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V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니다: 네슬레의 생수 사업을 둘러싼 논의를 중심으로

2013. 9. 30. 11:36

이 글은 임팩트스퀘어가 지속가능경영포털에 기고한 [공유가치 포커스.01]_CSV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니다 를 옮긴 것입니다. 원문 PDF 파일은 지속가능경영포털 전문가칼럼 게시판에서 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네슬레, CSV 의 대표주자

지난 6월 북미 네슬레 워터(Nestle Waters North America, NWNA)에서는 세 번째 Creating Shared Value Report 를 발간했다. 식음료 산업에서 공유가치창출(CSV)을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CSV 를 전사적인 전략으로 추진해 온 네슬레는 기업의 가치 사슬을 사회라는 폭넓은 범주 안에서 이해하면서, 법이나 사업 기준, 행동 강령을 준수하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추구, 그리고 영양, 물, 농촌 개발 세 개 분야에서 공유가치를 창출하는 피라미드를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고 있다. 사회 문제와 비즈니스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획득하고 이윤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공유가치는 자칫 이상적인 이론으로만 남을 수도 있는데, 네슬레는 그 어느 기업 보다 공유가치의 실현가능성을 우수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생수를 파는 게 CSV? 뜨거운 찬반 논쟁

네슬레의 공유가치활동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커피 생산 농가를 대상으로 농기술 교육을 제공하고, 이들이 농업 산업 시설이나 기술 및 기계, 유통 채널,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수 있는 클러스터를 개발하면서 안정적으로 우수한 품질의 원두를 공급받아, 캡슐 커피시장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네스프레소(Nespresso) 이다. 또한 인도에서 빈혈에 시달리는 유아와 여성들을 위해, 필요한 영양소를 쉽게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을 개발한 사례도 종종 언급된다. 농촌 지역 개발, 그리고 인도 빈곤층 인구의 건강이라는 문제에 개입하여,이 문제가 기업의 가치사슬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 비즈니스 가치와 연계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위 활동에서 접근한 문제가 많은 이들이 합의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점에서, 이러한 활동이 공유가치의 일환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6월에 발표된 북미 네슬레 워터의 CSV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CSRWire 에 실린 “Decoding Nestle Water North America's Sustainability Journey:Environmental Villain or Facts vs. Emotioons?” 과 TriplePundit 에 실린 “Does Nestle’s Bottled Water Pass the ‘Creating Shared Value’ Test?” 아티클은 ‘생수를 파는 게 CSV 인가?’라는 논쟁에 불을 지폈다. 북미 네슬레 워터는 미국의 생수 시장에서 대표적인 브랜드를 다량 보유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Nestea,Perrier 도 이 기업의 브랜드이다. 북미 네슬레 워터의 대표 상품이 생수이다 보니 전사적으로 추구하는 공유가치와, 생수라는 상품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도발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Nestle in society 피라미드. 가장 최상의 단계가 공유가치창출이다. 출처: NWNA Creating Shared Value Report

네슬레, 생수를 옹호하다

선진국에서는 풍요로움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역설적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데, 지구반대편에서는 음식이 없어 누군가 굶주리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지나친 칼로리 소비로 비만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낮을 수록 집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적고, 자연스럽게 가공 식품을 섭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건강 문제가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국의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앞장서서 운동을 적극 장려하는 건강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비만 문제에 기여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탄산 음료이다. 미국을 방문했을때, 식당에서 나오는 음료수 컵의 사이즈에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기업들은 더 많은 양을 판매하여, 더 비싼 가격을 받고자 하기에 건강을 고려해서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기준과 관계없이 소비자들에게 달콤한 설탕의 유혹을 마음껏 보낸다. 뉴욕 시장 블룸버그는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16 온스 (약 450 그램) 이상의 탄산 음료 및 설탕이 과다 함유된 음료를 레스토랑, 극장 등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기까지 하였다. (참고로 지난 7월, 이 법안은 위헌 판결을 받는다.)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소다를 법적으로 제한하려 한 블룸버그 뉴욕 시장

네슬레 보고서에서는 ‘당이 들어간 음료로부터 비롯되는 칼로리가 지난 40년간 두 배로 늘었으며, 미국 내 성인 및 아동, 캐나다인들은 과체중 혹은 비만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지적하며 음료 산업이 북미 지역에 던지고 있는 위협을 과소평가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따라서 탄산 음료 대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논리로, 생수 병으로 어떻게 CSV를 달성하는가 공격하는 입장에 맞섰다.

생수 판매는 CSV 가 아니라고 바라보는 시선들

반면 이를 석연치 않게 바라보는 이들의 주요 비판은 CSV 보다는 생수 산업 자체에 활을 겨누었다. 먼저 이들은 인간은 물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점에서 물은 지불 능력에 따라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때 수돗물만 틀면 누구나 공짜로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었는데 기업의 마케팅으로 결국 물이 상품화됐으며 네슬레가 사회 문제를 진정으로 신경 쓰고 있다면, 해결책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물을 판매하는 쪽이 아니라 안전한 수돗물 공급에 투자하는 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필요 하게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낸다는 문제도 생수 산업을 공격할 때 같이 등장하는 이슈이다.

이러한 비난은, CSV 가 기업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에 무게를 싣고 있기에 네슬레 입장에는 불공평한 주장일 수 있다. 네슬레는 이미 미국인들의 수분 섭취 70%가 포장된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포장된 물이 없을 때 63%의 소비자가 다른 음료를 구매할 것이며 이 때 마시게 되는 것은 결국 탄산음료일 것이기에 소비자들은 건강을 기준으로는 더 나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소다를 멀리하기 시작하는 소비자들이 대안으로 생수를 찾고 있는 현상이 관찰 되기도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해서는, 포장에 소비되는 플라스틱을 최소화하고 재활용을 활성화하여 환경적 임팩트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비판은 좀 더 CSV 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생수 판매가 CSV 라면 제로 칼로리 콜라, 염분이 적게 들어간 수프, 샐러드가 포함된 맥도날드 메뉴도 모두 소비자들에게 더 건강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데 이것도 CSV 로 볼 수 있는가라는 주장이다. 네슬레가 인도의 영양소 결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맛이 강하지 않으면서 원래 인도 여성들의 조리 습관을 고려한 상품을 출시하여 성공을 거둔 것처럼, 저지방 우유, 제로 칼로리 콜라, 야채를 더 많이 포함시킨 패스트푸드 세트메뉴 역시 공유가치창출인가.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지 않다’는 편에 서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CSV 전략에서는 기업의 활동과 사회적 임팩트 창출 사이에 직접적이고 유의미한 관계가 성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비만이라는 사회적 이슈의 주요 원인이 설탕이 다량 함유된 탄산 음료라는 근거가 성립해야 하며, 칼로리를 낮춘 음료를 소비자들이 대안으로 선택하여 그들의 건강 상태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선된다는 결과가 밝혀질 때야, 그리고 그 상품의 판매로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거나 이윤을 확보하거나 경쟁기업에 비해 우위를 확보하게 될 때 비로소 제로 칼로리 콜라가 CSV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임팩트와 비즈니스 임팩트 사이에 강한 상관 관계가 밝혀질 때, 우리는 CSV를 기존의 전통적인 경영 전략과 구분할 수 있다. 덧붙여, 이러한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 혁신과 스케일업(scale-up)이기 때문에 단순히 사회친화적인(prosocial) 상품을 시장에 내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공유가치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북미 네슬레 워터의 브랜드 포트폴리오. 출처: NWNA Creating Shared Value Report

CSV를 경영 전략으로 이해하는 통합적인 관점 필요

이 논쟁의 시발점이 된 북미 네슬레 워터의 보고서를 읽어보면, 네슬레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물’ 이슈에 어떻게 접근하고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핵심 자원을 자연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기업으로서, 물의 조달부터 상품 가공, 포장, 폐기 처분 과정에서 환경, 소비자, 지역사회, 주주, 임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접근하고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단순히 ‘생수’라는 상품을 놓고 리트머스 시험지로 파랑/빨강색 실험을 하듯 CSV 테스트를 하는 것은 전략으로서 CSV 가 가진 함의를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시스코의 네트워킹 아카데미가 IT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능력있는 직원들을 영입하여 CSV 를 성공적으로 실현했다고 해서,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실시하는 취약계층 대상 IT 교육이 모두 CSV 가 될 수 없듯이, 우리는 기업이 어떠한 논리로, 어떠한 과정으로, 어떠한 활동을 통해 사회적 임팩트와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때 CSV 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이해에 다가설 수 있다.

CSV 의 성공은 사회적 임팩트에서 비롯되는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로 증명되겠지만, 이러한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은 기업이 스스로의 활동을 바라보는 태도(mindset)의 전환이라고 포터는 강조한다. 즉, 네슬레는 스스로를 더 이상 식품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영양(nutrition)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고, 나이키는 신발이 아닌 건강함을, IBM은 컴퓨터/테크놀로지가 아닌 더 똑똑한 지구와 도시(Smarter Planet, Smarter Cities)라는 환경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기업의 목적을 수정함으로써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활동들이 ‘어떻게 하면 더 싼 가격이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할 수 있을까?’ 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제공하는 건강, 영양, 웰빙, 기술에의 접근성, 즐거움 같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의 고민 속에서 재조정된다.

따라서 CSV 를 경영 전략으로 도입하여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사가 생산하는 가치에 대한 치열한 고민, CSV 를 통해 기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장기적인 비전,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 등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네슬레는 기업의 몸속에 CSV 의 DNA 를 끈기있게 이식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참고로 지난 5월 보스톤에서 열린 제3회 Shared Value Leadership Summit 에서 만난 Peter Brabeck-Letmathe 네슬레 회장은 본인의 발표 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행사가 끝날 때까지 테이블에서 자리를 지키며, 쉬는 시간마다 몰려드는 질문 세례에 친절하게 응하였고, 토론 세션에서도 CSV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CSV 를 기업의 전략으로 이해한다면, ‘생수병이 CSV 인가 아닌가’라는 질문 자체가 이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수라는 상품 하나로 테스트를 할 수 있을 만큼 CSV는 단순하지 않다. 아직까지 생수 소비가 미국인들의 건강 문제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생수 판매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인지, 단순히 상품이 아닌 자원으로서의 물을 기업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경쟁 기업과 비교했을 때 네슬레의 비교 우위는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CSV 의 성공은 결국 긍정적인 사회 변화와 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판별되게 때문에, 당장은 생수 사업이 CSV 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보다 네슬레가 물을 파는 기업이 아닌, 건강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어떻게 거듭나는지 장기적으로 지켜보는 것이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

작성자 : ISQ 이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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