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순환경제, 이대로 충분치 않다.

넷제로(Net Zero), 기후 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하여 실질적 탄소 배출량을 0에 맞춤을 의미하는 용어로 2023년이 된 지금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 되었다. 물론 넷제로를 추구하는 정부, 학계, 기업의 이해도 및 관점의 차이로 꾸준한 협의와 고도화된 접근방식이 계속해서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넷제로는 그 자체로 어느덧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누구도 그 필요성과 시급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넷제로의 실질적 액션플랜으로 거론되는 ‘자원순환’은 어떠한가? 이것 역시 넷제로를 빠르게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이자 과제로서 주요하게, 계속해서 거론된다. 그래서 이 익숙한 흐름과 분위기는 그 자체로 ‘문제’가 ‘문제없이’ 해결되고 있다는 시그널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무엇인가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 익숙함 이면에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가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원순환은 ‘2050 탄소중립 이행 과제’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 자금이 생겨났으며, 대기업이 앞다투어 자원순환 사업을 추진하며 생태계가 급속도로 확장되기도 했다. 또한 관련 정책 미비 및 규제 등으로 새로운 시도가 어려웠던 신사업 및 신기술 영역에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함으로써 스타트업의 진입로도 폭넓게 확보해 나가는 중이다. 그 결과 일부는 솔루션 검증을 마치고 스케일업 단계에 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어느덧 익숙해진 이 ‘자원순환’ 영역은 지금 이대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자원순환 스타트업들을 다년간 지원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 중 핵심적인 두 가지의 맥락을 다시 살펴보려 한다. 

첫째, 중요하지만 여전히 비어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 현재는 수익성이 예상되는 특정 폐자원, 또는 큰 규모의 투자가 집행된 바 있는 영역에 솔루션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을 개발한 ‘수퍼빈’이 2020년 200억 투자 유치에 성공한 이후 유사한 솔루션이 대거 등장했다. 덕분에 기기 기반의 수거 사업은 기술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단기간 크게 성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들로 인해 진입이 쉽지 않은 영역에도 혁신은 필요하다.

국내에 비어있는 영역 중 하나로는 ‘모노머터리얼 패키지(Mono-material Package, 단일소재 포장재)’가 있다. 모노머터리얼 패키지는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 복합 재질의 다층으로 이루어진 필름 패키지(레토르트 식품에 많이 쓰인다.)의 재활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솔루션이다. 식품 패키지의 경우, 산소 투과 방지, 빛 차단 등 내용물의 상태 유지를 위해 복합 재질을 사용하는데, 이 복합구조 때문에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고품질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폐플라스틱 중 복합재질 패키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재질의 복합성은 자원 재활용률에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다국적 식품 기업들의 주요 과제로 논의되어 왔다. 이미 해외에서는 복합재질 패키지의 성능을 충족하는 단일재질 패키지의 상용화 사례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한편, 아직 모노머터리얼 패키지 국산 기술 상용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둘째, 생산, 소비, 폐기 및 재활용 전 과정을 고려한 자원 분배,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복잡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간단하다. 각 자원이 어디에 쓰여야 할지 깐깐하게 고민하고 분배해야한다는 이야기이다. 가령, 과거에 폐기물이었으나 이제는 폐자원으로 인정하는 폐플라스틱을 어디에 얼만큼 분배해야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물리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으로 구분된다. 물리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분류, 세척해 물리적으로 잘게 파쇄한 뒤 녹이고 압출해 재생원료 칩을 만드는 방식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파쇄한 폐플라스틱에 고온, 고압을 가함으로써 결합된 분자를 해체해 플라스틱 기초 원료 물질로 돌려놓는 방식이다.

물리적 재활용은 투입하는 폐플라스틱의 순도(다른 재질과 섞이지 않았는지)와 이물질 혼입 여부가 생산 원료의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 재활용을 여러 번 거치면 원료의 품질이 떨어지고, 반복적으로 재활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화학적 재활용은 투입하는 폐플라스틱 컨디션과 관계 없이 버진 원료와 100% 동일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고품질 재생원료 생산이 가능하고, 무한히 반복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화학적 재활용 역시 완벽한 솔루션이라고 할 수 없다. 분자 결합을 해체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수율이 낮아 단위 생산량 대비 막대한 환경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챌린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각 방식에 어떤 폐플라스틱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

 

단일 재질로 선별된 폐플라스틱은 되도록 환경적 영향이 적은 물리적 재활용에 분배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아파트 분리 배출장에서 별도로 모으는 투명PET병이 그러하다. 투명PET병은 PET 재질의 제품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제품으로, 잘 선별해서 물리적 재활용 할 경우 다시 투명PET병으로 순환시킬 수 있다. 한편,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순도 높게 선별하기 어려운 혼합 폐플라스틱은 화학적 재활용에 분배할 수 있다. 물론 소각과 매립보다는 사회적, 환경적 비용이 적게 투입된다는 가정하의 이야기이다.

그간 재활용 사업 분야에서는 폐자원의 적확한 분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고 작년 초 WWF는 “폐플라스틱의 물리적 재활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화학적 재활용의 환경적 영향을 저감해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점에서 우려가 깊다.

끝으로, 긴 글에 걸쳐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충분하지 않음’을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자원순환 솔루션은 전 세계에서 필요로 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분리수거를 도입한, 순환경제를 구축하기에 좋은 기반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좋은 기반에 ‘충분하지 않은 영역’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더해진다면 국내 자원순환 생태계가 빠르게 확장, 성숙되고 훗날 세계에서 벤치마크하는 사례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작성. ISQ 최나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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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의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