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생태계 실무자 FGI : 인재를 지켜라! 그런데, 어떻게?
IBR 2025년 3분기 호의 아티클 ‘머무름의 언어: 임팩트스퀘어가 인재를 부르는 방법’은 임팩트스퀘어가 인재를 영입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임팩트스퀘어 밖의 구성원들은 어떨까? 단지 조직의 고민을 넘어, 이 생태계를 같이 만들어가고 있는 숱한 인재들은 어떻게 ‘머무름의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이 고민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총 4인의 생태계 구성원이 참여한 FGI(Focus Group Interview)를 진행했다. 이 아티클이 비슷한 형태의 고민을 앞두고 골몰하는 생태계 동료들에게 다정하게 가 닿기를 바란다.
<편집자 글>
임팩트스퀘어가 질리도록 반복해 내보내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당사의 미션인 ‘더 많은 사람들이 임팩트 비즈니스를 소비하도록 한다’이다. 그런데 이 미션은 단지 임팩트스퀘어만의 것은 아니다. 이 임팩트 비즈니스를 만들고, 성장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은 생태계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그렇기에 임팩트스퀘어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구성원들의 유입과 머무름, 나아가 성장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생태계 동료들의 오늘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 생태계에 진입하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계속해서 이 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지, 만약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 언제인지 등이다. 그래서 만났다. 지난 9월 저녁, 서울숲 언저리의 식당에서 우리는 아주 솔직한 수다를 시작했다. 단, 솔직 담백한 대화를 위해 인터뷰는 익명 공개를 원칙으로 진행했다.
무당벌레 : 생태계 진입 6년 차, 한땀 한땀 영혼을 불어넣어 업무를 하던 때를 그리워함
초코 : 생태계 진입 6년 차,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함
둥둥이 : 생태계 진입 8년 차, 진짜 변화에 대한 세상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음
시에나 : 생태계 진입 1.5년 차에 이탈, ‘내 삶의 임팩트’를 다시 찾아나가고 있음
©Shutterstock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이 생태계에 들어올 적에
지난 9월의 어느 저녁, 숨 가쁘게 업무를 마친 4인의 생태계 구성원이 서울숲 식당에 모였다. 삼삼오오 행사장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함께 만난 것은 처음인 자리였다. 잠시간의 어색함을 깨고 식탁이 소란해진 것은 각자의 ‘처음’을 이야기하면서다.
무당벌레. 저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각자 관심 있는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여기서 미디어 아트를 파생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전까지는 ‘사회문제’라는 걸 중심에 두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낯설었지만, 당시 제 삶에 큰 타격을 준 ‘강남역 살인사건’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처음으로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디자인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단지 기능적 디자인이 아니라, 누군가를 설득하고 사회를 바꾸는 솔루션으로서의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고 이후 생태계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초코. 학부생일 때, 나름 준비하던 커리어가 있었지만 졸업 후 바로 취직하면 다른 경험은 못 해볼 것 같아서 우연찮게 임팩트 생태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어학 및 경영학을 전공했던 저는 당시엔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무척 특별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잘 아는 직업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 이 특별한 사람들 속에 좀 더 있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새 6년 차가 되었네요.
둥둥이. 원래는 언론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면접을 볼 때마다 ‘당신은 언론인보다는 활동가가 어울릴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반복해서 들었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대학생 시절, 공익 캠페인 및 비영리 기관 인턴십 등에 자주 참여했던 저에게는 이미 나름의 방향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성 있게 몰두하는 활동가들을 보면서 깊은 영감을 받았고, 저에게는 이 진정성이 매우 중요한 동력이자 매력적인 소구점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어요.
시에나. 이전 회사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넓고 얕게, 전천후로 관리해야 하는 PM 업무를 지속하다가, 뭔가 조금 더 깊이 있게 하나의 문제를 파고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한 환경 스타트업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고, 다루는 카테고리가 매우 유니크하다는 생각에 관심이 생겨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ESG, 지속가능성 키워드가 엄청 ‘핫’할 때라 제대로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저마다 생태계에 진입하게 된 계기와 기대가 달랐다는 점이다. 공채 시기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춰 취업 준비를 하는 일반적인 경로와는 사뭇 다르다. 이에 초코씨는 “지금은 생태계가 또 어느 정도 성장해서 잘 알고 진입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없이 진입하신 분들이 많았다”며 “중요한 건 평소 관심을 두고 있었거나 물음표를 지니고 있던 키워드를 노크하는 계기를 만나 생태계에 진입한 이들이 많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진입 경로를 닦아 열어두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치 충돌의 시간, 저마다의 가치는 어떻게 지켜지고 있을까
이처럼 적게는 1.5년 차, 많게는 8년 차의 업력을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대를 가지고 생태계에 진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기대한 대로만 나아가지는 않았을 터. 만약 생태계 진입 후 기대가 충족되지 못해 실망한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초코. 이 일에 대해 시장이 인정하는 가치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을 때, 특별하게만 느끼던 일의 현실 혹은 한계를 본 것 같았어요. 사실 주니어 때는 그렇게까지 체감을 못 했는데 연차가 좀 쌓이니 보이더라고요. 프로젝트 예산을 두고 파트너와 소통을 하는데,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그 의미 있는 일에 얼마 정도의 비용을 책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간극이 있었어요. 때론 조금 더 자원이 투입되면 더욱 깊이 있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도 컸고요.
둥둥이. 정말 진정성으로 똘똘 뭉친 곳이라고 생각해서 입사를 했는데, 현실적인 여건을 우선 고려하느라 진정성을 해치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어요. 일종의 보신주의랄까요. 하던 일만 하려는 관성이나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에 매우 보수적인 접근을 하려고 할 때,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죠. 이 일을 해결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면,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닌데 모든 것이 너무 느리고, 소극적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비영리 조직의 특성일 수 있지만 ‘내가 보아온 진정성이 어디에서 온 것이지?’, ‘앞으로는 어디로 가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소위 말해 ‘현타’가 왔어요.
시에나. 이전 회사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왔다 보니, 키워드가 좁혀지면 훨씬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참 건방진 생각이었구나 깨닫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회사의 ‘체계’ 혹은 ‘시스템’의 유무가 개인 업무 퍼포먼스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했던 거죠. 아직 업무 체계가 다 갖춰지지 않은 스타트업에서 체계를 만들면서 실무를 하는 건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었어요. 이때 느낀 것이, 임팩트 생태계 자체가 매우 트렌디하고 젊은 영역이라는 외부의 시각과 달리 실제 실무를 할 때에는 어느 정도 지식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특히 환경 영역은요. 산업은 아직 어린데, 깊이 있는 실무적 감각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보니 그 괴리에서 기대가 많이 꺾였던 기억이 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업무에 적응하고 성장할 때에 가장 힘든 점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시에나. 임팩트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임팩트 스타트업이랑만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대기업, 정부 기관 등 과의 협력 지점이 훨씬 주효하죠.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협력 프로세스에서 당연하게 요구되는 자료, 지표들이 있어요. 그런데 신생 스타트업은 이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전무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저희는 고객사를 만나면 사내 절차서라는 걸 요청받았는데요. 생산 프로세스나 품질 보증 방식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인데 이걸 맨땅에 헤딩하듯 배워가면서 갖춰야 하니 힘든 점이 많았어요. 어떨 땐 달리는 기차를 잡아타야 할 정도로 호흡이 빠른데 경험이 부족해서 놓치는 기회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럴 때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장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것들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일들이 매우 빠르고 빈번하게 일어났거든요.
둥둥이. 사실 실무적인 부분은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집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깊은 고민이 생기는 건 ‘진짜 변화’에 대한 갈증이 생길 때인 것 같아요. 사회문제라는 게 프로젝트를 한 번 한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민과 사회가 진짜 변화하고 있다는 걸 체감해야 더 힘이 날 것 같은데 이 피드백이 잘 돌아오지 않을 때 심정적으로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때론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몇 년을 투자하고 노력해도 대중화가 너무 어렵다는 점, 그럴 때 가끔씩 좌절감을 느끼기도 해요.
무당벌레. 연차가 쌓이다 보니까 점점 실무보다는 관리의 영역에 더 치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업무를 깊게 파고드는 것보다는 사업 전체를 보고 예산을 관리하거나, 함께하는 구성원들에게 일을 나누고 검토하는 역할이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연구하듯이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리스크가 없을 정도까지만 관여하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쳐내듯’ 일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럴 때 마음이 많이 힘들어요.
가끔 글을 쓰는 콘텐츠 실무를 맡을 때가 있는데요,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단어 하나하나 고민하며 글을 쓰고 싶은데 업무가 과중하면 속기록을 받아 GPT에 맡겨놓고 정리하는 식인 거죠. 기술의 발전이기도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보자면 진정성과 가치 추구가 생명인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힘든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늘 진심을 다해 일을 하고 싶은데, 물리적으로 그게 어려울 때 의지가 꺾이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사전 기획할 때에는 한 가지 가설이 있었다. 이 생태계의 보상과 성장 지원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이탈의 욕구가 높아지리라는 것이었다. 특히나 연봉 수준이 높지 않다고 여겨지는 업계 특성상, 이 부분에 대한 불만족도 높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당벌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월급쟁이는 그냥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해요.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월급은 좀 근시안적인 부분인 것 같기도 하고, 막상 금전적 보상이 높은 기업에 취업해서 일한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상식이 일상인 곳이라 트레이드 오프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에는 이 ‘보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금전적인 부분보다는 ‘웰빙’의 관점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적절한 쉼 같은 것이죠. 업계 특성상 장거리 호흡으로 달려야 할 때가 많은데 가끔 나의 과부하를 조직도, 생태계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둥둥이. 저희 조직은 주기적으로 근속 휴가를 제공합니다. 앞서 다른 분들이 말씀 주신 것처럼 장거리 달리기를 해야 할 때, 늘 기대보다 더딘 변화를 꾸준히 추구해야 할 때 이 쉼의 시간이 매우 중요한데요. 조직에서 이걸 공감한다면 거기에 맞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저희 조직의 경우, 근속 휴가를 도입하고 운영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 이제 시스템이 갖춰졌어요. 예를 들면 동료가 근속 휴가를 앞두고 있다면 몇 개월 전부터 업무 분장할 때 고려하는 식이에요. 한 사람이 자리를 비웠을 때 해당 동료가 하던 일을 남은 동료들이 나누어 짊어지는 것에 대한 합의도 충분히 이루어져 있고요. 쉼을 지원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겠지만 의지만큼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에나. 입사할 때도 연봉이 낮은 건 감안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직 성장을 증명하지 못한 스타트업에 있었다 보니 우리가 함께 수확할 수 있는 과실은 저 멀리 있고 오로지 성장 증명을 위해 기약 없이 달려가야 한다는 과정 자체가 어느 순간 못 견디게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회사가 만들어내는 임팩트를 봐도 ‘이게 내 삶에는 어떤 임팩트를 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환경 솔루션을 다뤘다 보니 더 멀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만약 제가 그 임팩트를 더 실감할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혹은 대단한 금전적 보상을 당장 주어지지 않더라도 그런 보상이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제공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좀 더 버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해요.
초코. 저는 최근 가정을 꾸렸는데요. 가정이 생기다보니 이전보다는 금전적 보상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금전적 보상에 대해서는 오히려 깔끔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정말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 적절한 수준의 직장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성취와 성장에 대한 개인의 긍지를 잘 채워주고 있는가’가 적절한 보상을 바라보는 우리 생태계의 핵심 관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변화는 매우 큰데 실무는 때로 하염없이 작으니까, 각자가 만들고 있는 변화를 크든 작든 잘 읽어주고, 이해해 주고 사회 어느 부분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계속 실감하게 해주어야 해요. 그게 진짜 보상이 아닐까 생각했을 때 지금 우리 생태계 혹은 각 조직이 이걸 해주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어 이전에 생태계 동료로서 너무나 공감이 가는 답변이어서 였을까. 영화 <인턴>의 한 장면이 번뜩 떠올랐다. 젊은 조직 문화를 가진 여자주인공의 회사는 아주 사소한 성과일지라도, 그 성과를 인지한 누구나 사무실 중앙에 놓인 큰 종을 울려 함께 축하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닉네임을 쓰고, 여자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을 활보하는 것보다도 내가 이룬 작은 성과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격려하고 ‘읽어준다는 것’이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서로의 역할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는 일의 한중간에 놓이면 이 사소한 격려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코. 저희 회사는 리더십이 이 사소한 격려의 가치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 만족도가 높습니다. 설령 가까운 가족, 친구라고 할지라도 직접 업무를 함께 해보지 않으면 공감과 격려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동료가 이걸 읽어줄 때, 정말 큰 힘이 나요. 한 번은 행정 업무가 너무 복잡해 골머리를 앓던 일을 끝냈을 때, 함께 추진한 업무가 아님에도 “소통이 까다롭고 디테일했을텐데 고생하셨네요.”라고 말해준 동료 덕분에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별말이 아닌데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임팩트를 이야기한다. 각자의 부침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말이다. 그렇다면 치열한 가치 충돌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우리를 생태계에 남도록 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무당벌레. 최근 입사한 동료가 저에게 왜 이 영역에서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입사 이후 처음 생각해 본 것 같은데, 저는 처음 이 영역에 진입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렸다시피 페미니즘에 높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제가 때론 매우 불편한 주제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임팩트 생태계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일정 수준의 상식을 공유하고, 그 가치와 의의를 공감한다는 점에서요. 제가 생각하는 ‘더 좋은 세상’에 대해 일상적 고민과 실천을 나누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단지 직무를 떠나 삶에 큰 영향을 주기에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초코. 좋은 사람들과 여전히 많은 부분을 개척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까지도 골몰하다 온 업무들이 아직 세상에서 적절한 언어를 갖지 못해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아직도 좋아질 여지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도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생태계 전반이 연결되어서 더욱 많은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각개전투 하며 살아남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서로를 붙들고 상생을 고민하게 되는데요. 이런 것들이 힘겨운 시간을 견딜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둥둥이. 저에게는 좋은 동료, 그리고 건강한 조직문화가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해요. 이 조직, 이 생태계에 있으면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안전망을 체감하는 게 저에게는 큰 이유가 됩니다. 안전한 일상에 대한 믿음이랄까요.
저마다의 이유로 생태계에 남아있는 사람들. 어느덧 연차가 꽤나 쌓인 사람들만의 고충과 개선 필요 사항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생태계 1세대도, 이제 막 생태계에 진입한 주니어도 아닌 상황에서 이른바 ‘애매한 선배’이자 ‘중간관리자’로서 겪는 고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생태계의 고민 같은 것들이다. 필자 역시 7년 차에 접어들며 좋은 선배이자 탁월한 팀장으로서의 자질을 계속해서 시험받고 있다. 동료들은 어떨까?
초코. 주니어가 어떤 업무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이전에 진행해 본 적 없는 프로젝트이거나 새롭게 논의되는 사회문제 및 솔루션일 경우 저 역시 새롭게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해야 하는 지점들이 늘 존재합니다. 문제 해결 방식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것들도 많고요. 그럴 때 고민이 깊어져요. 제 스스로는 이제 나름 ‘맷집’이 생겨서 불투명한 상황도 헤쳐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걸 어떻게 알려주고 이끌어주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나도 잘 모르겠니 함께 고민해 보자’라고 말할 때 마음이 답답하기도 해요.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요.
둥둥이. 소규모의 기업은 모두 비슷하겠지만, 생태계 자체의 업력이 낮은 임팩트 생태계 특성상 팀장이 되어도 여전히 실무 담당 비율이 높은 것 같아요. 연차가 쌓일수록 큰 그림을 보고, 관리자가 되어 주니어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도 실무를 쳐내기에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오늘 인터뷰에 모인 고연차의 분들도 열심히 실무를 하다가 오신 것처럼, 경험은 쌓이지만 이걸 체화하고 다시 학습시킬 여력이 없어서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초코.(그렇다면 생태계 중간관리자를 위한 공통의 교육 혹은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도움이 될 것 같은지에 대해) 분명 필요하다고 봐요. 각 조직이 중간관리자를 교육하고 육성할 여력이 안 된다면 생태계가 함께 고민해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존 영리기업의 중간관리자 교육 문법과 소셜섹터의 문법은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영서적만 봐도 10년 차 이상의 팀장을 대상으로 한 방법론이 많은데 우리 영역은 4~5년 차만 되어도 꽤나 연차가 쌓인 선배가 되잖아요. 그리고 조직 구성이나 문제해결 방식도 좀 다르고요. 우리 생태계의 중간관리자를 위한 교육 문법을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래도 우리 가끔 서로를 들여다보자’ 다짐하며 각자가 기대하는 내일의 모습이 있을지 물었다.
초코. 이제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일이 혹시 어그러질까봐 들여다보느라 생태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전에 참여했던 일들이 지금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농구도 처음 시작하면 처음엔 공을 잘 튀기는 데에만도 많은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공밖에 못 보거든요. 그러다 익숙해지면 동료가 보입니다. 그런 것처럼 내년에는 동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생태계엔 어떤 변화가 있는지 더 잘 바라보고 싶어요.
둥둥이. 소셜섹터에서 다루는 의제들이 대중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하루를 ‘갈아 넣다’시피 일하는 것의 최종 목표는 하나거든요. 진짜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년엔 부디 그 성취와 성과, 성장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요. 좋은 공익사업이나 공익캠페인을 보신다면 유튜브든 인스타그램이든, 혹은 X든 목소리를 더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은 소박한 소망도 있습니다.
무당벌레. 주변 분들, 동료들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일하면 훨씬 덜 힘들 텐데, 요 몇 년 사이 생태계 조직들이 자원의 한계와 성장 증명의 혹독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더 여유가 없어진 것 같아요. 우리가 처음 생태계에 들어올 때 즐겁게 상상하던 그 마음처럼 좀 더 재밌게,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기반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시에나. 저는 결국 임팩트 생태계를 떠났지만, 그럼에도 1년 반 동안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추구했던 경험이 남아서인지 임팩트 관점에서 업무를 바라보게 될 때 스스로 놀라기도 해요. 나아가 몇 년 사이 영리기업의 ESG 및 임팩트 이해도도 훨씬 높아졌다고 생각하고요. 여전히 변화를 꿈꾸며 나아가는 분들 그리고 새롭게 진입하는 분들이 이러한 변화를 토대로 기대한 변화를 꼭 체감하시기를 함께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제가 배운 것들을 조금씩 적용해 가며 제가 꿈꾸는 임팩트를 다시 그려보려 합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가 끝이 났다. 사실 이 인터뷰는 ‘그래서 인재를 지키기 위해 뭐가 필요하다는 거야?’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는 아티클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 생태계의 동료, 즉 서로가 그 자체로 계속 도전할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 나아가 그 어떤 것보다도 실질적인 변화를 목격하고 성취를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보상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투자사, 클라이언트에게만 들려주고 있었다면 내부 구성원을 향한 성취 그리고 성과의 메시지를 내보내야 할 때다.
무엇이든 ‘아직’ 진정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고민을 우리 생태계가 함께 시작했으면 한다. 조직 안의 시도여도 좋고, 생태계가 함께 고민하는 형태도 좋다. 임팩트스퀘어도 새로운 고민의 씨앗을 받았으니, 머지않은 시일에 여러분을 초대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함께 간다면,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으며.
작성 : 김소선 책임매니저, 최나은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