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이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된 이유
2025년 초, ‘Anti-Woke ETF’가 출시되었다. 고용 과정에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를 고려하는 S&P 500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는 이 상품은, "정치적 올바름(PC)이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다양성 관련 정책을 축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출시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확인된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공격 대상이 되었던 기업들 대부분은 DEI 정책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채용 공고와 신사업 보고서 내 ‘포용’ 관련 키워드는 전년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외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포용 정책을 고수한 이유는 명확하다. 도덕적 당위성이 아닌, 비즈니스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Must have)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2025년 한 해, 기업들이 다양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인재, 시장, 리스크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1. [인재] 인구 절벽 시대, '유휴 인력'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자원'으로
기술 산업 전반에서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콘페리(Korn Ferry) 연구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8,500만 명 이상의 인재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EU 집행위원회 정책 연구에서는 유럽 기업의 70% 이상이 적절한 디지털 기술을 갖춘 직원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부족 분야가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인재들이 강점을 보이는 영역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심각한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고학력 인재의 유휴화 (Underemployment)
신경다양성 인재의 실업률은 약 80%에 달하며, 취업한 경우에도 자신의 능력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용 소프트웨어(ERP) 시장을 선도하는 SAP는 일찍이 ‘직장 내 자폐증 프로그램('Autism at Work)’을 도입했다. 지원자 중에는 전기공학, 생물통계학, 인류학 석사 학위 소지자는 물론 특허를 보유한 인재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기업들이 표준화된 채용 프로세스를 고집하는 동안, 우수한 스펙을 갖춘 인재들이 고등학교 졸업 수준의 직무에 머물거나 실업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SAP 웹사이트(https://jobs.sap.com/content/Neuroinclusion_at_SAP/)
HPE와 호주 보건복지부 : '30% 높은 생산성'의 증명
편견을 깨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을 때, 성과는 숫자로 증명되었다. HPE(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는 지난 2년간 30명 이상의 신경다양성 인재를 호주 보건복지부(DHS)의 소프트웨어 테스트 직무에 배치했다. 예비 결과에 따르면, 이들로 구성된 신경다양성 팀은 다른 팀 대비 30% 더 높은 생산성을 기록했다. 이는 자폐 스펙트럼 인재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정밀함이 IT 직무에서 실질적인 경쟁 우위가 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례들이 인재 확보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SAP가 언급한 "사람은 불규칙한 퍼즐 조각과 같다"는 비유처럼, 2025년의 인재 관리는 획일화된 틀에 직원을 억지로 맞추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신 개별 인재의 고유한 특성에 최적화된 직무를 매칭함으로써, 그 안에 잠재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접근이 비단 신경다양성 인재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경력 단절 여성의 '소통 및 공감 능력', 고령 근로자의 '숙련된 암묵지(Know-how)' 역시 기업이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할 자산이다. 결국 2025년의 핵심 인재 전략은 여성, 노인, 장애인 등 각 집단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비즈니스 경쟁력으로 치환하는 '맞춤형 포용 역량'에 달려 있다. SAP, 마이크로소프트 등 유수 기업들이 인사 프로세스를 개혁하는 이유는 자선이 아니라, 이것이 인구 부족 시대를 돌파할 유일한 실질적 해법이기 때문이다.
2. [시장] 구매력의 이동과 다양성 시장의 확장
소비자의 인구통계학적 구성이 변화함에 따라, 획일화된 제품과 서비스로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2025년 주목받은 기업들은 다양성을 반영한 제품과 접근성 개선을 통해 새로운 시장 기회를 포착했다.
티르티르(Tirtir) : K-뷰티의 한계를 넘다
한국 색조 화장품은 밝은 피부색 위주로 구성되어 서구권 및 유색인종 시장 진입에 한계가 있었다. 티르티르는 흑인 뷰티 크리에이터의 피드백을 수용, 쿠션 색상을 30가지로 대폭 확장하며 미국 아마존 파운데이션 부문 1위를 달성했다. 포용성을 갖춘 제품 라인업이 거대 시장 진입의 열쇠가 된 사례다.
출처: 티르티르 글로벌 웹사이트(https://tirtir.global/)
넷플릭스(Netflix) : 배리어프리의 낙수 효과
넷플릭스는 장애인 접근성을 위해 자막과 화면 해설 기능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 2024년 기준 데이터에 따르면,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전체 시청 시간의 약 40% 이상이 자막과 함께 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동 중이거나 소리를 켜기 힘든 환경에 있는 비장애인 이용자들의 시청 경험까지 개선했음을 의미한다.
넷플릭스 배리어프리 사례집 바로가기
출처: 넷플릭스
이러한 사례들은 다양성과 접근성 투자가 틈새시장을 넘어, 대중적 수용(Mass Adoption)을 이끌어내고 플랫폼 체류 시간을 증대시키는 효과적인 시장 확장 전략임을 시사한다.
3. [리스크] AI 시대, 동질성은 위기다
AI 도입 가속화와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동질적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사회와 조직은 ‘집단 사고(Groupthink)’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크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등 주요 경영 저널은 위기 상황일수록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서로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구성원들이 리스크를 다각도로 감지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 부족은 단순한 문화적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저해하는 요소로 분석된다.
불평등 심화에 대응하는 안전장치로서의 DEI
지난 10월 한국은행 보고서는 AI 확산이 청년층, 특히 경력이 적은 이들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유엔개발계획(UNDP)은 AI가 여성과 소수자 등 취약계층의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이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특정 계층을 배제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DEI는 기업의 수익 창출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기술 격차가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균열을 보완하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는 ‘최후의 안전장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025년의 사례들은 포용적인 기업이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다시 넘어온다. AX의 시대, 우리는 다양성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작성 : 임팩트스퀘어 최나은 매니저
[참고 자료]
Financial Times, New ‘anti-woke’ ETF makes Starbucks its first target, 2024.12.05
USA TODAY, Should investors bet against DEI? What to know about new anti-'woke' index fund, 25.07.08
Harvard Business Review, Neurodiversity as a Competitive Advantage, 2017.05
조선비즈, 흑인 피부에도 착! 30가지 색상으로 아마존 1위 오른 K뷰티, 2024.06.13
디지틀조선일보, 넷플릭스, 장애인 접근성 개선 노력 소개… “모두가 함께 즐기는 콘텐츠”, 2025.11.06
경향신문, “AI발 대공황 수준 실업, 청년·여성 먼저 타격”, 2025.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