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환경적인 제품이 가장 저렴한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가치소비를 논할 때 ‘가치 있는 것을 소비한다’라는 현상에 집중한다. 갑질 논란이 있는 회사에 대한 불매 운동, 비건 제품이나 유기견 기부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행동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고민해 봐야 할 것은 ‘우리가 왜 가치소비에 집중하는가’이다.

‘가치소비’가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이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강력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제품들은 좋은 가치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이유로 가치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들 수 있다. 기존에 없던 공정을 만들어야해서, 원료가 비싸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가격이 비싸지면 소비자는 망설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좋은 가치를 가진 제품들이 저렴하기까지 하다면 어떨까? 지속가능하지 않은 제품에 비싼 가격이 매겨진다면 어떨까? 

본 글에서는 ‘제품의 지속가능성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세상이 온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아래에는 상상하고자 하는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특정 상황들을 가정하였다. 이 상황들은 현실과는 무관하며, 창작을 통해 구성된 허구적인 내용임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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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1) 같은 거리면 비행기보다 기차

마포구에 거주하는 23세 대학생 최 씨는 방학을 맞아 부산 본가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 내려갈 교통편을 예매하기 위해 기차와 비행기 시간을 확인하던 중에 비용을 확인하고 놀랐다. 한 달 새 항공편 비용이 3배 이상 올라버린 것이었다. 그전까지 기차와 비행기 가격 차이가 크지 않고, 가끔은 비행기가 더 저렴해 종종 비행기를 탔었는데 이제는 부산까지 기차는 5만 원, 비행기는 20만 원이 되어 금액적인 부담 때문에 비행기 옵션은 고려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km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은 기차 14g, 비행기 258g이다. 비행기가 기차보다 20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영향이 서비스 가격에 반영된 세상에서는 어떤 변화들이 생길까? 항공편 수요가 감소하지 않을까? 특히 버스, 기차 등 대체할 수 있는 옵션이 존재하는 국내선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항공사들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해당 업계에서는 환경 비용이 재무적으로 반영되는 시점이 도래할 것을 예상해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항공기 연료 효율을 높이고 오염을 저감하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은 연구대학 및 기업 공학팀과 협력해 엔진 배치, 동체, 폭, 길이, 너비, 날개 배치, 심지어 항공기 본체의 종합적인 재설계 등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항공기의 택싱*, 이착륙, 항공 경로 개선에 대한 실험과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플랜드로다운, 2019) 비행기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이는 방법으로 주목받는 지속가능 항공유(SAF, Sustainable Aviation Fuel) 도입도 같은 맥락이다. (더구루, 2024)

*항공기가 공항 또는 비행장에서 계류장 구역을 나와 유도로에서 활주로까지 이동하는 것

(상상 2) 서울에 새우 양식장이 들어온다고요?

양식 파인다이닝 식당을 운영하는 37세 윤 씨는 5년째 같은 유통업체를 통해 호주의 어느 목장에서 나온 소고기를 구매해 왔다. 그런데 얼마 전 유통업체로부터 수입 소고기에 탄소국경세가 붙어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가격 상승을 고려하니 한우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윤 씨는 이를 계기로 식자재 전반을 국내에서 조달해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식당으로 컨셉을 다시 잡았다.

네이처 푸드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30% 수준인 것으로 추정됐다. 그중 식품운송 분야가 전체 배출량의 약 6%를 차지했다. 항공 부문 배출량이 약 2%인 것에 비교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ESG경제, 2022) 2012년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서 발표한 ‘식품 수입에 의한 푸드 마일리지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 산정 결과’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4개국 중 우리나라의 1인당 식품 수입량, 푸드 마일리지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비교 대상 국가 중 1위이며,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 2023) 식량의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이 가격에 반영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시의 상황처럼 국산 농산물이 가격 경쟁력을 갖춰 수요가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작물 중 기후와 토질 조건이 맞는 일부 작물은 국산화하는 시도도 일어날 수 있다.

식량의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새우 양식 산업은 동남아, 남미 등 지역의 맹그로브 숲이 파괴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다와 가깝고 영양분이 풍부한 맹그로브는 양식장으로서 조건이 좋다는 이유로 수십 년간 새우 양식업자들에게 벌목되어 왔다. 미국 오리건대학 연구에 따르면 동남아산 양식 새우 100g이 내뿜는 탄소발자국은 198kg에 이른다. FAO는 한국이 2021년 기준으로 약 1조 2,200억 원어치 새우를 수입하며, 이는 전 세계 국가 중 6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수입산 새우 중 약 40%가 베트남산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양산업종합정보시스템, 2022) 

한국수산기술연구원은 수산자원에 대한 전문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수산자원 양식 솔루션을 전개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들이 추진하는 사업 중 ‘육상’ 기반의 스마트 새우 양식 솔루션은 해안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수산 양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맹그로브 숲을 해치지 않고도 새우를 먹을 수 있는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들은 바다환경과 유사한 수질, 해안가보다 안전한 양식 환경을 구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친환경 첨단 순환 여과 시스템을 개발해 양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 양식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육상 양식이기에 더욱 매력적인 점은, 해안가와 먼 지역의 소비자에게 신선한 새우를 최소한의 유통 경로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새우 양식장을 마주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임팩트스퀘어, 2023)

(상상 3) 재활용 안 되는 옷, 비싸서 못 사요. 

친환경 패션 제품을 리뷰하는 25세 인플루언서 김 씨는 리뷰할 제품을 고르던 중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제품 가격을 소폭 인상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떤 이유로 가격이 올랐는지 궁금해 찾아보던 중 의류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규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규제의 내용은 의류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량을 할당하고, 달성하지 못할 경우 미달성량에 해당하는 재활용부과금을 납부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재활용이 까다로운 의류에 부과금 단위 비용을 높게 책정했고 이러한 비용이 가격에 반영된 것이었다.  

2021년 기준 국내 폐의류 발생량은 11만 톤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환경부) 폐의류는 소매, 목 부분 등 부위별 소재가 다르고 지퍼, 단추 등 금속, 플라스틱 재질이 결합하여 재질별 선별, 재활용이 매우 어렵다. 현재 폐의류는 대부분 매립, 소각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이 막대한 상황이다. 의류 폐기물의 처리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하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미 EU에서는 의류 폐기물 재활용 책임을 생산자에 부여하는 내용이 논의되고 있다. 23년 7월 EU 집행위원회는 생산자책임제도(EPR)를 의류 업계로 확장하는 내용의 폐기물 기본 지침 개정안을 제안했다. 해당 개정안은 올해 3월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되었으며 하반기 EU 회원국들과 관련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European Parliament, 2024) 제도가 시행되면 재활용 이슈에 대비하고 있던 기업들과 그렇지 않은 기업들의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 위치한 세티아라는 회사는 신발 재활용을 위해 신발을 해체하는 설비를 개발했다. 해당 설비는 신발의 바닥과 옆면을 깔끔하게 분리하는데 난이도가 높아 시도되지 않았던 영역에 도전해 성공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의류 폐기물 재활용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스튜디오랩은 비전 AI와 분광분석 기술을 활용해 의류 폐기물을 소재별로 선별, 분류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 개발을 통해 소재별 분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원료화 기술을 활용해 면,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일부 소재에 대한 재생이 가능해진다. 제도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을 가속할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춰진다면 우리는 헌 옷이 새 옷으로 순환하는 미래를 더 빨리 마주할 수 있겠다. 


같이 고민해 봅시다.

사실 이 글은 ‘왜 환경비용이 시장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필자의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다른 질문들이 생겼다.

원래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외부비용의 내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으나 조사하다 보니 탄소세, 배출권거래제도, 탄소국경세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진행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그것이 개별 소비자가 인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 기존에 가진 질문은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여러 상상을 해보는 동안,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 외부비용을 내부화 과정에는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개발도상국의 발전 기회를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산업화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는 저렴한 저탄소 기술이 많지 않다. 환경 기술에 접근하지 못해 화석연료로 제품을 생산하면 앞서 언급된 제도들에 의해서 어마어마한 환경비용이 제품에 붙게 된다. 결국 생산된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고 개발도상국은 빈곤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어진다.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주제인 듯하고, 필자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반드시 논의가 필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아래에 나누고 싶은 질문들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1.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환경비용을 시장에 반영할 방법은 없을까?
    -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막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나 기후위기 대응이 몹시 시급하다. 일부 양보하는 방식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


  2. 환경비용의 시장 반영 없이 기후위기를 극복해 나갈 방법은 없을까?
    - 자본주의 시대에서 가격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또한 이 흐름을 거슬러 가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환경비용의 시장 반영 없이 기후위기를 극복해 나갈 방법은 없을까? 

아직의 난제이지만, 본 아티클을 봐주신 여러분들도 차근차근 함께 고민해주시고, 또 함께 나눌 기회가 더욱 많아진다면 분명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바로, 임팩트 비즈니스로.


작성자 : 임팩트스퀘어 최나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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