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회적기업가가 될 필요는 없다: 사내 기업가정신, 그리고 삼성 안구마우스 eyeCan
2013. 5. 3. 14:10
본 글은 Impact Business Review 5월호에 실린 [Insight+ 누구나 사회적기업가가 될 필요는 없다: 사내 기업가 정신, 그리고 삼성 안구마우스 eyeCan] 기사를 요약하여 IBR 편집부 동의 하에 실은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포스트잇, 그 출생의 비밀
1968년, 미국 3M의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는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를 개발했다. 접착제라는 것은 잘 붙는 것이 본래의 목적인데 붙었다가도 쉽게 떨어지는 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회사는 원래의 용도를 고려했을 때 실용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실버는 포기하지 않고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공식적인 세미나와 개인적인 대화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 아이디어를 설파하고 다녔다.
영영 빛을 못 볼뻔한 이 아이디어는 한 교회 성가대원의 불만을 만나며 전환을 맞게 된다. 3M의 또 다른 직원이었던 아트 프라이(Art Fry)는 1974년 실버의 세미나를 듣다 이 별난 접착제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영감을 받는다. 프라이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매번 찬송가 책 사이에 끼워 놓았던 종이가 빠지는 바람에 악보를 놓치는 데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찬송가 책의 얇은 종이에 잘 붙으면서도 떼어낼 때는 종이가 찢어지지 않는 책갈피가 없을까 고민하던 그에게 실버의 접착제는 획기적인 솔루션으로 다가왔고, 이후 그는 3년 동안 연구한 결과 오늘날 포스트잇을 탄생시키게 된다.
사내 기업가정신과 혁신, 조직 환경의 상관관계
포스트잇처럼 이렇게 기업 내부 직원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제품 혹은 서비스를 우리 주변에서 또 찾아볼 수 있다. 구글의 지메일(Gmail) 서비스 또한 위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사례이다. 구글의 엔지니어였던 폴 부크하이트(Paul Buchheit)는 본래의 검색 엔지니어링 업무 외에 단순히 “기존의 이메일이 오랫동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sort of unhappy with email for a long time)” 이러한 Gmail의 프로토타입을 스스로 만들었고, 그의 동료들은 이 새로운 솔루션에 지지를 보냈다. 오늘날 Gmail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메일 서비스로, 4억 명 이상의 사용자 수를 자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대개 창의적인 아이디어,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한 새로운 가치 제안은 뛰어난 기업가가 이끄는 벤처 조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또 차고나 기숙사 방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와 사업가들이 IPO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실리콘 밸리 식의 성공 스토리 때문인지, 우리는 혁신, 창의, 위대함 등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남들이 보지 못한 비전을 가진 개인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주목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시스템과 구조를 갖춘 기업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일하는 고용인(employee)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업에 속한 구성원들 또한 스스로의 비전과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가치 제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들을 지칭하는 개념을 기업가(entrepreneur)라는 단어를 살짝 비튼 사내 기업가(intrapreneur)라고 하는데, 오늘날처럼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심화된 경쟁의 시대에 많은 기업들이 사내 기업가정신(intrapreneurship)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내 기업가정신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의를 들여다보자. “사내 기업가정신은 강제가 없음에도 새로운 일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 내 종업원들의 이니셔티브를 일컫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강제가 없다는(without being asked to do so)” 점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조직이 시키는 일이 아닌 프로젝트에 자원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 이는 기업의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과 사내 기업가정신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의 기업가정신은 흔히 경영진들의 비전과 전략에 따라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발현되며, 일반적인 기업 내 ‘신사업 개발’과 같은 이름의 팀에서 수행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사내 기업가들은 조직의 직무가 요구하는 과업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것, 창의성, 혁신 등의 가치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이 이들의 결과물은 보다 강력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이처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조직의 문화 혹은 제도적 뒷받침이다. 실제로 포스트잇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스펜서 실버의 접착제와 아트 프라이의 연구는 모두 3M이 이미 1948년부터 마련한 15% 프로그램 덕택이었다고 전해진다. 15% 프로그램이란, 기술직 종업원들은 업무 시간의 15%를 직무 외의 연구나 개발 활동에 자유롭게 할애할 수 있는 3M 고유의 제도를 의미한다. Gmail의 탄생은 구글이 이와 유사한 20%룰을 정립하는데 기여했다고 전해지며 이 외 많은 기업들이 유사한 가외 프로젝트(side project) 또는 자기 계발 시간을 업무 시간의 일부로 인정하는 조직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임팩트 창출하기
그렇다면 이러한 사내 기업가정신을 활용하여 사회에 바람직한 임팩트를 창출할 수는 없을까? 큰 비전과 창의적인 솔루션을 갖춘 사회적 기업가의 탄생도 의미가 있지만 비교적 적은 리스크를 가진 안정적인 환경에서 가용할 수 있는 조직의 자원과 지원을 활용하여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또 임직원의 자원 봉사와 재능 기부를 통해서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지만, 이를 넘어 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솔루션을 만들고 여기에 공익적인 가치까지 담는 새로운 유형의 사내 기업가들이 많아진다면 이는 분명 기업과 사회 양쪽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의미 있는 사내 기업가정신이 잘 투영된 사례를 소개한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모여 출발한 아이캔(eyeCan)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사내 기업가정신을 통한 임팩트 비즈니스의 실현이라는 주제가 낯설고 어렵지만, 아이캔 프로젝트는 분명 이에 대해 다양한 시사점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례로 판단된다. (아이캔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은 프로젝트 팀원이었던 정진용 책임, 이상원 선임과의 실제 인터뷰, eyeCan 프로젝트 웹사이트인 www.eyecanproject.org 및 기타 사측 보도 자료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CASE STORY: eyeCan, 눈으로 만나는 세상
아이캔은 삼성전자 임직원 5명(조성구 책임, 정진용 책임, 유경화 과장, 이준석 대리, 이상원 선임)이 모여 개발한 안구 마우스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순히 안구 움직임에 따라 작동하는 마우스라고 하기 보다는, 특정 서비스를 별도의 앱을 통해 눈의 움직임으로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안구 입력 장치(eye input device)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즉, 눈을 매개로 하는 인터페이스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아이캔은 루게릭병을 비롯한 각종 근육 질환으로 오직 눈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이들이 쉽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장치와 프로그램을 마련해줌으로써, 말 그대로 눈을 통해 할 수 있는(eye can) 모든 경험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5만 원이 안되는 재료비로 공개된 매뉴얼에 따라 하드웨어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설치한다면 가능하다. 천만 원 이상으로 알려진 기존 안구마우스의 가격을 감안한다면 이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도, 반도체, TV도 아닌 아이캔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011년 5월, 조성구 책임과 정진용 책임은 근육 무기력증에 걸린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위해 안구 인식 디바이스 아이라이터(EyeWriter)를 개발하고 그가 다시 예술 활동을 가능케 한 믹 애블링(Mick Ebeling)의 테드(TED)영상을 접했다. 이들은 이로부터 전신마비 환자들도 눈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컴퓨터 이용이 가능한 도구를 만들자는 영감을 얻었고 이에 팀이 꾸려져 작업이 시작되었다. 2011년 여름부터는 본격적으로 업무 외 시간에 장치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진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장애인개발원 및 경기도 재활공학서비스연구센터 등의 조직과 연결되어 실제 장비를 파악하고 환자와 실험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위한 안구 인식 디바이스 EyeWriter] 이미지 출처: eyewriter.org
2011년 가을,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의 재능과 삼성전자의 기업 역량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창의개발연구소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 아이캔은 이 프로젝트의 1호 과제로 선정되었고, 팀은 원래 업무 대신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11월부터 공식적으로 꾸려진 이 팀은 이후 2012년 3월 말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로 현재 웹사이트에 공개된 아이캔의 매뉴얼과 소스코드를 완전히 오픈하게 된다. 공개된 아이캔의 제작과 활용법은 누구나 비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삼성전자는 현재 한국장애인개발원과 MOU를 맺고 “eye Can Change the World”라는 보급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창의개발연구소 제도는 2호 과제로 시각장애인용 자전거 “iRider”를 진행하였으며 현재는 이 제도의 운영 경험으로부터 C-Lab(창의개발센터)를 전담으로 운영하는 팀이 정식 조직으로 생겼다고 한다.
[eyeCan을 테스트하고 있는 팀 멤버들] 이미지 출처: 삼성전자 블로그
eyeCan의 시사점
여태까지는 아이캔 프로젝트의 탄생과 발달, 그리고 결과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의 소개였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처음 공유되고, 팀원들이 모이고, 실제 테스트를 거친 뒤, 본격적인 개발 전담팀이 꾸려지고,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마무리 된, 그리고 그 이후를 포함하는 이들의 긴 여정에는 사회적기업가가 아닌 조직의 구성원들이 의미 있는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데 우리가 기억해둘 만한 좋은 시사점이 곳곳에 숨어있다. 또 이 시사점들은 조직의 구성원들인 개인을 위한 시사점과 조직을 위한 것으로 다시 나누어볼 수 있는데, 본 글에서는 시사점만 제시하고 Impact Business Review 5월호에 실린 [Insight+ 누구나 사회적기업가가 될 필요는 없다: 사내 기업가 정신, 그리고 삼성 안구마우스 eyeCan] 기사에서 아이캔의 스토리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1. Spread your word, Leverage the community
2. Find the right members for your team
3. Be proactive, Stay persistent
4. Foster a culture in your organization
5. Recognize and reward good practices
[TEDxSamsung, 2012 TED Active에 참여한 정진용 책임]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 http://blog.tedactive.com/
조직 내외부에 대한 아이캔의 임팩트
아이캔의 경우, 직원들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가 이들의 열정으로 꾸준히 발전하는 가운데 조직의 현명한 개입을 통한 지원과 보상을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던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캔의 성공이 단순히 누구나 만들고 활용할 수 있는 디바이스의 개발 매뉴얼을 완성하고 공개했다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해당 조직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아이캔은 아이라이더라는 2호 과제의 연결로, 또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례의 탄생 가능성을 지원하는 전문 조직의 설립이라는 결과를 이루어냈다. 또 프로젝트 종료 이후 현업으로 다시 돌아간 팀원들은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임팩트를 창출하는 창의적인 역량과 새로운 문제 해결의 시각을 업무에 더하고 또 주변의 동료와 나눔으로써 보다 많은 ‘임팩트 사내 기업가’의 씨앗을 심을 것이다.
아이캔의 임팩트는 조직의 내부 테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중증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이캔 보급 사업을 통해 해당 제품의 수혜자에게 그 임팩트를 전달하고 있으며, 아이캔 팀은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도 디자인 다이브(Design Dive) 워크샵을 통해 아이캔 매뉴얼의 체계화 및 디자인 개선 작업을 진행하여 누구나 아이캔을 보다 쉽게 제작하고 보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유타 주립 대학교의 한국 학생들은 현지 병원과 협력하여 아이캔을 활용한 의료 서비스 보급을 준비 중이며, 한국산업기술대학교의 한 학생은 안구 움직임을 읽어 전동 휠체어를 작동할 수 있는 안구 추적 휠체어 인터페이스(eye-tracking wheelchair interface)인 아이무브(eye-Move)를 졸업 작품으로 제작하는 등 아이캔의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를 접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새로운 임팩트가 지금도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
누구나 사회적기업가가 될 필요는 없다
사회적 가치와 임팩트를 창출하고자 하는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이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진 개인들은 어떻게 목표하는 바를 성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품는 반면, 조직은 이들의 새로운 욕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조직의 역량 강화와 임팩트 창출에 활용할지에 대한 숙제를 갖게 되었다. 모두가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거나 NGO에 가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조직이 기대하는 직무를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점점 더 원하고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조직과 개인은 사내 기업가정신을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양측의 니즈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동시에 여러 적극적인 지원과 시도를 통해 창출된 임팩트와 사회적 가치를 보다 널리 퍼뜨릴 수 있다. 특히나 기업은 스케일과 자원의 가용 능력에 있어 또 조직의 다양한 레벨에서 혁신적 임팩트 창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사내 기업가정신은 조직의 내부 자원 활용을 통해 창의와 혁신을 탐구하는 노력이다. 더 스마트하고 멋진 임팩트 비즈니스는 안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작성 및 인터뷰: ISQ 박혜린
Impact Business Review 는 임팩트 비즈니스 섹터 리더들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한 국내 최초의 경영 레퍼런스 매거진입니다. 2013년 5월호는 "Cause Marketing"이라는 표제와 함께 임팩트 비즈니스 섹터의 다양한 지식과 인사이트를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