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시장의 시장화: Novartis의 Arogya Parivar 사례 알아보기

2013. 10. 10. 17:54

이 글은 임팩트스퀘어가 지속가능경영포털에 기고한 [공유가치 케이스.02_비(非)시장의 시장화: Novartis의 Arogya Parivar 사례 알아보기]를 옮긴 것입니다. 원문 PDF 파일은 지속가능경영포털 전문가칼럼 게시판에서 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제 글로벌화된 유수의 기업이라면 으레 도입해야 할, 진일보한 패러다임으로 인식되고 있는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는 국내에서 기업사회공헌과 결부된 개념으로 오해 받아왔다(이선화,「CSV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니다」참조) 비록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통해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오늘날 CSV를 주목해야 하는 필요성을 기본적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과 개념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관문을 여러 개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업의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인 상품 및 서비스가 CSV 관점을 통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혹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네슬레의 경우 이는 합당한 설명이겠으나, 이전에 만들어내던 가치가 원래 그러한 성격을 가진 것이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하는 물음을 자연스럽게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번에 살펴볼 노바티스(Novartis)의 사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약기업, Novartis

Novartis는 1996년 스위스의 가장 큰 제약·의료업체인 Ciba-Geicy와 Sandoz의 합병으로 탄생한 제약회사이다. 전세계 약 140여개국에 10만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세계 2위의 다국적 제약기업이기도 하다. 매출은 50조 6천억원, 순이익 10조를 기록했으며(2010년 기준), 전문의약품의 핵심사업영역을 중심으로 일반의약품 등의 소비자 건강 사업 부문과 제네릭(미 FDA의 정의에 따르면, ‘원 개발사 의약품과 함량, 안정성, 강도, 용법, 품질, 성능 및 효능과 효과가 동등한 의약품’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신약과 동등한 품질의 또 다른 약을 지칭하는 말이다) 산업 부문에서도 세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Novartis는 막대한 R&D 투자에서 파생되는 신의약품 파이프라인을 그 핵심 가치이자 역량으로 인식하고 있다. 2010년 Novartis 그룹은 연구개발비로 91억 달러를 투여했는데, 이는 당해 전체 매출액 대비 18%에 이르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아울러 Novartis는 의약품이라는 가치제안의 특수성 상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UN Global Compact에 가입하고 그 책임의 이행을 위해 개발도상국에 말라리아 치료제를 저가에, WHO에 결핵 치료제를 무상 공급해왔으며, 나병 퇴치를 위한 의약품을 전세계에 무료로 공급해왔다. 위 사회공헌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NFSD(Novartis Found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는 30년 이상의 업력과 전문성을 자랑하는 조직이다.

 

Novartis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선택

Novartis를 비롯한 전세계 제약기업들은 거의 동일한 사업 프로세스를 거친다. 신의약품 R&D 및 임상실험, 식품의약국 승인, 신약의 상용화 및 판매, 이익의 신의약품 R&D 재투자가 그것이다. 오랜 기간과 높은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약 R&D 및 상용화의 특성은 특허권 만료 규제와 함께 제약기업으로 하여금 출시된 제품에 높은 가격 책정 정책을 고수하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그리고 이는 제약업이 본격화 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이 업계가 고수익 산업으로 남을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였다.

이에 힘입어 2007년까지 전세계 제약회사들은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해왔다(Carliss Y. Baldwin 외, 「Roche’s Acquisition of Genetech」, HBS, 2011, pp. 2-7 참고) 당시 산업 전체 매출액 규모는 2010년까지 7,67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의 둔화와 제네릭 의약품의 확대는 산업의 성장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급증했다. 미 FDA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2에 출시된 의약품 중 14%만이 큰 폭으로 진일보한 수준이었으며, 나머지는 기존에 출시되었던 제품의 변형 혹은 낮은 수준의 개선에 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맞서 제약회사들이 택한 돌파구는 인수합병 및 전략적 투자였다. Novartis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데, 위기 도래 이전인 2001년에 이미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 중 하나인 Roche의 지분 21.3%를 취득했다. 하지만 Roche를 인수하지는 않았고, 따라서 그 효과 또한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Novartis가 다시 시도한 전략은 신시장 진출이었다.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등 급부상하는 신흥국에 자사 의약품을 판매함으로써 시장 확대라는 또 하나의 성장의 축을 확보하고자 했다.

 

신흥국 ‘시장’에서 마주한 문제

신흥국의 엄청난 인구수를 고려했을 때 이 전략은 올바른 방향일 것처럼 여겨졌으나, 곧 중요한 문제점이 부상했다. 즉, 인도를 위시한 신흥국은 사회 제반 인프라와 교육의 부재로 인해 Novartis가 두각을 나타내 온 기존의 방식으로는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인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기로 인한 질병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대학생들. 이미지 출처

다시 말해, 이들 국가의 상대적으로 빈곤한 계층들은 ‘몸이 좋지 않거나 건강해지기 위해서 약을 먹어야 한다’는, 제약회사의 소비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적 인식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나아가 다른 곳에서 판매되던 의약품에 책정된 가격을 제대로 지불할 수 없는 소득 수준의 인구가 대부분이었다. 인도만 하더라도 하루에 1~3달러로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들이 8억명에 달하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67%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이다. 이는 Novartis가 신흥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이들 상대적 빈곤계층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매우 위협적인 제약조건이었다. 그 구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IFPMA 웹사이트 참고).

 

- 낮은 인식 수준: 문맹자가 많고 과학적 근거 없는 신화와 믿음에 근거한 습관

- 제한적 적정성: 하루 1~3달러로 가정 생계를 꾸려 나가는 저소득 계층

- 의료건강 인프라의 부적절성과 낮은 품질

- 의약품에 대한 제한적인 접근성

- 낮은 수준의 위생 인프라: 상수도 및 정화 시설

- 국가 정책에 있어 의료건강 인프라 구축의 낮은 우선순위

 

Arogya Parivar, 비(非)시장의 시장화

따라서 Novartis가 신흥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건강 및 의약품에 대한 인식이 낮은 비(非)소비자의 소비자화, 비(非)시장의 시장화가 필수적이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2007년부터 시행한 프로그램이 바로 ‘Arogya Parivar’, 힌디어로 ‘건강한 가족’을 뜻하는 이니셔티브이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인도의 소외된 지역 주민들이 겪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그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주민들이 스스로의 건강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크게 질병, 처치 방법 및 예방 관련 교육과 적정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개선의 사업 영역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Novartis가 의도했던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용하기 쉽고 해당 지역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어야 했다. Arogya Parivar는 그 목표 달성을 위해 해당 지역의 산후 여성을 고용하여 이들에게 먼저 의료건강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 및 지식을 교육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고용된 여성 튜터들은 교육을 진행하며 인지하게 된 환자들을 적절한 의료 처치를 제공할 수 있는 병원 및 NGO로 이송하는 작업까지 담당했다. 또 커뮤니티 내 소통이 빈번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Arogya Parivar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 셔츠, X배너를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역사회에서 의료 프로그램이 행해지는 현장. 이미지 출처 

또한 교육이 교육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역의 병원, 의사, NGO 등과 협력하여 이들이 현대 의학을 통해 질병을 치료받는 경험의 증거를 갖도록 하는 캠프도 조직했다. 이들 캠프에서 주로 집중했던 질병들은 지역에서 가장 유행해 온 것들로서, 교육 및 서비스에 활용되는 Norvatis의 일반의약품 및 제네릭 의약품들도 그에 맞춰 접근성이 개선된 가격으로 판매됐다. 물론 이는 저소득 계층이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사이즈가 더 작아졌고, 설명서 또한 각 지방의 현지어로 기술된 제품들이었다.

이 모든 것은 도심이 아닌 교외의 소외된 지역에서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 및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의 마련이 매우 중요했다. 이들 지역에는 교통이나 IT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된 해당 지역 출신 여성들과 관리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고, 핸드폰을 이용한 네트워크를 통해 최첨단 인프라를 대체하고자 했다.


Arogya Parivar의 성과와 CSV로의 전환

Arogya Parivar가 놀라운 점은 사업을 시작한지 30개월만에 비용을 상회하는 매출을 달성했으며, 2012년 매출은 2007년의 25배 규모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진출하지 않았던 국가 내에서도 소외된 지역에서 적정화를 거친 버전의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전사적 상품 포트폴리오를 잠식하지 않는 결과로도 다가왔다. 이는 향후 타 국가, 타 지역으로 확장가능한 모델로서도 유의미하다고 하겠다.

CSV의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동력의 발굴은 5년간 33,000개의 마을에서 4,200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진료를 하는, 괄목한 만한 사회적 성과에 기반한 것이었다. 비단 진료로써만이 아니라 지역 여성을 고용하는 정책은 Arogya Parivar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기존에 진행했던 CSR 프로그램과 CSV 전략의 차이점은 자명해 보인다. 다음의 표는 이를 정리하고 있다.

서론에서 제기했던 것처럼 Novartis는 기업의 본래 가치제안 자체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재화 혹은 서비스의 형태를 띠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Arogya Parivar 사례가 갖는 의미는, 본연의 가치제안을 보다 사회적으로 만드는 작업 자체가 CSV를 달성하는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데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오히려 진정한 CSV의 달성을 위해서는 비즈니스의 미래 동력 및 수익성 확보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사회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을 통해 그 진정한 근본적 원인(Root Cause)을 제거하고, 또 나아가 경제적 가치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바로미터는 Arogya Parivar의 경우처럼 데이터에 기반한 우수한 수익성과 사회적 성과 향상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는 얼핏 보기에는 저소득 혹은 소외된 계층을 위하는 공유가치를 담는듯 보이지만, 실상 제품의 단순 변형, 신시장 진출, 혹은 효용의 미약한 증가에 그치고 말아 실제 소비자들의 삶의 질 향상과 자사 수익성 향상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지 못하는 국내 기업들의 활동들을 CSV라고 부르기 망설여지는 이유이다.


작성자 : ISQ 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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