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돌아보며: 로컬의 가치는 공짜?

2025년 한 해 동안 임팩트스퀘어 로컬부문은 크고 작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고, 거점 공간인 STAXX를 활용하여 자체적으로 워케이션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즐겁고 고무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무료로 진행되는 운영 형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유관기관과 협력하는 경우, 프로그램의 지불자는 기관이고, 참여자는 비용에 대한 걱정없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지불자인 기관 입장에서 ‘최대 다수의 경험’은 효율적인 예산 집행의 척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로컬 사업에서 ‘참여 인원’은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KPI로 설정된다. 이것이 아주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부분 중 하나다.

프로그램의 주제나 특성과는 관계없이 일정 수 이상의 참여자 확보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주요 타겟이 되는 사람을 찾아 참여를 유도하고 설득하는 정공법(?)을 사용해야 하지만, 점차 프로그램 운영 날짜는 다가오고, 유관기관은 매일 아침 신청자 현황보고를 요청한다. 이쯤되면 여러가지 꾀가 생각난다. 

우선 굿즈를 제작하고, 홍보물에 이를 써넣는다. ‘참여자 전원 ○○○○ 프로그램 굿즈 증정!’ 이러니 참여자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그래도 안될 땐 이벤트를 기획해본다. ‘참여자 대상 경품 이벤트 진행! ○○○○에 참여하고 행운도 뽑아보세요’ 내가 참여자여도 갖고싶을 선물을 경품 리스트에 넣으며 조금의 현타를 맞지만 어쨌든 내일 아침 신청자 현황보고 땐 덜 민망하리라 생각하며 버텨본다. 이보다 더 극단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면 타겟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여진 참여자들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리가 없다. 연락없이 참여하지 않는 ‘노쇼’도 상당하고, 굿즈만 받고 몰래 이탈하는 ‘출튀’도 많다. 그렇기에 굿즈나 경품 이벤트 등 혹여나 다른 이유로 참여하러 왔던 사람들도, 막상 와서는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여러 장치들을 기획에 추가하는 것이 필수다. 

로컬에는 이렇게 기관 또는 지자체가 ‘대리 지불자’가 되어 참여자들에게 프로그램을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참여자에게는 ‘기회의 확대’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참여자의 ‘지불 근육’을 퇴화시키고, 나아가 로컬 가치에 대한 지불 용의를 무력화 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얼마 전 창업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시에서 하이킹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시와 함께 참여자들이 즐겁게 하이킹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했고, 무료 참여니까 다들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와줄거라 기대했어요. 그런데 운영 당일, 참여자 중 일부는 저희가 제공하는 식사와 굿즈만 챙겨서 사라지더라구요. 하루종일 그렇게 안보이다가 서울로 가는 셔틀버스 탑승장에 나타났을 땐 조금 황당했어요. 저희가 무료로 이런 부대사항들을 제공하는 것을 알고 이걸 악용하는 사람이었던 거에요. 창업을 준비하며 만난 선배 창업가들에게 물으니 프로그램 내용은 관심없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쇼핑’하듯이 챙기는 사람들이 있대요. “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경제적인 부담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나, 참여자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지불을 고민하여 결정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할 일이라고 본다. 참여자의 지불용의가 무력화되면, 장기적으로 로컬에서 서비스 또는 상품을 기획하고 제공하는 많은 조직들이 대리 지불자를 찾아 나서야 하고, 이는 어쩔 수 없이 지원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 해를 보내며, 단순히 지불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로컬이 제공하는 가치가 누군가의 지갑을 열 만큼 매력적인지, 그리고 그 지불이 서비스 제공자와 참여자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다시 질문해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를 뚫는 송곳: 확실한 포지셔닝

점점 ‘로컬의 가치는 공짜’라고 믿는 분위기 속에서, 환경이 바뀌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이제는 ‘좋은 일’ 이니 동참해달라는 호소나 경품을 앞세운 유인책을 넘어, 참여자의 결핍에서 오는 ‘진짜 니즈’를 파고드는 분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일시적인 보상은 발걸음을 재촉할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몰입과 지불 용의라는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로컬 조직이 자생을 위해 고민해야할 점은 단순한 물질적인 베네핏이 없어도 기꺼이 시간을 내고, 비용을 지불할 수 있게 만드는 ‘독보적인 베네핏’인 것이다.

임팩트스퀘어 로컬부문이 지향해야 할 지점 역시 ‘혁신적인 참여 인원수’라는 양적 지표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STAXX에 가면 내 문제가 해결되고, 반드시 성장한다’는 확실한 효능감을 제공하는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당장의 숫자는 적을지라도 성장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힘이 로컬 조직 자생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로컬부문이 운영했던 여러 프로그램들 중, 지역의 예비 및 초기 창업가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과정 <STACK UP>’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영주시와 영주청년정주지원센터와의 협력을 통해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참여자들이 직접적으로 참여비를 지불하지는 않았지만 그 간 운영했던 프로그램들 중 가장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과정 <STACK UP>’은 고민이 많은 예비창업가 4팀, 초기창업가 3팀이 모여 5주간 이론 교육과 현장 학습을 진행하고, 해당 교육과정과 연계한 브랜드마켓 실습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기획 및 운영되었다. 평일 저녁 진행되는 이론 교육과 하루를 온전히 학습에 써야 하는 현장학습을 기획하며, 혹여나 참여자의 이탈이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을 했다. 궁극적으로는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 수 있지만 그 과정이 길고 번거로우며, 비즈니스 모델 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제를 다루다보니 내용에 대한 체감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한 ‘단순한 물질적인 베네핏’이 없는,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형태의 프로그램이 참여자에게 어떻게 인식될지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 한 팀의 낙오자 없이 전원이 과정을 모두 완주했으며, 출석률은 거의 100%에 수렴했다. 운영진과 주관기관 모두를 놀라게 한 이 높은 몰입도는 어디서 기인했을까? 결론은 ‘개인화된 문제 해결’에 있었다. 일반적인 강의의 형태로 추상적인 방법론을 나열하는 대신, 참여자 개개인의 워크북에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고, 로컬부문 매니저 모두가 1:1 현장 실습을 지원하며 ‘그 사람의 고민’을 ‘우리의 과제’로 전환했다. 만족도조사 결과, 이 부분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았으며 향후 1:1 멘토링이나 맞춤형 컨설팅을 받고싶다는 의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고민을 함께 나누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참여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STACK UP>은 직접적인 참여비를 지불하는 유료 모델은 아니었으나, 물질적인 보상 없이도 가장 귀한 자원인 ‘시간’과 ‘몰입’을 아낌없이 지불하는 참여자들을 보며 ‘지불 용의’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로컬의 자생력은 참여자의 결핍과 조직의 포지셔닝이 맞닿는 지점에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니즈를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팬’이자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지역을 단단하게 엮는 ‘매듭’ : 수혜자가 아닌 ‘파트너’  

<STACK UP>을 통해 참여자의 뜨거운 몰입을 목격하고, 지역에서 나와 STAXX가 어떤 포지셔닝을 가져야할지에 대한 힌트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질문이 남는다. ‘이 뜨거운 몰입이 무료라는 전제조건이 사라진 뒤에도 지속될 수 있을까?’, ‘만약 <STACK UP>이 유료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면, 이 참여자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을까?’ 

대리 지불자의 존재는 많은 참여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기회에 대한 ‘책임’을 덜어내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수혜자’의 입장에 머무는 한, 프로그램의 기획 및 운영 과정은 온전히 운영사의 사정일 뿐 참여자의 과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예시로 들었던 ‘노쇼’나 ‘출튀’도 어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참여자를 수동적인 위치에 묶어둔 시스템이 낳은 필연적인 문제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운영자에게도 위험한 독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고객이 부재한 상황에서, 운영자는 참여자의 피드백 보다는 대리 지불자의 의견에 집중하게 된다. 참여자의 진짜 니즈를 파악하기보다 지불자의 요구를 우선시하게 되는 이러한 구조는, 결국 로컬 조직이 시장에서 가져야 할 비즈니스적 뾰족함과 예민함을 무디게 만든다. 

이러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관계를 새롭게 정의해보면 어떨까. STAXX와 이웃 시민들을 프로그램 제공자와 참여자라는 역할로 선을 긋는 대신에, 공동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로 역할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이상적인 바람’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영국 맨체스터 인근의 로치데일에서 시작된 HMR 서클(Heywood, Middleton & Rochdale Circle)은 생태계 내의 ‘수혜자’를 ‘파트너’로 전환한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다. HMR 서클은 고립된 노인을 돕기 위한 서비스로 시작되어, 전통적인 ‘복지’의 틀에서 벗어나 유료 (연회비 5만원)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클의 멤버십 회원들은 IT 기기 작동법 학습, 가벼운 운동과 같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안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회원들은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이는 서비스를 제공한 회원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지불 시스템은 직접 지불자인 ‘고객’의 니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치로 작용할 뿐 아니라, 서비스를 주고 받는 정당한 거래로 인식되며 생태계 내 순환구조를 만들어낸다. 흔히 복지 수혜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노인들이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서비스의 질을 요구하는 소비자이자 운영의 주체로 변모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의 역할을 ‘주체’로 재정의한 노인들은 커뮤니티와 조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방향성을 고민하는 파트너십을 갖게 된 것이다.

로컬 임팩트 생태계에서도 이런 관계의 재정의가 가능할지 상상해본다. 이미 안락한 수혜자의 역할에 익숙해진 참여자들에게 비용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비용 지불을 요구하고, 책임있는 ‘주체’로서 역할을 부여할 때 그나마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던 관계의 줄이 끊어져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당장 내가 놓인 현장에서도 이런 관계의 역전이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참여자의 지불 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재정을 확보하는 수단을 넘어, 건강한 동료를 얻는 과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느슨하게 늘어진 시혜의 줄을 거둬들이고, 서로의 니즈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매듭을 짓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로컬 자생의 모습이 아닐지, HMR 서클의 사례를 보며 로컬 임팩트 생태계를 그려본다.

로컬부문의 다짐: 기꺼이 지불하고 싶은 ‘미래’를 만들자

2025년 한 해 로컬의 현장에서 내가 마주한 감정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KPI라는 숫자에 매몰되어 ‘현타’를 느낀 순간도 있었고, 물질적인 베네핏 없이도 자신의 성장에 온 마음을 다하던 창업가들을 보며 느낀 벅찬 감정도 선명하다. 돌이켜보면 이 상반된 감정들은 모두 ‘지속가능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끝없이 내 안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참여자의 지불 용의를 고민하고 그 역할을 재설정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로컬이 많은 자원이 흘러들어가는 곳(수혜지)을 넘어 가치가 생겨나는 곳(발원지)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변곡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조심스럽지만, 정답이 보이지 않는 안개속에서도 고민해야할 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임팩트스퀘어 로컬부문은 2026년에도 여전히 ‘송곳’의 끝을 날카롭게 갈고, 참여자들과 단단한 ‘매듭’을 짓기 위한 시도와 노력을 이어가려한다. 로컬의 가치가 누군가에게 ‘공짜’가 아닌 기꺼이 지불하고 싶은 ‘미래’가 되는 그 날까지!


작성 : 임팩트스퀘어 우아영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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