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생수는 유럽에 판매할 수 없다고?
당신 회사의 제품은 재생원료를 얼마나 사용했나요?
근래 유럽, 호주 등의 대형 바이어들은 특정 기업의 제품을 수입하기에 앞서 필수적으로 재생원료 사용량을 묻는다고 한다. 이러한 행태는 EU, 미국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2023년까지 플라스틱 생산에서 재생원료(폐플라스틱 재활용 원료) 사용 비중을 30%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실제로 국내 한 주방용품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자사의 일반 플라스틱 제품이 재생원료를 활용한 경쟁사 제품에 밀려 수출에 실패했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해당 경쟁사는 당사의 제품이 어떤 방식으로 재생원료를 조달하고, 플라스틱 사용량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중심으로 브랜딩을 전개하는 회사였다고 한다.
세계의 플라스틱은 지금
OECD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은 2019년 기준 4억 6,000만 톤에 이르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4%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생산단계 만이 문제는 아니다. 플라스틱은 폐기 과정에서도 막대한 온실가스를 유발하는데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그대로 소각되어 유해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폐플라스틱 양이 더욱 증가했다는 것이다. OECD가 발간한 ‘글로벌 플라스틱 아웃룩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억 5,600만 톤이었던 세계 폐플라스틱의 양이 2021년에는 3억 530만 톤으로, 2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플라스틱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주요 국가는 생산을 줄임과 동시에 재생원료 사용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들은 재생원료 사용 비중을 비중을 높이는 것을 엄중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것이 수출입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생수는 유럽에 판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높은 품질을 자랑하는 국내 생수도 그 품질과 관계없이 유럽 수출이 불가하다는 것이 알려져 한 차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해외 바이어가 던지는 ‘당신 회사의 제품은 재생원료를 얼마나 사용했나요?’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끌어올린 생수의 품질을 논하기 전에 그 물을 담고 있는 용기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우리나라는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판매가 가능하지만 유럽은 재생 플라스틱 사용 비중이 제조 및 생산 의무 조항에 명시되어 있어 판매가 불가능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전 세계적 추세가 이러한데, 우리나라의 재생원료 활용 정책 및 의무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왜 아직 생수 한 병을 수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플라스틱 재생원료 활용 현황
2020년 기준, 국내 플라스틱 재생원료 활용률은 0.2%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인 6%에 한참 뒤처진다. 물론 개선하려는 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2022년 ‘식품 용기 사용 재생원료 품질기준’을 통해 페트(PET)에 대한 재생원료 사용 기준을 고시했다. 또한 2023년부터는 ‘자원순환분야 업무계획 중점 추진과제’를 통해 페트 연 1만 톤 이상 생산 업체는 재생원료를 3% 이상 사용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2023년까지 재생원료 사용 비중을 30%까지 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산업계에서 직접 느끼는 변화의 속도는 여전히 더디고, 어떤 부분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국내 재생원료 사용률이 낮은 이유
첫째로, 가장 큰 이유로는 다른 선진국이 플라스틱 문제에 집중하고 발 빠르게 법안을 만들어 실천하는 동안에 우리나라는 아무 규제가 없었던 것이 경쟁의 불리함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은 재생원료를 쓸 의무가 없었고, 따라서 어느새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재생원료 기준을 급히 따라가야 하는 형세가 된 것이다. 비슷한 흐름으로 국내에서 재생원료를 생산하는 기업은 내수시장의 니즈가 적다 보니 재생원료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는 유럽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추진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국내에서 거래되는 재생원료 시장의 더딘 성장의 원인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경부는 올해부터 3%의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의무화를 시행하기로 했으나, 다소 뒤늦은 도입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둘째로, 국내 폐플라스틱은 품질보증이 되지 않아 재활용에 한계가 있다. 이는 선별 및 수거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국내 폐기물 산업 전반의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플라스틱을 열심히 분류했다고 할지라도 회수 과정에서 마구 섞여버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별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선별 정확도 및 효율성이 떨어진다. 재활용 산업은 많이 회수할수록 분담금을 많이 받아 가는 수익 구조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업체는 많이 회수하는 데에 집중하고 선별 및 재활용 효율 극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도 품질 저하의 주요 원인이 된다.
셋째로, 국내 플라스틱 재생원료 단가가 일반 플라스틱 소재에 비해 비싼 것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재 PET Resin가격이 1,450원~1,550원/kg인데, 재생페트 펠릿은 1,880원~2,000원으로 더 비싸다. 관련하여 이수호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본부장은 “대기업 제조사가 가격만 고려하여 중국의 재생원료를 수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으로 저가의 재생원료가 지속적으로 수입될 경우 국내 재활용산업의 고품질화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활성화를 꿈꾸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전망은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따라서 플라스틱을 그저 규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재활용 기술 분야의 새로운 시장임을 인식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필요성이 있다.
여기에는 공공의 책임, 그리고 기업의 책임이 각각 존재할 것인데, 예를 들어 폐플라스틱 단가가 너무 비싸 국내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 순환이 이루어지도록 초기에는 정부가 먼저 움직여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 및 성장 기반을 다져주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페트 생산 업체에 재생원료 사용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조금 더 실효성있는 방향성으로의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가령 정부가 페트(PET) 생산 업체(주로 플라스틱 원료를 만드는 석유화학업계)에 재생원료 3% 이상 사용 의무를 부과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순환경제 시스템의 핵심주체는 최종 소비 제품의 제조사(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는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로, 제조기업 대상으로도 규제가 확장되어야 한다. 이들이 폐플라스틱을 제품 제작 과정에 직접 다시 원료로 투입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진정 순환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아직 의무 규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필연의 미래를 예상하여 자원순환 생산 라인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이렇게 규제와 의무 기준이 생겨나면 국내 플라스틱 재생원료 시장의 고품질화를 위한 노력 또한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많은 플레이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렇지만 괜찮다. 이렇게 행동하며 학습해나가면 된다. 지금 이 순간처럼 지속적으로 일반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의 필요성을 논하고, 플라스틱 폐기물 품질 개선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찾아간다면 머지않아 전환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
작성. ISQ 조예신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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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및 산업 동향과 시사점(녹색기술센터,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