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그리고 임팩트에 관한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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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왜 외부자원을 필요로 해?
예술은 수 많은 정의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예술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창작자의 생각과 관념이 담겨있는 것을 예술이라 하기도 한다. 많은 정의만큼, 그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다양한 주장이 있다. 예술은 누군가의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도 하고,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예술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가 예술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같은 논란이 지속되는 한편, 예술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은 시장 경제의 관점에서 지속이 어려운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예술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렵고, 비용 지출에 대해 소비자들이 소극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두번째로 구조적으로 다른 산업에 비해 생산 비용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많은 무용수들과 연주자들이 상당 기간동안 연습을 통해 하나의 공연을 실연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이를 기계로 대체하거나, 제작 시간을 단축시킬 수 없으며 복제할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예술 단체(기업)는 다른 영리 기업에 비해 낮은 생산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 지원, 역사가 있다.
외부의 자원이 필요했던 예술은 역사적으로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성장해왔다. 유럽에서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 활동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이 탄생하였으며 17세기에는 극과 문학 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을 통해 강한 국력과 절대왕권을 과시하였다. 자본주의가 확립한 18세기에 들어, 정부(궁정)를 중심으로 한 예술이 쇠퇴하고 부르주아 계급으로 그 흐름이 이동하게 되었다. 이 당시 음악 연주자들은 중하급 계급으로 귀족 자녀의 음악 교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곤 하였는데, 이렇게 성장하게 된 음악가 중 대표적인 사례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이다. 궁정 음악가로 활동하던 모차르트는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위해 이른바 ‘프리랜서로 전향’하였고, 레슨과 연주로 생계를 유지하며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등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또한 귀족들의 ‘살롱’을 중심으로 한 공동 후원 문화가 생겨나면서, 독일 출신의 베토벤이 오스트리아의 빈에 초청을 받아 음악활동을 이어가게 되었다.
한편, 미술계에서는 프랑스 혁명정부에 의해 미술품 감상의 장소가 궁전에서 공공 미술관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부르주아 시민들이 미술품의 구매자로 떠오르며 예술의 후원계층이 경제권이 있는 상층 시민들로 확대되었다. 예술가들은 후원자를 찾기 위해 개인전이나 동료 예술가들과 합동 전시회를 열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갤러리’의 시작점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예술 후원은 지속되어 왔으며 1960년대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과 함께 ‘메세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지금까지도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일컫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 예조 산하에 도화서를 설립하여 화원들이 그림을 그리게 하였으며 조선 시대 회화 미술은 도화서 화원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안평대군의 후원을 받은 화가 안견이 몽유도원도라는 걸작을 탄생시켰고, 후대의 한국 산수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내 음악의 역사에서도 자료에 명시된 후원 제도는 없었지만, 조선 후기 양반층의 경제력 향상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연주자를 직접 초청하여 음악을 감상하고 이에 대한 큰 보수를 제공하였다고 전해진다. 자료에 따르면 조선 후기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인 소리꾼 송흥록은 출연료가 ‘천냥금’이었다고 한다. 근현대에 와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부터 문화예술 지원을 위한 국가적 정책 논의가 시작되었고, 1970년대에 문화예술진흥법의 제정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설립으로 본격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후 88올림픽을 전후하여 기업의 후원을 바탕으로한 문화예술행사가 열렸으며 1990년대 초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의 발족으로 문화예술 지원 및 후원에 대한 인식이 민간으로 확대되었다.
새로운 관점의 등장, 예술의 사회적 임팩트에 주목하다
이와 같이 끝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형태는 조금씩 변화했지만 예술 후원이 지속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예술이 그 자체만으로서의 가치보다는 도구적이고 실천적인 가치를 크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근현대에 와서 더욱 주목받게 되는데, 실용주의자이며 교육학자였던 존 듀이는 저서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통해 예술이란 인간이 살아가며 접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과 연결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예술 경험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과 인간성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예술 지원의 흐름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가장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으로, 영국문화예술위원회는 1993년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이래로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예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지표로 나타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영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6년 발간한 ‘문화예술 가치의 이해(Understanding the value of arts&culture)’를 통해 문화예술의 효과성에 대해 여섯가지로 분류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은 자아와 자신의 삶을 이해하게 하고, 다양한 경험과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을 제고하여 ‘성찰적 자아 형성’을 도움을 준다.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으며, 참여적 시민을 육성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 간 갈등 해결에 도움을 주어 평화를 조성한다.
대중문화, 하위문화 등 예술활동의 다양성은 도시와 농촌에서의 삶의 균형을 가져다 준다.
정신 건강을 비롯한 건강 증진 및 웰빙과 연관이 있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학습의 기반에 되는 요소들 - 인지능력, 자신감, 학습동기, 문제해결 능력, 소통능력 - 을 증진한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영국 정부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에 문화와 예술을 적극적으로 연계하며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대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더불어 예술가가 커뮤니티 내 활동을 통해 계속하여 확장 및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일례로 2018년 영국 정부가 발표한 고독 정책은 문화 예술을 사회적 고립과 고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주체로 지목하고, 양질의 예술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 집중하였다. 예술의 치유적 기능이 국가의 의료서비스와 결합하여 예산은 절감하는 반면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시킨 시도로, 지표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에 기반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사회와 예술이 공존하며 발전해나갈 수 있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문화예술의 도구적 성격과 공공성에 초점을 둔 지원 사업이 확대되었으며 이와 관련한 연구 역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나는 예술여행’ 사업은 문화소외지역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향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지역간, 계층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를 하였고, 서울시의 ‘예술마을 가꾸기’ 사업은 문화예술을 매개로 하여 지역의 변화와 공동체성 회복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또한 예술의 사회적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설립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꿈의 오케스트라’, ‘예술꽃 씨앗학교’ 사업을 통해 소규모 학교를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여 누구나 문화적 감수성을 키울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이와 동시에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얼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사회경제적 가치 분석 연구’를 통해 추정함으로써 문화예술이 개인의 삶과 사회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임팩트 비즈니스와 결합하여 그 효과가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 외부 자원의 유입이 앞서 밝힌 시장 경제 관점에서 불리한 구조적 특성을 완전히 개선하지는 못 한다. 지자체와 유관 기관, 기업의 지원 사업에 지속적인 참여를 해도 낮은 생산성을 원천적으로 극복할 수 없고 , 불안정한 고용 환경으로 단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동료를 만나기도 매우 어렵다.
예술 단체가 고민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비즈니스적 접근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열쇠가 될 수 있다. 사회적 가치(임팩트)를 만들어내면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임팩트 비즈니스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다. 예술이 지닌 사회적 가치 속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낸다면 예술 단체는 비즈니스 조직, 기업으로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단체는 이를 통해 단체의 지속가능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고,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고용 불안, 낮은 생산성과 같이 예술 산업 생태계가 지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0년도부터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양성과정을 운영하며 문화예술 단체가 비즈니스 조직으로 자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조직의 사회성과 측정 지표 개발 연구 및 사회적 임팩트 보고서 발간 등을 통해 문화예술 기업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 확산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다수의 대학은 예술경영과 관련한 학과를 신설하여 비즈니스 역량을 갖춘 예술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고, 문화예술 유관기관에서도 예술 단체(기업)의 비즈니스 역량 강화 지원, 기술 접목 예술 기업 발굴 및 지원 등 전통적인 방식의 지원 사업과는 다른 형태로 예술 단체(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지원 효과를 확대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예술 단체의 비즈니스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이 다양한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그 결과 예술 기업의 새로운 등장이 돋보이고 있다. (예술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예술 기업의 사례는 이번 호 ‘예술로 세상을 구하는 법: 사회문제 해결의 새로운 키(key)‘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장 단체를 복수의 투자를 유치하고 경계없는 성장세를 나타내는 유망한 기업으로 전환시키지 않더라도,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 문제를 정의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날카롭게 수립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단체와 이 생태계 전반의 경제적 가치를 확보해 나감으로써 예술 활동을 지속하고, 나아가 예술이 지닌 긍정적인 가치가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이 실현될 수있을 것이다.
작성자 : 임팩트스퀘어 우아영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