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의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지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원보다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원의 양이 더 많다면 미래세대는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
국제환경단체인 지구생태발자국 네트워크(GFN)에 따르면 인류는 현재 지구 1.7개가 필요한 수준의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지구 3개가 있어야 감당이 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인류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적게 쓰고 다시 쓰며 폐자원을 재생해 새롭게 쓰는 ‘순환’고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세계가 ‘순환경제’에 주목하는 이유다. 또한 순환경제가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면, 이를 신산업의 기회로 여기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비즈니스 플레이어가 계속 나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순환경제가 왜 등장했는지, 순환경제 생태계에서 기업들은 어떤 모습으로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순환경제일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 순환경제인가?
‘선형경제’(Linear Economy)를 기반으로 한 급격한 도시화, 인구성장, 세계화는 지속가능성에 빨간 불을 켜고 있다. 선형경제 구조는 자원의 대량 생산-소비-폐기(매립, 소각)의 과정을 거친다. 선형경제는 풍부하고 값싼 재료와 화석 연료 에너지,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인간의 생활 수준을 개선했으나, 이용 주기가 짧은 제품들이 넘쳐나다 보니 폐기물 양도 대폭 늘어 온 지구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환경과 에너지 문제와 맞물려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폐기물의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로 알려진다. 그러다 2010년 이후부터 선형경제와 대비되어 각종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순환경제’(Circular Economy)가 본격 대두됐다.
순환경제는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새로 투입되는 천연자원, 폐기물량을 최소화하고, 경제계 내에서 순환되는 물질의 양을 극대화하는 경제 모델로,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제품 생산 시 가급적 자원을 적게 사용하도록 설계 ▲사용한 자원은 다시 쓰고 오래 사용 ▲사용 후에는 자원을 재생해 선순환 고리(Close loops)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핵심이다.
Part1. 순환경제 비즈니스 모델
세계 기업들은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에 신산업의 기회가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그 기회는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을까?
글로벌 컨설팅기업 액센추어(Accenture)가 세계경제포럼(WEF)과 함께 100여 개가 넘는 자원순환 기업을 분석해 도출해 낸 “5가지 순환경제 비즈니스 모델”에서 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당 모델은 순환경제 비즈니스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원순환의 핵심 메커니즘을 유형별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①순환형 공급망 (Circular Supplies)
공장 운영과 제품 제조 단계에서 재생 가능한 원료, 재생에너지를 활용
레뉴이(네덜란드) - 버려진 과일 껍질에서 에센셜 오일 추출, 세제 원재료 및 시트러스 펄프 생산
아그로네지(프랑스) - 목재·곡물 찌꺼기 업사이클링으로 열에너지 생산
웨이스트 매니지먼트(북미) - 폐기물 수집 및 재생, 음식 폐기물로 전력/바이오 연료 생산
카페잉크(네덜란드) - 커피박 업사이클링으로 잉크, 화장품 원료 등 생산
리그넘(국내) - 폐목재 업사이클링으로 바이오 플라스틱 소재 생산
제클린(국내) - 제주서 ‘숙박 침구의 공급-세탁-케어-재생-재활용’ 친환경 프로세스 공급
②자원 회수와 재활용 (Resource Recovery)
폐기 예정이거나 폐기된 제품을 회수해 재사용하거나 제조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재활용
바이퓨전(미국) - 폐플라스틱 수거, 증기 기반 공정으로 건축용 벽돌 제작
아샤야(인도) - 과자봉지 등 복합 플라스틱 회수, 업사이클링 제품 제작
찹밸류(캐나다) - 지역에서 일회용 젓가락 수거, 업사이클링 가구 제작
넷스파(국내) - 폐어망에서 나일론, 폴리올레핀 등 소재 재생
라잇루트(국내) - 폐배터리 분리막을 고기능성 섬유 소재로 재생
뉴트리인더스트리(국내) - 곤충 먹이로 음식폐기물 처리, 친환경 비료 생산
③제품 수명연장 (Product Life-Extension)
수리, 리폼, 보상판매 등으로 제품의 수준을 유지하거나 향상시켜 사용 기간을 늘림
보다폰(독일) & 클로징루프(네덜란드) - 폐휴대폰 수리 후 재사용 협업
파타고니아(미국) - 옷 수선으로 오래 입기 ‘원 웨어’(Worn Wear) 운영
페어폰(네덜란드) - 공정무역 광물·재생 플라스틱 사용 친환경 스마트폰 제작
약속의 자전거(국내) - 자전거 수리, 렌탈 및 폐자전거 업사이클링
피에로컴퍼니(국내) - 국내 리퍼기기 구독서비스 ‘폰고’(Phone GO) 운영
④공유 플랫폼 (Sharing Platform)
사용하지 않는 자산이나 제품을 빌려주거나 교환, 기증, 대여함으로써 제품 수요에 대응하고 자원 낭비를 줄임
에어비앤비(미국) - 숙박 공유 플랫폼
우버(미국) - 차량 공유 플랫폼
당근마켓(국내) - 중고매물 공유 플랫폼
라이트 브라더스(국내) - 자발적 탄소배출권 및 중고 자전거 공유 플랫폼
모두의 주차장(국내) - 유휴 주차장 공유 사업 플랫폼
⑤서비스형 제품 (Product As a Service)
제품의 소유 대신 단기 혹은 장기로 제품을 임대하고 이용량, 이용 기간 등에 따라 지불
솔라시티(미국) - 토지, 건물 옥상, 공장 지붕 등에 태양광 모듈 설치 후 생산된 전력을 한국전력 및 발전회사에 판매
렌트더런웨이(미국) - 패션상품 렌탈 구독서비스
린드스트롬(핀란드) - 작업복·유니폼 렌탈 서비스
잇그린(국내) - 다회용기 대여서비스 ‘리턴잇’(Returnit) 운영
블랭크코퍼레이션(국내) - 소멸 위기 지역 유휴 공간 운영
더웨이브컴퍼니(국내) - 로컬 크리에이터를 위한 공유오피스 운영
나아가 위 모델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원순환의 확장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로 한 가지를 더 소개하고 싶다. 클라우드 컴퓨팅,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을 자원순환에 적용하는 ‘플랫폼 기반 사업 모델’이다. 플랫폼 모델은 폐기물을 처리하는 산업군의 영향력을 확대해 재생 원료를 확보하고, ‘스마트 에코플랫폼’(Smart Eco-Platform) 시장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
⑥스마트 에코플랫폼(Smart Eco-Platform)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순환 자원의 선별, 회수 또는 폐기물 배출 최소화 작업을 돕는 솔루션 제공
루비콘(미국) - 클라우드 기반의 폐기물·재활용 솔루션을 서비스 구독 형태로 제공
수퍼빈(국내) - AI 분석으로 폐기물 선별 및 회수, 사용자 보상을 제공하는 플랫폼 운영
Part2. 순환경제 비즈니스 사례
군계일학(群鷄一鶴)의 뜻처럼, 다양한 순환 비즈니스 사례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거나 눈길이 가는 기업들이 있다. 이들 기업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들이 발견된다. ▲재사용, 재생, 재설계로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가 명확하고 ▲이전에 없던 혹은 이전 사례를 더 발전시킨 최신 모델로 혁신을 주도하며 ▲시장에서 주목할 만 한 요소나 비즈니스 성공 포인트가 있다는 점이다.
①커피 찌꺼기의 변신은 끝나지 않았다
‘카페잉크’는 이전부터 있었던 커피박 재활용을 한 층 더 발전시키며 네덜란드 업사이클링(재활용과 더불어 기능과 디자인 등을 보완해 새로운 가치 창출)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커피 찌꺼기에서 염료와 오일을 추출해 내는 기술을 사용해서 오염물질인 카본 블랙 안료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잉크를 세계 최초로 생산했기 때문이다. 잉크 뿐만 아니라 샴푸와 비누 등 화장품 원료, 가구 재료까지 만든다. 2021년에는 벨기에 순환소재 스타트업과 협업해 커피박 가루를 사용한 바이오플라스틱 소재 개발에도 성공했다.
카페 잉크가 업사이클링의 확장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파고든 데 있다. 원료의 종류와 로스팅 등 생산 방식에 따라 50여 가지의 갈색 잉크를 얻을 수 있으며, 커피오일에 폴리페놀과 비타민이 다량 함유돼 있단 사실에 주목했던 것이다. ‘뻔하다’는 것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때론 ‘뭔가 더 없을까’ 하며 파고드는 집요함도 필요하다.
②폐기물 처리 소프트웨어로 유니콘 반열
효율적인 재활용과 폐기물의 재사용을 돕는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있다. 2008년 설립된 미국 기업 ‘루비콘’(Rubicon)은 쓰레기 재활용 업계에서 드문 사례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이 되었다. 루비콘은 정부, 기관, 가정 등 폐기물 배출자와 수거·운반 업체를 연결하고 비용을 받는다. 전 세계 20개국, 미국 내 50개 주에 진출해 있으며, 8,000개 이상의 수거·운반·재활용 기업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루비콘의 재활용률은 폐기물 업계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고 한다. 기업 가치는 17억 달러(약 2조2,000억 원)로 추정된다.
어떻게 유니콘이 될 수 있었을까? 이는 폐기물·재활용 산업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앞서서 실현한 데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적용된 최첨단 소프트웨어를 쓰레기 문제 해결에 투입했다. 쓰레기 통이 언제 가득 차는지, 주로 버려지는 폐기물은 무엇인지 등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이 효율적인 폐기물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를 연결한 것이다. 사회적 가치가 비즈니스가 되게 하는 방법은 각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고도화 된 기술을 재빨리,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선구자의 지혜는 어느 시대에나 중요하다.
③재활용률 0% ‘과자 봉지’를 선글라스로
재활용이 거의 되지 않던 폐기물을 자원화하는 데 성공한 인도의 스타트업 ‘아샤야’는 까다로운 장벽을 깨부수며 혁신에 나섰다. 아샤야는 환경오염에 치명적인 플라스틱 쓰레기, 그중에서도 재활용이 난감한 다층 플라스틱을 골라 업사이클링하는데 도전했다. 버려진 과자봉지, 우유팩과 같이 얇고 유연한 다층 플라스틱 포장재는 여러 층의 플라스틱 필름, 종이, 구리, 알루미늄 등으로 구성돼 재활용, 재사용율이 0%에 가까울 정도로 현저히 낮다. 아샤야는 먼저 열분해로 플라스틱에 포함된 종이와 금속을 제거하고, 폴리올레핀과 페트(PET)를 추출해 3D프린터로 ‘위드아웃’(WITHOUT)이란 선글라스를 만들었다. 시제품으로 나온 500여 개의 선글라스는 출시 6일 만에 매진됐다. 선글라스 판매 수익금 일부는 장학금 형태로 수거업자 자녀에게 제공키로 하면서, ‘쓰레기 수거업자의 처우 개선’이란 사회적 가치를 더했다.
이처럼 아샤야는 단순히 폐자원 활용만이 아니라 재활용이 안 되고 있는 영역, 즉 남들이 가지 않던 길을 개척했다. 아샤야가 시사하는 바는 설립자인 아니쉬 말파니 CEO가 비즈니스를 시작한 동기에 관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재활용이 어려운 버려진 과자봉지로 무언가를 만드는 생각은 아무도 못 했을 겁니다. 재활용으로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었습니다”
순환경제가 진정한 터닝포인트가 되려면?
순환경제는 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힘입어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순환경제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3,380억 달러에서 2026년 약 7,12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2030년까지 4조 5천억 달러(약 5,796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한국 내 순환경제를 통한 경제체제 차원의 경제적 효과의 경우는 생산 유발효과 측면에서 약 482조 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측면에서 약 292조 원, 약 411만 개 일자리 창출효과를 낼 것으로 도출됐다. 기후변화 대책과 경제성장 두 축을 고려해 순환경제 촉진을 이끌었던 유럽연합(EU) 그리고 미국과 더불어 최근 우리 정부 역시 올해 6월 ‘순환경제 활성화를 통한 산업 신성장 전략’(Circular Economy 9 프로젝트)을 발표하는 등 순환경제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저성장 기조나 환경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여건 마련을 시작한 셈이다.
순환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기술적·문화적으로 혁신을 이룰 플레이어들의 활약은 그래서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플레이어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바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해결이 난해한 문제만 남아 있고 개선보다 악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기업가 정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발휘될 수 있다. 카페잉크처럼 재생 소재를 파고들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도 있고, 루비콘처럼 혁신 기술에 아이디어를 접목해 폐기물 비즈니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 수도 있다. 혹은 아샤야처럼 비즈니스 결과보다는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다. 폐기물 해결에 완벽한 정답을 찾은 곳은 아직 없다. 순환경제 영역에는 정답이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통념을 뒤흔드는 무수한 해답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진정성을 갖고 뛰는 플레이어들이 있다면 터닝포인트는 충분히 가능하다.
작성자 : 임팩트스퀘어 김민주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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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딜로이트 인사이트 : 순환경제 도입,기후위기의 현실적 대안, Diloitte (2023.04)
The Circularity GAP Report 2023, Diloitte & Circle Economy (2023)
PwC코리아 인사이트 리서치 : 순환경제로의 전환과 대응전략, 삼일PwC경영연구원 (2022.04)
대한상의 브리프 제52호 :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순환경제', 대한상공회의소 (2018.02.05)
VOL.453 지원순환경제의 미래와 기업의 대응(22-23p), 기술과 혁신 (2022.05)
순환경제 활성화를 통한 산업 신성장 전략, 환경부 등 관계부처 합동 (2023.06.21)
연구보고서 22-10호 순환경제 미래산업 전략(14-15p), 국회미래연구원 (2022.12.31)
버려진 과자봉지로 선글라스 만드는 ‘아샤야’…저소득층 지원하며 지속가능성 추구, greenium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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