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까지 00km, 로컬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도시에 살고 있습니까?
임팩트스퀘어가 위치한 심오피스53 1층에는 ‘세퍼레이츠(Separates)’라는 전시 공간이 있다. 이곳은 이른바 ‘힙스터’들의 성지인 서울숲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전시 공간에도 다양한 팝업이 바삐 열리고 있다. 덕분에 사무실을 오가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 최근 아주 인상 깊은 전시가 있는데, 바로 10월에 진행되었던 강화 유니버스 팝업이었다.
이번 팝업은 정부의 ‘청년마을 만들기(이하 청년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연계되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강화 지역에 있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팝업스토어에 진입해서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문득 나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서게 한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천 강화, 더 정확히 말하면 강화 앞 ‘인천’이라는 도시명에서다.
나는 인천 출신으로, 강화가 인천 소속 지역이라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천’은 너무나 지극히 ‘도시’라는 생각과 함께, 그 속에 사는 사람으로서 로컬은 나와는 먼, 도시 밖의 이야기로 여기며 지냈다(고백하자면 그렇다). 지난 몇 년 간 지방 소멸 문제, 그리고 수도권 과밀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계속해서 부각되었고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지역 활성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사업들과 내 일상 사이에는 큰 강이 건너고 있었다. 나는 그 강 너머에서 ‘로컬’을 떠올리며 수도권과 먼 여느 시골 마을을 떠올렸다.
그래서 낯설었다. 로컬을 화두로 한 강화 앞에 인천이 붙어있다는 사실이 정말 ‘새삼’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경계를 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 로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로컬을 단순히 지리적인 행정구역으로 기준 잡아 정의할 수 있는가?’, 혹은 ‘로컬에 지리적 개념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면 무엇일까?’ 등이다.
‘로컬’ 의 의미
지역, 지방, 현지, 시골 중 어떤 단어가 가장 로컬에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하는가? 이 단어들은 어학사전에 ‘로컬(Local)’을 검색, 직역한 것들이며 흔히 로컬 관련한 콘텐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
최근 문체부에서는 ‘로컬 100(링크)’을 선정했는데 선정 대상으로는 앞에서도 언급된 강화 지역의 소장체험관, 이 외에도 속초 아바이 마을, 양양 서피비치, 춘천 감자빵, 가평 재즈페스티벌 등으로 대상이 지역문화 명소에서 콘텐츠, 심지어 명인까지 다양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떤 맥락에서 로컬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정확히 알아보고, 또 이해하고 싶어 그 선정기준을 다시 찾아보았다.
▲매력성, 특화성, 지역문화 연계성
▲문화·경제·사회적 효과
▲지역주민 및 방문객 방문·향유 영향력
▲지역발전 기여 가능성 등에 대한 국민발굴단과 지역문화 전문가 등의 평가와 누리소통망(SNS) 언급량, 통신데이터 추정 방문객 수 등 빅데이터 분석 결과 반영
위 기준은 매력적인 지역 문화, 영향력, 경제효과로 정리된다. 매력적인 지역문화가 비로소 영향력을 갖게 되면,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경제효과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때, 거듭해서 눈에 걸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문화’다. 그래서 나는 문화라는 키워드를 좀 더 살펴보았다.
문화의 사전적 정의는 인류의 지식·신념·행위의 총체로 사실 ‘문화’ 역시 정의하는 맥락과 범주가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가장 근본적인 전제를 다시 살펴보면 ‘인류가 주체가 된다’라는 점이다. 그리고 ‘지식, 신념’을 행하는 ‘인류’는 다시 말해 공동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혹자는 ‘공동체는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치, 고통, 환희, 고통 등을 경험· 표현· 공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김예란 등, 2017)’고 말했다. 즉 함께 경험하고 공유하였을때 공동체가 발명되어 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로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어지던 중, 조심스레 한 가지 명제를 세워보았다. 한 지역 안에서 그러한 공동체가 발견될 때, “로컬”의 원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지역을 빼놓을 수 없는 경험
공동체는 비단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문화는 문화이지. 지역이 뭣이 중헌디!‘ 라고 고민이 들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번뜩 떠오르는 하나의 경험이 있다. 그것은 바로 뉴욕의 코리아타운이다. 대도시 중에 대도시. 뉴욕이 웬 말이냐고?
거대 도시 맨해튼 속 코리아 타운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맨해튼 32번가에 위치한 코리아 타운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마천루 이미지와는 상반된 이미지로, 비교적 아담한 건물들과 속 골목 사이사이 작은 상권들이 즐비했다. 골목에는 이목구비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우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패션, 화장법을 가진 교포들이 있었고, 식당에 들어서면 여느 한국 식당과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음식을 주문할 때 영어로 소통하거나, 젓가락 사용법이 테이블에 나와있는 것을 보고 이 공간이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임을 느끼곤 했다. 머물수록 그 곳에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이 매우 궁금해졌다. 예측가능한 것 같으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삶이었다.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그 곳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또 가고싶은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는 하나로 통칭되는 거대 도시 속 특정 공간에서의 구분되는 공동체를 경험했던 것이다. 이는 로컬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위에 언급했던 것과 같은 도시 안에서도 완전히 구분된 경험, 즉 “매력적인” 지역문화를 경험한 것이다.
매력적인 공간
뉴욕의 한인타운과 같은 경험을 국내에서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해외라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지만, 구분되는 공동체의 경험이라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반도에 머물며 구분되는 공동체에서 오는 매력적인 경험을 얼마나 경험했나. 반성하며 국내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온전히 경험 기반으로 적어 익명으로 작성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하동 팬션 주인장 부부
작년 가을 하동에 친구들과 놀러갔을 때 이 분들을 보았다. 우리가 머문 팬션의 주인장 이셨는데 그 곳에서 차 재배도 직접 하셨다. 다도 체험을 하며 주인장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원래 인근 큰 도시에 살다가 어떤 사정으로 온 가족이 화개로 낙향하였고, 이웃의 도움으로 녹차 만드는 법도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주머니에게 그 동네의 고양이들, 밤하늘, 녹차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2. 개항로 카페 주인이자 문화기획자
이전에 사이드 프로젝트로 이 분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은 브랜드가 문화를 전하는 매개라고 생각하여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고 카페라는 공간에서 여러 문화예술 활동이 일어나도록 기획 하는 일을 하셨다. 개항로가 고향은 아니지만, 가장 먼저 개항되었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여 이 지역에서 공간을 운영하기로 마음 먹고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 지역에는 오래 사신 분들이 많았는데, 출근할 때마다 그 분들 집 앞에 말려져 있는 고추가 재밌어서 사진을 찍는다 하셨다.
3. 충주 책방 주인
이 분은 지인의 지인으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충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쭉 서울에 살았다고 했다. 졸업 이후에는 남들처럼 당연히 서울에서의 삶을 꿈 꾸었다고 했다. 그러나 우연히 충주 내 로컬 프로젝트를 하며 동네의 구석구석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충주의 매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본인도 충주에서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다고했다. 당시에는 책방을 여는 것이 목표라고 했는데 현재 진짜 오픈하여 운영중이시다.
위는 모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현재 거처에서 옮겨 타지역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게 된 경험들이다. 적으면서 깨달은 사실은 지역을 떠올리며 나는 모두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에 머물며 진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공동체라고 말하기에는 나는개개인을 만났지만 그들은 동네 속에서 함께하는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이 로컬이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해당 지역에서의 삶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옆에 누가 사는지, 같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삶도 로컬에서, 비로소 다시
이러한 개인의 단상에 가까운 글을 쓰게 된 데는 나 역시 도시 과밀 문제, 그리고 지역 소멸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을 단지 바라는 것과, 실제로 변화가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은 한 끗의 관점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와 로컬을 일반화된 이미지로 경계지어 놓고, 자신의 일상에서도 무수히 생겨나고 확장되는 공동체의 매커니즘을 진지하게 응시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앞으로도 진정으로 로컬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살고 있는 지역의 규모를 떠나, 여러분은 어떤 공동체에 속하고 있는가? 혹은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가? 로컬을 너무 멀리 떼어놓지도, 어렵게 바라보지도 말고, ‘공동체’로서 다시 바라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로컬일 수 있고, 그 다양성과 풍부함이 우리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작성자 : 임팩트스퀘어 조예신 매니저
<참고문헌>
문체부보도자료 “지역에 숨어 있는 100가지 매력 ‘로컬100’, 키크니 작가와 함께 알린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래, 하이퍼로컬. 김재영(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공동체는 발명되어야 한다. <한국언론정보학보>, 81호, 40–74. 김예란‧김용찬‧채영길‧백영민‧김유정 (2017).
동네의 재발견: 하이퍼로컬리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국언론정보학보>, 109호, 153-184. 양은주·김지영·오창식·차창훈·최정·최진실·김재영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