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가 아닌 본질을 파고든 비즈니스, 조용한 강자들
2025년은 온 세상이 AI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새로운 언어 모델이 발표될 때마다 뉴스는 떠들썩했고, 사람들은 AI가 바꿀 미래를 상상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뒤편, 우리 삶을 지탱하는 현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매일 아침 우리가 마주하는 식탁 위, 도시가 매일 쏟아내는 폐기물 처리장,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 밑. 눈길이 자주 닿지 않는 그곳에서 묵묵히 자신들만의 기술과 뚝심으로 업의 본질을 혁신해온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을 스타트업이라 부르든 중소기업이라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증명할 뿐이다. 화려한 버즈 대신 확실한 임팩트로 비즈니스를 확장해가는 ‘조용한 강자’ 3곳의 이야기를 통해, 임팩트가 발생하는 구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1. 복만사: 로컬에서 세계로, 냉동 김밥이라는 선택
업력: 2015년 설립 (11년 차)
소개: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냉동김밥 장르를 개척한 국내 1호 냉동김밥 개발업체
비즈니스 모델: 수분이 많은 김밥을 급속 동결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건강한 ‘웰빙푸드’로 재정의하고 제조 및 판매
투자 단계: 투자 유치 없음
주요 성과:
국내 최초 김밥 급속 동결 기술 개발
미국, 프랑스, 홍콩 등 전 세계 12개국 수출 달성
지역 청년 및 취약계층 정규직 직접 고용을 통한 지역 소멸 방지 기여
사진2 - 복만사가 개발한 시그니처 김밥. 급속동결기술이 적용된 제품들이다.(출처=11시45분)
복만사는 2015년 설립된 사회적기업으로, 경남 하동 등 지역 농가의 식재료를 활용해 국내 최초로 냉동 김밥을 개발한 제조 기업이다. 투자 유치 없이 11년간 사업을 이어온 이 기업은 ‘냉동 김밥’이라는 장르를 스스로 개척해 왔다.
“냉동 김밥은 아무도 안 먹는다.”
수분이 많은 김밥은 얼리면 터지거나 식감이 변한다는 통념 때문에 대기업조차 포기했던 영역이었다. 조은우 대표는 일곱 번의 사업 실패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수년간 연구를 이어간 끝에 김밥 급속 동결 공정을 완성했다. 저렴한 냉동식품이라는 분류에서 벗어나, 냉동 김밥을 ‘건강한 웰빙 푸드’로 재정의하며 시장의 고정관념을 깼다.
‘저칼로리의 건강한 김밥’이라는 새로운 포지셔닝은 국내 다이어터들의 관심을 끌었고, 미국·프랑스·홍콩 등 12개국으로 수출되며 글로벌 판로로 확장됐다. 조 대표는 원가 절감을 위한 투자 제안을 거절하면서까지 국산 농산물 사용이라는 철칙을 지켜왔다.
이 선택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문제를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였다. 복만사의 급속 동결 기술은 새로운 식품 기술이라기보다, ‘김밥은 얼릴 수 없다’는 업계의 전제를 깨기 위한 집요한 공정 기술에 가깝다.
복만사의 임팩트는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복만사는 글로벌 판로를 통해 지역 농가의 불안정한 소득 문제를 완화하고, 지역 청년과 취약계층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며 지역 소멸을 막는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2. 타스글로벌(TAS Global): 거친 바다 밑에서 움직이는 로봇, 10년의 집념
업력: 2014년 설립 (12년 차)
소개: 수중 로봇 선박 청소 기술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딥테크 기업
비즈니스 모델: B2B 기반의 수중 로봇 선박 청소 서비스로 선박 연비 개선 및 환경 오염 방지 솔루션 제공
투자 단계: Series D
주요 성과:
세계 유일의 친환경 수중 청소 기술(오염물 99.9% 정제 배출) 완성
세계 최고 해운 강국인 그리스 선주협회에 국산 로봇 수출
고위험 잠수부 작업을 로봇으로 100% 대체하여 인명 사고 위험 제거
사진3 - 선박용 수중 로봇이 선체에 붙은 불순물을 제거하고 있다.(출처=타스글로벌 홈페이지)
타스글로벌은 2014년 설립된 수중 로봇 선박 청소 기술 기업으로, 현재 싱가포르에 진출해 글로벌 B2B 시장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기업을 이끄는 김유식 대표는 엔지니어가 아닌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엔지니어가 아닌 펀드매니저 출신이 해양 로봇 기업을 창업한다고?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10년 전 해양 환경 규제 강화라는 흐름을 읽고 창업에 도전했다. 비전문가라는 한계를 철저한 시장 분석과 집요한 연구개발로 돌파한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해운 강국인 그리스 선주협회에 국산 로봇을 수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선박 선체에 붙은 따개비와 해조류는 마찰을 일으켜 연료 소모를 최대 40%까지 늘린다. 이를 제거하는 것은 필수지만, 기존 방식에는 비용·환경·안전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첫째, 선박을 건조대에 올려 청소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둘째, 환경. 수중에서 청소하면 긁어낸 이물질과 중금속 페인트가 그대로 바다에 퍼진다. 셋째, 안전. 잠수부가 거친 파도 속에서 직접 작업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
타스글로벌의 로봇은 선체에 붙은 따개비 등을 제거해 연비를 개선하고, 연료 소모 증가로 발생하는 막대한 온실가스를 줄인다. 청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은 즉시 회수해 3단계 필터를 거친 뒤 깨끗한 물만 배출함으로써 해양 생태계 교란을 차단한다. 무엇보다 거친 파도 속에서 잠수부가 수행하던 고위험 작업을 로봇으로 대체해 인명 사고의 위험을 제거했다.
이 기술 선택에는 불가피성이 있었다. 환경 규제, 안전, 비용이라는 세 가지 제약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환경을 전제로 한 설계가 필요했다. 타스글로벌의 수중 로봇 기술의 핵심은 자동화가 아니라, 문제의 조건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설계에 있다. 연료 절감은 곧 탄소 배출 감소로 이어지고, 오염물 회수는 해양 생태계 보호로, 로봇 도입은 인명 사고 예방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3. 리코(Reco): 도시의 이면을 데이터로 끌어올리다
업력: 2018년 설립 (8년 차)
소개: '업박스(UpBox)' 플랫폼을 통해 폐기물 관리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SaaS 솔루션 기업
비즈니스 모델: 사업장 폐기물의 수거·운반·처리 전 과정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B2B 소프트웨어(SaaS) '업박스 클라우드' 운영
투자 단계: Series C
주요 성과:
호텔, 제조, 유통업 등 3,000개 이상의 기업 고객 확보
한국환경공단 '올바로 시스템'과 자동 연동을 통한 행정 프로세스 간소화
환경 영향 평가 지수인 UBIS(Upbox Impact Score) 개발 및 운영
사진4 - 리코의 ‘UBIS’(폐자원을 통합 관리하는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을 평가하는 지수)를 통해 도출된 2024년 누적 자원화량(출처=Reco 홈페이지)
리코는 2018년 설립된 기업으로, 사업장 폐기물 수거 서비스 ‘업박스’를 통해 호텔·제조·유통 기업들의 폐기물 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수거부터 운반, 처리, 신고까지 전 과정을 데이터로 연결한 SaaS ‘업박스 클라우드’를 운영하며, 한국환경공단의 올바로 시스템과 자동 연동된다.
폐기물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 마켓이었다. 정보 비대칭이 심해 누가 얼마나 어떻게 처리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배출량은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고 처리 과정은 불투명했으며, 수기 장부에 의존하는 관행이 만연했다. 리코는 누구도 선뜻 뛰어들지 않던 이 시장에 들어가 더럽고 골치 아픈 문제를 가장 투명한 방식으로 해결했다.
업박스는 언제, 어디서, 얼마나 버렸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투명성은 불법 투기나 무자료 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데이터를 마주한 기업들은 “우리 사업장이 이렇게 많이 버렸나?”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정확한 측정은 행동을 바꾼다. 리코는 기업별 폐기물 배출 추이와 재활용률을 분석해 제공하고, 이를 UBIS(Upbox Impact Score)라는 지수로 정량화한다. 막연했던 환경 부담은 수치로 드러나고, 보이지 않던 낭비는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기업들은 스스로 폐기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업박스는 자원화량, 절약된 물의 양, 저감된 온실가스 양을 공개하며 자원 순환을 데이터로 증명한다. 여러 업체에 나뉘어 맡겨야 했던 폐기물 관리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함으로써 기업의 행정 비용과 운영 리소스 역시 크게 줄였다. 업박스의 기술은 폐기물을 처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폐기물 시장을 ‘보이게 만든’ 기술에 가깝다. 다시 말해 정보 비대칭으로 유지되던 레몬 마켓을 해체하는 기술적 조건이었다.
세 기업이 보여주는 성장 방정식
세 기업은 산업도, 문제를 푸는 방식도 달랐지만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방정식은 닮아 있었다. 이들의 출발점은 언제나 기술이 아니라 문제였다.
혁신은 꼭 AI나 최첨단 우주 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외면받아 온 현장, 난제라며 기피되던 영역에서 기술은 가장 드라마틱한 효용을 만들어냈다. 복만사의 냉동 김밥, 타스글로벌의 선박 수중 청소, 리코의 폐기물 관리가 그 예다. 모두 누군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쉽게 뛰어들지 않는 영역이었다. 기술이 들어갔을 때 가장 드라마틱한 효용을 만들어낼 수 있는 블루오션이 어디인지 한 번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밥을 수출하려다 보니 냉동이 필요했고, 선박을 안전하게 청소하려다 보니 로봇이 필요했으며, 불투명한 시장을 바꾸려다 보니 데이터가 필요했을 뿐이다. 하이테크·미드테크·로테크의 차이는 기술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문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의 차이다. 하이테크는 기술이 먼저 앞서가며 문제를 발견하는 영역이고, 미드테크는 기술을 문제의 구조에 맞게 재설계하는 영역이다. 로테크는 기술적으로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가장 집요한 축적과 전제에 대한 질문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복만사는 로테크 기반의 공정 혁신으로, 타스글로벌은 미드와 하이테크의 경계에서, 리코는 미드테크 영역에서 각자의 해법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선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 기업 모두 문제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간을 통과했다. 자신만의 것을 쌓아 올리는 시간이 필수적으로 존재했다. 복만사 대표의 일곱 번의 실패, 타스글로벌의 10년에 걸친 연구, 리코가 폐기물 시장의 관행과 싸워온 시간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축적의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임팩트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26년에도 Keep Going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요란한 홍보 없이도 세상은 결국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을 알아본다. 임팩트를 내는 비즈니스란 결국 가장 집요하게 문제를 파고든 결과값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026년,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분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깊은 물이 되어 묵묵히, 그리고 단단하게 흐르는 조용한 강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응원한다.
작성 : 임팩트스퀘어 김민주 매니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