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소비의 클래식 ‘아나바다’, O4O로 살아났다

9n년생인 필자의 어린 시절,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라는, 이른바 ‘아나바다’ 운동의 붐이 거세게 일었던 적이 있다. 통학길 위에서 양손 무겁게 폐신문지를 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운동회날이면 운동장 한편에서 바자회가 당연스레 열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 표어는 이제 옛것이 되었지만, 어쩐지 그때 그 시절의 아나바다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중고 거래다. 이 중고 거래의 핵심 매커니즘에 O4O(Online for Offline)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옛날의 아나바다가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아숨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가치소비의 클래식, ‘아나바다’가 2024년에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편집자 글>

©Shutterstock

나눠쓰고 바꿔쓰기 위한 중고 거래의 등장

가치 있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더욱 세상에 이로울까, 혹은 더 이상의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소비하지 않는 것’이 더욱 이로울까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물론 상당히 많은 전제가 필요한 질문이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가능하면 새로운 물건을 덜 만들고, 덜 사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경제 순환 매커니즘이라는 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말로 소비의 필연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원과 자본은 흘러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꼭 새로운 물건을 사지 않아도 자원과 자본이 흐를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매커니즘이 생겨난다면 ‘사지 않음’도 새로운 소비 행태로서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하고 폐기물이 되기엔 여전히 쓰임이 있는 물건을 살뜰히 살펴 다시금 사용할 수 있다면 이보다 심플한 가치소비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며, ‘중고거래’가 그 선봉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내가 쓴 물건 혹은 남이 쓴 물건을 나누거나 바꾸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교환이 필연적이다. 물건은 오프라인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비즈니스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나’의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탐색할 수 있어야하고, 또 원활히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본 문법을 빠르게 포착해 중고거래 플랫폼 비즈니스의 시작을 알린 사례가 있다. 바로 십수년전 등장한 ‘중고나라’다.

중고나라의 시작은 이렇다. 내가 원하는 제품이 언제나 전시되어 있는 온/오프라인 매장과 달리 중고 제품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물건을 내놓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놓는 제품을 폭넓게 찾을 수 있어야한다. 또 내가 필요할 때에 시의적절하게 물건을 구매하려면 넓은 지역을 커버하면서 다수의 고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거래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고거래 희망 유저들의 니즈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필자 역시 모자란 용돈 대비 갖고 싶은 물건이 많았던 2000년대 초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중고거래를 즐겨했다. 당시 유행하던 MP3, PMP 모두 중고거래로 구입해 톡톡히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당시 중고거래에는 한 가지 크나큰 단점이 있었다. 바로 ‘사기’의 위험성이다. 50만 원이 넘는 스피커를 구매했더니 벽돌이 왔다던가, 혹시 사기는 아닐까 싶은 마음에 여러가지 인증을 요청해 받았음에도 3자 거래로 인한 사기였던가 하는 식이다. 그래서 플랫폼은 다시 진화했다. ‘당신 근처의 마켓’을 표방하며 대면 거래를 앞세운 ‘당근마켓(현 ‘당근’)’ 그리고 중고거래 마켓 내에서의 현금 거래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안전거래’나 자체적인 ‘OO페이’의 등장이었다.

©당근마켓

그런데 이 당근마켓이나 세부 기능들이 단순히 ‘중고나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신 아나바다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당근마켓에는 O4O 전략이 숨어있다. 

O4O 전략을 아시나요?

O4O는 ‘Online for Offline’의 줄임말로, ‘기업이 온라인을 통해 축적한 기술이나 데이터, 서비스를 상품 조달, 큐레이션 등에 적용해 오프라인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차세대 비즈니스 모델(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이다. 즉, 온라인 유저를 오프라인으로 유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O2O와는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핵심은 온라인 데이터 및 플랫폼 경쟁력을 활용해 오프라인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당근마켓이 어째서 O4O 전략의 한 예시이며, 이것이 가치소비 확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것일까?

앞서 서술한 것처럼 중고거래는 엄청난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바로 ‘사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렇다보니 ‘중고거래를 해볼까’ 싶다가도 사기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제품 컨디션이 예상보다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실제 거래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파다하다. 이때,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라는 컨셉을 차용해 직접 만나 물건을 확인하고, 판매금액을 실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소비자의 우려를 잠재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용자의 거주지 데이터를 확보하고, 인근의 판매/구매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근페이’라는 온라인 금융 시스템을 연계하여 비대면 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판매 대금을 ‘떼일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잠재운다. 

중고나라가 중고거래의 시작을 알렸다면, 당근마켓은 중고거래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바로 IT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서 말이다. 이후 당근마켓은 사명을 ‘당근’으로 변경하고 오프라인 기반 소상공인의 광고 홍보 콘텐츠를 연결하거나, 오프라인 이벤트를 여는 등 같은 지역 데이터를 가진 잠재 소비자를 판매자와 연결하는 서비스로 사업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O4O 전략을 통한 중고 거래가 또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고거래의 반란, O4O 전략을 등에 업고 혁신을 거듭하다

당근마켓이 천하통일한 중고거래 시장의 블루오션을 찾아 출사표를 내는 브랜드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세븐일레븐과 중고나라가 협업한 ‘세븐 픽업’, 현대백화점의 ‘세컨드 부티크’ 등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당근마켓과는 차별화된 대상, 서비스를 다루고 있지만 본질적인 맥락을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O4O 전략이 숨어있다. 

세븐 픽업은 중고거래를 희망하지만 대면 거래가 두려운 사람을 타겟한다. 비대면 거래를 희망하는 판매자는 중고거래 게시글 등록 시 거래를 희망하는 세븐일레븐 점포를 최대 3곳 선택할 수 있고, 중고나라 페이를 통해 거래가 성사되면 위탁이 가능하다. 위탁이 완료되면 구매자에게는 픽업교환권이 발행되어 지정된 세븐일레븐 점포에서 중고거래 물품을 찾을 수 있다. 본 사례에서는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을 활용한 O4O 전략을 살펴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중고나라’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세븐일레븐’이라는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연결되어 시너지를 낸다는 점이다. 이처럼 O4O 전략은 단 한 개의 브랜드가 중심이 되어 전개되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이 연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 가능성이 높다. 

현대백화점의 ‘세컨드 부티크’ 역시 O4O 전략 안에서의 협력이 돋보인다. 세컨드 부티크는 세컨드핸드(Secondhand, 중고 물품) 의류 플랫폼 브랜드인 ‘마켓인유’, 중고 명품 플랫폼 ‘미벤트’, 친환경 빈티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리그리지’ 등과 협업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기존의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연결해 직접 확인 및 구매가 가능하게 할뿐만 아니라 여러 브랜드가 협력해 O4O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앞선 두 사례는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하나는 온라인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이 구매자에게 물건을 큐레이션해 보여주거나 잠재 구매자를 한 곳에 모아내는 방식으로 각각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온라인상의 액션과 오프라인상의 액션을 행하는 주체가 동일한 브랜드가 아닐 수도 있으며 그저 잠재 고객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효용이 있는 ‘제3의’ 오프라인 공간이 온라인상의 액션을 받아줄 수 있다는 점이다. (O2O는 하나의 브랜드가 온라인 액션을 오프라인으로, 또한 오프라인 액션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O4O와 구별된다.)

오늘과 내일의 아나바다는 어디로 나아갈까?

상징적인 비유를 위해 ‘아나바다’라는 옛스러운 표어를 사용했지만, 이 아나바다가 다시금 강력한 트렌드로 일어나게끔 하는 배경엔 임팩트 비즈니스, 사회적 가치, ESG 등 지금 가장 주요한 키워드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에 도열해놓은 물건을 소소하게 주고받던 시절과 지금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소비’ 자체가 이루어지는 경제의 문법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중고 물품을 구매하고, 혹은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건을 판매하고 싶어하는 ‘가치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메가 아젠다를 선점하고 이를 비즈니스화하여 시장 경쟁력을 선도하려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임팩트 비즈니스의 매커니즘을 그대로 담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비즈니스 경쟁력을 탑재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임팩트 비즈니스의 본질은 기존의 사회문제를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구조를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변혁하여 비즈니스가 그 자체로 문제 해결의 키가 되도록하는 데 있다. 중고거래는 바로 그런 맥락에서 과잉 생산을 막고, 폐기물 문제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문제 해결 솔루션이 되고 있다. 필자는 O4O 전략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 가치소비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한 곳에 모아내고, 그것이 확산되는 흐름의 데이터를 모아 더욱 필요한 곳에 기존의 자원이 흐를 수 있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로 말미암아 더 많은 제품 및 서비스가 소비되기 위한 전략이 아닌, 더 적확하게 소비될 수 있는 방향성으로의 O4O 전략이 약진하기를, 한 명의 가치소비자로서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작성자 : 임팩트스퀘어 김소선 책임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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