈대가 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PF를 '리스크 회피하는 구조'가 아니라, '리스크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더 큰 임팩트를 위한 강력한 도구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다.

임팩트를 설계하자. 새로운 일을 구조로 벌이자. 구조로 문제를 끝내자.

10년 전, 이 생태계에 필요했던 것은 좋은 조직들이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충분히 많은 좋은 조직들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좋은 구조다. PF는 단순한 금융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끝내는 구조'를 설계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이자,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변화다:

  • 조직 중심이 아닌 문제 중심으로: '누가' 해결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체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구조 설계로: 일회성 투자를 넘어, 지속가능한 변화를 이끌어낼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단기 성과를 넘어 장기적 시스템으로: 임팩트의 시간 지평을 확장하고, 문제 해결의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접근이 절실하다.

이 변화 속에서 각 주체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 투자자: 단순 자금 제공자에서 구조 설계 파트너로 

  • 스타트업: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는 부담에서 벗어나 전문성에 집중하는 플레이어로

  • NPO: 자금 조달의 부담을 넘어 민관, 플레이어를 엮어내는 최전선의 활동가로

  • 지자체: 보조금 지급자를 넘어 인프라 조성자이자 프로젝트 파트너로

  • 중간지원조직: 단순 연결자가 아닌 복합 구조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전략가로 

문제를 끝내기 위해, 이제 ‘어떻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임팩트를 설계하고, 실험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함께할 파트너를 기다린다. 

작성자 : 임팩트스퀘어 박윤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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