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비즈니스의 본질, ‘신뢰’에 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플랫폼 비즈니스 성공 사례들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실패 사례가 존재한다. 실패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사람(고객 혹은 이용자)을 끌어들이지 못했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듯 사람을 모아내지 못한 데에는 ‘신뢰’를 구축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전제를 두고, 본 아티클에서는 최근 파문을 일으킨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몬·위메프 사태와 기망 행위로 질타를 받았던 플랫폼 사례를 고객 신뢰 관점에서 분석하고, 임팩트 영역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이 신뢰를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글>
플랫폼과 고객 신뢰의 관계
플랫폼은 운영자의 개입 정도에 따라 가장 개방된 형태인 ‘광장 플랫폼’, 거래가 일어나고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시장 플랫폼’, 환경을 제공하는 ‘인프라 플랫폼’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양면 시장’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플랫폼 안에서 수요자(혹은 소비자)와 공급자(혹은 판매자, 생산자)가 상호작용을 하며 움직인다. 플랫폼 기업들은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양면 시장이 존재하는 한 플랫폼을 운영하는 공급자는 공정하고 안전하게 참여자들의 가치 생산 활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원칙과 핵심 가치를 명확하고 고집스럽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가령, 구글이 ‘공정성’을 운영 원칙으로 내세우면서 다른 검색엔진과는 다르게 검색창에 광고를 제거하고 창만 띄우는 등 검색 최적화로 ‘구글의 검색 결과는 공정하다’는 인식을 얻어낸 것처럼 말이다. 플랫폼의 원칙이 바뀌거나 다른 사용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오염이 발생한다면 참여자들은 플랫폼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이때 눈여겨볼 점은 각 플랫폼에 기대하는 고객의 신뢰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티몬·위메프 사태’
지난 7월 판매 대금 미정산과 이에 따른 환불 대란 사태가 터지면서 국내 전자상거래 중개플랫폼인 티몬과 위메프가 존폐기로에 놓였다. 대금 정산 지연으로 판매자·협력사들은 이탈하기 시작했고, 소비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월 평균 거래액이 각각 6천억 원, 3천억여 원으로 알려진 유명 플랫폼인 티몬과 위메프는 어쩌다 몰락의 기로의 서게 되었을까?
두 기업은 이미 지난 회계 감사에서 “계속 기업으로서 불확실성이 높다”는 선고까지 받을 정도로 자본보다 부채가 많은 상황이었다. 특히 티몬은 자본 판매 대금 돌려막기로 간신히 정산일을 맞춰왔지만 이마저도 힘들게 되자 정산 지연을 공지했고 판매자 이탈이 심해져 자금 경색으로 사태를 키웠다. 문제는 티몬과 위메프가 자본 잠식에 빠져든 뒤에도 대주주의 자본 확충 등의 정공법을 강구하지 않고, 솔깃한 미끼를 던져 판매자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전략으로만 몸집 불리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실제 두 기업은 저가 수수료율을 제시해 판매자를 끌어모으거나 상품권 할인 판매 영업을 확대했다. 이런 방식은 전반적으로 거래 대금이 늘어나는 만큼 유동성 위기가 닥쳤을 때 피해도 덩달아 불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피해를 해결하지 못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한 모기업 ‘큐텐’(Qoo10) 역시 무리한 몸집 불리기를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본력이 없는 큐텐이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 실적이 부진한 플랫폼을 무리하게 인수한 것이 결국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고객 신뢰의 관점에서 티몬과 위메프 사태는 ‘신뢰를 잃은 플랫폼에서 거래량이 줄어드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티몬과 위메프는 사업자의 도덕적 해이와 가까운 행태로 플랫폼 이용자들의 피해를 발생시켰고, 이는 곧 신뢰도 하락과 연결되어 기업 생존이 불투명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자상거래 시장이 지닌 신뢰의 기본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안정적인 거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며, 이것이 무너졌을 때 제 아무리 거대한 플랫폼이더라도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쿠팡과 우버는 스캔들 후에도 살아남았다, 어떻게?
쿠팡은 국내 이용자 수 2,100만여 명을 보유한 대표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시장을 선점해 왔지만 플랫폼 내부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물류센터 노동자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폭로가 나오고 노동자의 과로사 사건은 여러 차례 발생했다. 특히 쿠팡의 ‘리뷰 조작’ 의혹은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전문 업체가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해 작업한 구매평이 상단 노출되도록 하는 ‘리뷰 조작’ 행태를 묵인하거나, 심지어는 임직원에게 자체상표(Private Brand, PB) 상품 구매 후기를 작성하도록 해 검색 순위 상단에 자사 상품을 오르게 하는 일에 관여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쿠팡 측은 이에 “우수한 중소기업의 PB 상품들을 소개하기 위해 투명하고 적법하게 쿠팡 체험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고객들에게 분명하게 고지하고 있다”고 반박했으나 제대로 된 규명 없이 변명한다는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글로벌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인 우버는 지난 2016년 해커의 공격을 받았다. 그 결과 전 세계 사용자 5,000만 명과 운전기사 700만 명의 이름, 메일, 연락처, 운전면허 번호와 같은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문제는 우버의 수습 태도에 있었다. 이 사태를 알리고 정중한 사과를 건네기는커녕, 우버는 해커들에게 10만 달러를 주고 1년간 은폐한 정황이 드러났다. 2017년에는 2개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연초 미국, 프랑스, 호주, 이탈리아 등지에서 단속 경찰관을 식별하고 피할 수 있는 불법 소프트웨어 ‘그레이 볼’을 사용해 우버 택시를 영업한 사실이 드러나 SNS를 중심으로 ‘우버 지우기(#delete uber)’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했다. 비슷한 시기, 우버 전 직원의 사내 성희롱 고백으로 구설수에 오른 일도 있었기에 당시 우버의 도덕성은 대중의 도마 위에 올랐다. 연말에는 레바논 주재 영국대사관 여직원이 수도 베이루트에서 우버 택시 기사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우버 서비스의 고객 안전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스캔들은 고객의 믿음을 깨는 일이었지만, 두 기업은 아직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로 수익을 내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두 플랫폼 내 공급자와 수요자가 기대하는 주요 신뢰 요소가 ‘이미 많은 사용자가 있는 큰 시장이 주는 잠재 기회’, ‘가장 빠르고 편리한 거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 측에서 문제가 제기된 일부 스캔들에 대해서 개선 조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여전히 큰 규모의 거래가 가능한 플랫폼이라는 신뢰가 깨지지 않은 것이 주효한 이유로 판단된다. 하지만 고객이 요구하는 신뢰의 기준, 가치는 유동적이다. 위와 같은 심각한 스캔들 속에서 살아남은 기업이라 할 지라도 고객과 시장이 요구하는 신뢰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관리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이나 불공정한 거래 방식 등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디지털서비스법(DSA), 디지털시장법(DMA)이 태동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티몬·위메프 사태를 계기로 국회와 정부가 플랫폼 규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플랫폼 규제가 합의점을 찾아 법제화된다면 플랫폼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신뢰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 당장은 사업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신뢰 구축에 ‘-’(마이너스)가 될 일이 쌓이고 곪아 터진다면, 결국 신뢰는 한 순간에 무너지고 플랫폼 비즈니스는 폭삭 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플랫폼 규제 관련 내용은 ‘플랫폼 산업, 혁신과 사회문제의 경계에서 우리는’ 참조)
우리에게 필요한 신뢰를 재정의할 때, 생각지 못한 플랫폼이 탄생한다
앞선 두 개의 사례는 플랫폼 내에 구축된 신뢰 체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각각의 신뢰가 어떤 방식으로 플랫폼의 성장과 몰락에 관여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본 아티클이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지금부터다. 임팩트 비즈니스 생태계는 바로 이 신뢰로 시작해서 신뢰로 끝나는 가장 극단의 생태계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플랫폼과 신뢰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이해하려면 신뢰를 상실한 기업들의 사례뿐만 아니라, ‘신뢰’를 재정의하고 공고히 하여 성공한 플랫폼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사례는 ‘KIVA(이하 키바)’다.
©KIVA 홈페이지
키바는 크라우드펀딩과 소액 금융기관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대부자와 대출자를 연결하는 중개 플랫폼이다. 빈곤 해소를 목표로 개발도상국의 소상공인 및 가계를 대상으로 개인에게 최소 25달러의 소액을 대출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와힐리어로 ‘인연’과 ‘합의’라는 의미가 있는 키바는 단기 자금 융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기부가 아닌 지속 가능하며 연대가 가능한 자본이 필요하다는 데에 집중했고, 이를 마이크로펀드의 형태로 플랫폼화했다. 이때, 시장이 소액 대출 플랫폼이 기대하는 기초적인 신뢰뿐만 아니라 ‘임팩트’ 영역에서 제시하고 지켜내야 할 새로운 ‘신뢰’의 축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키바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키바는 2005년 설립 이후 5개 대륙의 70여 개국에서 약 20억 달러(한화 약 2조 8천억)의 대출 자금을 지원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키바가 ‘착한 금융’으로 인정받으며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를 크게 2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임팩트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신뢰 체계 구축
채권자가 통상 기대하는 신뢰의 영역에서 가난한 채무자는 상환 가능성이 작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신뢰 자본인 ‘돈’에 접근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이때, 키바는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보장할 수 있는 ‘신뢰’를 재정의했다. ‘가난한 사람도 꿈꿀 수 있으며, 이 꿈을 잃지 않는다면 자신의 채무에 책임을 질 것’이라는 가설을 중심으로 신뢰 체계를 만들어 나갔다. 신뢰의 척도를 부나 직업 안정성으로 보지 않았다. 소액 대출의 기회를 잡아 인생을 재건하고 상환 기반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이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펀딩 프로젝트를 신설할 때 키바는 채권자들에게 대출을 원하는 채무자의 상황과 목표, 꿈에 대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주었다. 채무자에게는 단순히 돈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모금한 자원이 간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했다.
투명성
키바에 따르면 키바 대출자의 평균 상환율은 96.4%에 이른다. 키바 직원은 전 세계 290여 개의 현지 파트너 기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모니터링하며, 신규 파트너 기관을 모집할 때는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파트너사가 사기를 저지른 것이 확인되었을 경우 키바는 계약을 해지하고, 사기 행위의 발각한 사실을 대출자들에게 알려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출과 자금 회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 키바를 보고 대출자들은 돌려받은 돈을 다시 펀딩에 재투자했다. 플랫폼 사업자가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만들어 가려고 책임을 지는 모습은 이용자들의 신뢰도를 높이는 마중물이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키바는 일반적인 대출 중개업의 기본 공식(대금업으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기부 외의 형태로 기회가 필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과 ‘융자한 돈을 삶에 투자해 지속가능한 삶의 기반을 만들고 싶은 사람’을 연결하는 구조를 새롭게 만들고, 이러한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켜내는 방향으로 플랫폼을 이끌어나간 것이다. 플랫폼 안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어떤 신뢰를 지키고자 했는지에 따라 차별화된 플랫폼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신뢰 자본의 확보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만든다
신뢰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속이거나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말한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물적 자본, 금융 자본이 중요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인적 자본, 문화 자본, 사회적 자본 등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에 대한 신뢰는 경영활동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사회적 자본이 되며,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거래의 효율을 증진해 경제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신뢰가 있으면 대리인에게 일을 맡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에 의한 비용도 감소하게 된다.
기차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편평한 장소인 ‘Platform’이라는 단어 뜻에서 살펴볼 수 있듯, 플랫폼에서 누군가는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올라타고 필요가 없어진 누군가는 빠져나간다. 고객과의 접점을 형성한 플랫폼이라고 해도 성공이 담보되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하고 트렌드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새로운 고객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기존 고객을 계속 머무르도록 하는 핵심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를 쌓고, 신뢰를 기반으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며, 가치 창출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임팩트 영역에서 플랫폼 기업들은 임팩트 비즈니스가 비전과 미션에 맞는 사업을 전개하면서 실제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으로써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가치를 다루면 신뢰도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신뢰는 사회적가치와 만날 때 더 강력하게 형성될 수 있다. 단, 신뢰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사회적가치 창출을 통해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기업의 평판을 좋게 만들 수 있으나, 동시에 사회적가치가 명확하지 않거나 임팩트 워싱이 일어난다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임팩트 비즈니스는 시장에서 목표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해소하는 사업적 방법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해 가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단순히 “우리 제품/서비스는 이래서 좋다” 만으로 신뢰를 쌓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한 키바의 사례처럼 “우리는 이런 가치를 창출하고, 이렇게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어”라는 것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작성자 : 임팩트스퀘어 김민주 매니저
[참고 자료]
소비자 간 거래 플랫폼에서의 신뢰 : Trust in C2C Platforms 신뢰의 구성, 형성요인 및 역할(이보한, 2020.02, 서울대학교 대학원 소비자학과 박사학위논문)
티몬·위메프, 3개월 전 ‘지속불가 선고’…감독·규제 공백에 예고된 사태(한겨레, 24.07.26)
*ISQ 인사이트 레터 ‘IBT’를 구독(링크)하시면, Impact Business Review 콘텐츠를 편히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