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커뮤니티 리뷰 #2] ‘덕질’로 탐구한 커뮤니티의 본질, 티타임으로 증명한 서사의 힘
‘도대체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두고 한참 고민하던 시기에,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티타임을 열심히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커뮤니티와 티타임?’이라는 호기심이 불쑥 생겨나 이리저리 알아봤을 때, 거창하고 비장한 만남이 아닌 작은 티타임에서 촉발된 인연이 어떻게 사람을 엮어내고 자그맣지만 단단한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지에 관한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오늘의 인터뷰는 숱하게 비워진 찻잔에 담긴 개인의 서사를 엮어 단단하고 다정한 커뮤니티를 가꿔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편집자 글>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임팩트 얼라이언스’에서 커뮤니티 기획 및 운영 업무를 운영하고 있는 박정웅입니다.
임팩트 얼라이언스는 사회문제를 기업가정신 기반으로 해결하려는 기업들의 협의체인데요, 공공기관, 정부 부처, 지자체 등과 임팩트 생태계 간의 ‘통번역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저의 표현대로 ‘통번역가’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정책이나 제도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현장의 언어로 바꾸고, 또 현장의 언어를 정책과 제도에 맞춰 다시 번역해내는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축에서는 회원사 간 커뮤니티 운영을 맡고 있는데요, 저는 이 커뮤니티 업무를 ‘신뢰와 우정을 만드는 일’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회원사 간의 연결,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 언어와 맥락을 서로 이해하고 통역하는 일을 하며 신뢰 그리고 SE생태계의 우정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SE 생태계에 진입하실 때부터 커뮤니티 전문가로서 역량을 쌓으셨나요? 혹시 다른 직무를 담당하시다가 커뮤니티 생성 및 소통 역량을 강화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처음부터 커뮤니티 전문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제 커리어 대부분은 어떤 계획보다도 ‘운’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이직할 때마다 맡는 직무가 다 달랐고, 전혀 새로운 일을 하곤 했죠. 학부에선 법학을, 대학원에선 역사를 공부했는데, 지금 하는 일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깨달은 게 있어요. 흔히들 "좋아하는 일을 할까, 잘하는 일을 할까?"라는 질문을 하잖아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운명처럼 좋아하는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 역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하게 되고 잘하게 될까"를 계속해서 고민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새롭게 찾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런 과정을 거쳐 제가 진짜로 재미있어하고 즐길 수 있는 일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 커뮤니티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아, 이게 내가 좋아하던 일들의 이름이구나’ 싶었습니다.
사회적경제 분야에 진입하기 전에는 영리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과 삶이 일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에 성수동에 임팩트스퀘어나 루트임팩트 같은 조직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덕질’을 시작하게 됐죠. 저는 삶을 추동하는 여러가지 기준 중에 ‘사랑’ 그리고 ‘덕질’의 가치를 믿습니다. 덕질은 완전한 몰입의 경험이거든요. 그런데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덕질은 성립할 수 없기에,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왔다는 생각도 이 때 하게 되었어요.
인터뷰 내내 환한 웃음과 재치로 응해주시던 박정웅 팀장님의 모습 ©임팩트스퀘어
덕분에 지금 이 생태계에 있는 기업들의 초기 모습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덕질이 그러하듯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미션과 철학을 찬찬히 따라가게 되었어요. 임팩트스퀘어의 초기 미션이 '인테그리티와 엑설런스(진정성과 탁월함)'였는데, 그걸 들여다보며 ‘소셜 미션’이라는 개념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쪽 생태계에서 일한다면, 어떤 소셜미션을 갖고 일하면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팬은 스타를 닮고 싶어 하잖아요. 덕질을 하며 제가 관찰한 건, 임팩트 비즈니스는 사회의 소외를 해결하는 일이었는데, 조직 안에도 소외가 있다면 정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어요. 그래서 ‘조직 안의 소외를 해결하는 일’을 제 소셜미션으로 삼았고, 외부에 피칭하거나 알리는 일은 창업가들이 잘하시니, 저는 그 내부의 공동체, 즉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이전의 전통적인 공동체가 혈연이나 지역 기반이었다면, 도시는 가치와 취향을 중심으로 모이잖아요. 저는 그런 커뮤니티를 조직 내부에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도록 고민하게 된 거예요. 본격적으로 그런 고민을 실험했던 게 상상우리에서 일할 때였어요. 새로운 매니저님과 함께 팀 빌딩을 했는데, 그 매니저님이 바로 이왕수 이사님이셨어요. 그분과 ‘공동체’와 ‘공공선’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여러 실험도 함께 했습니다.
저에게 커뮤니티는 정체성이라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에 더 가까운데요. 가령 그로스 마케팅, 임팩트 비즈니스, 고객 개발 방법론 같은 것처럼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해보고, 검증하는 그런 과정이죠. 이러한 과정에 너무나 몰입해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커뮤니티를 탐구하게 되었고, 쑥스럽지만 오늘의 인터뷰까지 다다른 것 같습니다.
일전에 정웅님께서 말씀하신, 이른바 ‘티타임론’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SE 생태계에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말랑말랑하지만 확실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그런 멋진 이름을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제가 임팩트얼라이언스에 합류한 건 2022년 1월이었는데, 이후 2~3년 동안 조직 내에서 다양한 최적화 실험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플라이휠’이 그려졌습니다.
맥락부터 설명드리면, 기업가정신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직접 해결하겠다"는 것이 기업가정신이죠. 임팩트얼라이언스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런데 사회문제는 일반적인 소비자 문제와는 다릅니다. 경쟁을 통해 해결하거나 단일 솔루션으로 파급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자산’은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는 진정성에서 나오는데요, 말과 행동이 오랜 시간 일치하는 것을 저는 ‘인테그리티(integrity, 진정성)’라고 표현합니다. 서사가 힘을 가지려면 결국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대부분 경쟁을 통해 지원을 받는 구조입니다. 어디를 가나 피칭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피칭은 사람에게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피칭하지 않아도 되는 커뮤니티가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임팩트얼라이언스가 그런 실험을 해보자고 결심한 거죠. 창업 생태계에는 여러 자본이 있지만, 우리는 ‘관계 자본’에만 집중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 고민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고민과 철학을 피칭 외의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만들까"라는 질문이 생겼고, 다양한 형태(프로그램, 프로젝트, 프로덕트, 웹서비스 등)를 고민하거나 실험하던 중 발견한 게 ‘티타임’이었습니다.
‘티타임’은 전략적인 용어이기도 해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시간이죠. 이 시간을 통해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처음엔 조직 이야기를 하다가 점차 개인적인 고민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 자기 언어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 경험은 조직 내에서는 흔히 ‘스몰토크’라고 불리는 것과 비슷한데, 이게 단순히 친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터에서의 대화 중 유일하게 100% 수용되는 경험이기 때문에 중요해요. 티타임에서는 내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진짜 이야기가 나오고, 들리고, 서사로 만들어집니다. 이걸 가시화하고, 밋업이나 콘텐츠 등의 형태로 발전시켜가고 있어요.
사회혁신 생태계는 ‘복잡계’입니다. 전통적인 시장은 ‘복합계’라고 할 수 있어요. 복합계는 냉장고가 없으면 냉장고를 만들고, 베스트 프랙티스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죠. 그런데 사회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복잡계에서는 1+1이 2가 아니라 5, 10이 되는 창발성(emergence)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창발성을 만들기 위해선 다양한 가치와 서사를 계속해서 마주쳐야 해요. 마주침의 횟수, 확률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한 거죠.
임팩트얼라이언스는 조직 차원에서 ‘우리의 고유한 가치제안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점검해왔고, 그 결과 가장 기여도가 높았던 활동이 티타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모든 자원을 티타임에 몰아보자는 결정을 했어요. 시간, 돈, 관계—all in. 그랬더니 놀랍게도 나머지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굴러가더라고요. 뉴스레터 오픈율이 올라가고, 자발적인 소개가 늘고, 회원가입도 증가했어요. 생태계 동료들이 고민을 나누는 빈도도 확연히 높아졌고요.
정량적인 데이터 외에도 티타임을 통해 생긴 작은 변화의 계기들을 체감하신 경험이 있으시다면요?
물론 여러 지표가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환대받는다’고 느끼는 피드백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환대받는다는 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알겠다"는 감각이고, 이건 결국 ‘소외’의 반대말이기도 합니다.
임팩트얼라이언스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형용사를 물어보면, 예전엔 ‘기회’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환대’, ‘우정’ 같은 훨씬 개인적인 단어로 바뀌어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이전엔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좋은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많아졌죠.
저는 좋은 사람을 "좋은 대화를 하고, 좋은 영향을 남기는 관계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한 분노로만 일관하거나 부정적인 대화로 끝나는 경우도 있잖아요. 반대로, 어떤 대화를 하든 희망이 남는 관계가 있죠. 그런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진저티프로젝트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언어도 있어요. 누군가를 조언하거나 판단하기보다, 마치 문화인류학자처럼 상대의 감정과 상황을 잘 읽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진짜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되, 그 일이 건강한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 저는 그 사람을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좋은 서사’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시화하고, 무대를 만들어주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제가 만들고 싶은 무대에 서고 싶은 분들이 늘어나고, 또 제가 열렬히 소개하고 싶은 분들이 많아지는 걸 볼 때 그런 변화를 체감합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시다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연결점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접점이 많아질수록 연결이 복잡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언어를 듣고, 또 해석해야하는 통번역가로서 그 연결점을 어떻게 상상하고 계신가요?
복잡계를 이해하고 난 다음, 전략이 달라졌어요. 복합계는 계획을 세우고, 시스템을 만들고, 순차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구조잖아요. 반면 복잡계는 ‘충돌의 빈도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에요. 즉, 불확실성을 통제하기보다는, 그 불확실성을 이용하는 전략으로 가는 거죠.
제가 누군가의 서사를 들었을 때, 그걸 그대로 전달하거나 행사로 옮기려 하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티타임에서는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들려줄 수 있어요. 이건 두 서사의 ‘가치 중립적 충돌’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마주침. 이 마주침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죠. 그렇게 마주치는 확률을 계속해서 높여야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딱 맞는 연결점’이 생깁니다. 그게 밋업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연결해주는 자리가 될 수도 있어요.
티타임은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데 아주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다양성을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유연한 형식이죠. 복잡계에서는 정답을 찾기보다 확률을 높이는 것이 전략입니다. 저의 전략도 그것입니다.
요즘 생태계 주요 행사에 가면 늘 정웅님을 뵙게 됩니다. 보통 콜라보레이션 행사를 많이 추진하시는 것 같은데요, 주로 어떤 이해관계자분들이 협력 행사를 제안하시나요? 또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협력 제안은 정말 다양하게 들어옵니다. 사실 ‘임팩트’라는 단어 자체가 예전에는 NGO나 공공 쪽에서 잘 사용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많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더 다양한 영역에서 콜라보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예전에는 대부분 1회성 협력, 예를 들어 문의를 주고받고, 프로그램 한 번 진행하고 끝나는 형태가 많았다면, 요즘은 거버넌스나 워킹그룹 형태로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맺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외부기관뿐 아니라, 회원사 내부에서 협력 제안을 주시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작년 한 해만 해도 커뮤니티 행사만 31개를 진행했는데, 각 행사마다 거버넌스와 워킹그룹의 구성이 전부 달랐어요. 이건 복잡계 전략을 의도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인데요, 임팩스는 어떤 협력 관계든 ‘이해관계자들을 큰 톱니바퀴’라고 생각하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작은 톱니바퀴 역할을 합니다. 작은 톱니바퀴의 크기나 모양은 협력의 맥락마다 달라지고요.
임팩트얼라이언스는 이해관계자나 파트너가 가진 장점을 제외한 모든 ‘중간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면 이해관계자 간 역할 충돌 없이 협업이 가능해지죠. 핵심은 협력했을 때 ‘시간이 절약’돼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런 협업 구조가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레이존(gray zone)’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저희가 맡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일을 마쳤을 때 ‘모두가 같이 했다’라는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행사를 반드시 기록으로 남깁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누가 어떤 관점으로 기록할지 정하고요, 단순한 행사 스케치가 아니라, 임팩트 생태계의 서사를 가시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발제자들의 이야기와 맥락을 최대한 자세히 담아 콘텐츠로 만들고, 그 콘텐츠는 파트너가 원하는 채널에 우선권을 드립니다. 임팩스 채널보다도 그 기관의 홈페이지나 소셜미디어에 먼저 게재할 수 있도록 하고, 저희는 그걸 링크로 연결하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기록이 남고, 관계가 남고, 행사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티타임도 생기면서 또 다른 연결이 만들어집니다.
한 번 굴리기가 어렵지, 플라이휠이 돌기 시작하면 관성이 생기거든요. 저는 이 일에서 ‘단순히 하나의 행사를 했다’보다는, 그 사람의 ‘서사를 가시화’하는 데 집중합니다. 제 역할을 고정된 틀로 두지 않고, 매우 유연하게 움직이는 대신, 협력 파트너의 역할은 선명하게 설정해드립니다. 그래야 그들이 본인의 목적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일종의 ‘오케스트레이션’ 역할을 하려고 하는거죠.
*오케스트레이션 : 여러 개의 IT 자동화 태스크나 프로세스를 조정하여 실행하는 것을 의미. 주로 컴퓨터 시스템, 애플리케이션, 또는 서비스를 통합하여 복잡한 워크플로우나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관리하는 데 사용
네트워킹 확장이나 커뮤니티 진입에 대한 니즈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실무자나 업계 주니어에게 전해주고 싶은 꿀팁이 있다면요?
조금 두서없이 말씀드리자면,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는 일이 커뮤니티의 출발이고, 어떤 프로젝트나 성과가 있어도 그 기여는 조직의 이름이 아니라, 그 구성원 개인의 이름으로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또 커뮤니티는 프로덕트 개발과 다르게, 결과만 나누는 게 아니라 시작부터 과정, 결과, 성과까지 모두 함께 나누는 구조여야 합니다. 완성된 걸 보여주기보다는, 미완성된 상태에서 계속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드백을 준 사람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반응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전략적으로 계획을 70%만 세우고 진행하곤 해요. 완벽하게 계획하면 사람들이 의견을 낼 틈이 없어지거든요.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가능할 정도까지만 준비하고, 의도적으로 여백을 남겨둡니다. 지금은 아예 40%만 기획해두고,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로 가고 있어요. 복잡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 것이 허술하다는 걸 알면서도 공개할 수 있는 용기요. 그리고 커뮤니티나 네트워크를 진입할 때는 개인을 만나는 것이 중요해요. A조직과 B조직이 만났다고 해서 그 자체로 일이 시작된다거나 완벽하게 돌아간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호기심이 가거나 레퍼런스로 삼고 싶은 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속한 커뮤니티 전체가 자연스럽게 나에게 열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개인과 개인이 만나 한 번 더 묻고, 또 한 번 더 묻는 게 중요한 순간이 더욱 많습니다. 피칭에 익숙한 분을 만나 계속 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피칭은 끝나고, 사람은 결국 자기 언어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거든요.
또 한 가지 방법은 스몰토크입니다. 서로 이해관계 없이 가벼운 얘기를 나누며 ‘100% 수용되는 대화 경험’을 만드는 것이 커뮤니티의 진입점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제가 즐겨 쓰는 방식은 독서예요. 만나고 싶은 분야의 사람을 생각하면, 먼저 그 분야의 책을 읽습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익히기 위해서요. 그 산업의 고유 어휘나 경험을 먼저 알아가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입장권을 얻게 돼요. 그렇게 상대방의 말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죠. 그러면 관계도 훨씬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얼핏이라도 알고 있는 걸 ‘안다’가 아니라 ‘얼핏 안다’고 했을 때, 상대는 오히려 더 설명하고 싶어져요. 그 자체가 관계를 만드는 출발점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걸 믿어요. 이걸 믿고 흔들릴 때도 계속 붙들고 갑니다. 임팩트얼라이언스에 합류할 때, 면접에서 코로나 시기 이후 커뮤니티 활성화가 어려워져 "어떻게 커뮤니티를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저는 ‘나의 전략은 ‘사랑’이다’라고 답했어요. 창업가와 조직을 건강하게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람이 하는 일과 관심사까지 독서하면서 알아가는 사람. 그런 식의 전략적인 사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서 사랑의 진심을 티타임이나 복잡계 전략 등으로 공고히 지키는 것, 그게 커뮤니티에서의 지속가능성이자 꿀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웅님께서 그리고 계신 내밀한 비전, 앞으로의 상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임팩트 생태계도 어느덧 형성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사이 자연스럽게 선후배 관계가 생겼고, 이제는 1세대와 2세대라는 말도 쓰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모두가 동료였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구분이 생긴 거죠. 그러다보니 요즘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구축하고 표현할까" 늘 고민하게 됩니다.
1세대, 그러니까 파운더 그룹에 해당하는 분들은 이제 ‘임팩트의 규모화’로 화두를 옮기고 있습니다. 단순히 조직을 키우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문제가 실제로 해결되는 총량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신뢰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올 상반기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주제로 서밋을 추진했고, 하반기에는 M&A 같은 스케일링 포 임팩트(Scaling for Impact)를 다루려고 해요.
사회문제가 실제로 ‘제로’가 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고, 그러려면 협력의 질과 규모가 동시에 올라가야 하는데, 저를 포함한 1세대가 다음 생태계를 위해 해야 할 핵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세대들의 언어로 임팩트가 재해석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언어와 관계로, 기존 파운더 그룹의 비전을 넘어서는 새로운 생태계 비전을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아시아 단위의 임팩트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거나, ‘체인지메이커’라는 이름 대신 새로운 호명 방식이 등장한다거나요. 그럴 수 있으려면, 임팩트얼라이언스스 같은 커뮤니티가 새로운 언어와 비전을 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 해요. 그리고 그걸 가시화하는 역할도 함께해야 하고요. 이전 세대의 경험과 레거시를 그냥 계승하는 게 아니라, 재해석할 수 있는 용기를 같이 심어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즉, "우리는 숙련되었고 세련되었다"는 메시지만 전하는 게 아니라, "이 기반 위에서 어떤 꿈을 새롭게 쌓아올릴 수 있을까?"라고 묻는 거예요. 1세대의 장점이 살아나려면, 1세대도 스스로를 다시 챌린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임팩트의 규모화’라는 테마에 집중하고 있고요.
반면 2세대는 지금 비어 있는 생태계의 볼륨을 채우는 존재로서, 새로운 비전과 언어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하면 서로 다른 세대가 경쟁하지 않고, 제로섬이 아닌 협력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새로운 세대가 기존 세대를 복제하려 한다면, 그건 결국 경쟁이 되고 맙니다. 그럼 협력은 어렵고요.
결론적으로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언어로, 기존을 넘어서는 비전을 그리고, 기존 세대는 그걸 위해 무대를 마련하고, 구조를 설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커뮤니티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새로 유입되는 인재들을 위한 무대를 짓고, 그들의 자신들만의 언어로 비전을 그리고, 또 그걸 생태계 관계자들에게 지속 확산시킬 수 있는 새로운 톱니바퀴를 만들어야겠죠. 임팩트얼라이언스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덕질을 아주 잘하는, 사랑의 톱니바퀴로서의 역할을 해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도 좋은 날 따뜻한 티타임을 요청드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글, 사진 : 임팩트스퀘어 김소선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