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임팩트를 지키는 방식에 대하여
기업을 통해 우리를 다시 발견하다
올해 우리는 포트폴리오 기업들을 차분히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각 기업의 현재를 정리하는 작업에서 출발했지만, 자연스럽게 한 기업의 시작과 선택,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투심 보고서에는 담기지 않았던 ‘진짜 이야기들’을 마주했다. 창업자가 어떤 순간에 흔들렸는지, 조직 안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어떤 선택이 성장을 만들었고 어떤 판단이 정체로 이어졌는지—개별 기업의 생사고락은 숫자보다 훨씬 복합적인 이야기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궤적들을 겹쳐보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패턴 또한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일해왔는지, 임팩트 액셀러레이터로서 우리의 역할은 어디에서 작동했고 어디에서 한계를 드러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기업의 기록을 정리하는 일은 곧 우리의 철학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점검하고, 그 철학을 다시 선명하게 재정립하는 과정이었다. 이 글은 그 질문과 사유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초기 임팩트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어려움과 그 곁에 서 있는 우리의 태도를 생태계와 함께 묻고자 하는 시도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기업에 투자해왔나?
✔ 필요조건: 산업·시장·사람
좋은 스타트업의 조건은 분명하다. 산업과 시장의 가능성, 비즈니스 모델의 타당성과 혁신성, 그리고 대표자의 자질.이는 모든 투자자가 기업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기본적인 관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기업은 많다. 훌륭한 기술을 가진 팀도 많고, 의미 있는 문제를 풀고자 하는 창업자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해야만 하는 기업인지, 우리의 자원과 역량이 그 기업의 성장에 결정적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 충분조건 (1): 갈등관계 해결 역량
우리가 주목하는 첫 번째 충분조건은 기업이 풀고자 하는 갈등관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해결할 고유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지다. 사회적 가치 창출은 필연적으로 비용을 수반한다. 수익 대비 비용이 크거나 경제적 가치가 작아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영역, 바로 그곳이 갈등관계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임팩트 스타트업이 마주하는 전형적인 갈등의 유형 예시 몇 가지
친환경 전환 vs 고비용: 친환경 소재나 공정은 높은 원가와 기술적 난제를 동반하며, 이는 곧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접근성 vs 고비용/편견: 정신건강 서비스를 대중화하려 해도 높은 치료비용과 대면 치료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장벽이 된다. 아동 멘탈 진단은 비용과 전문가 부족으로 학교 상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금융포용 vs 신용리스크: 금융 소외계층을 지원하려 해도 담보 부족과 소득 변동으로 상환 위험이 급증한다.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의 연체율 증가와 취약계층 대출의 장기 부실화는 이 갈등의 전형적인 결과다.
임팩트 스타트업은 이 갈등관계를 최소화하거나 일치시키는 고유한 해결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기업의 차별화 지점이다.
그 메커니즘은 기술력일 수도, 시장 선점 속도일 수도, 때로는 창업자 고유 자산ㅡ창업 이전의 배경, 네트워크, 내적 역량ㅡ일 수도 있다.
세상엔 완전히 새로운 문제도, 완전히 새로운 솔루션도 없다. 같은 문제를 다루더라도 반복되는 실패를 돌파할 수 있는 독점적 진입장벽(Moat)을 가진 기업은 드물다. 우리는 그 드문 기업을 발굴하고 함께해왔다. 단순히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구조적 갈등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설계한 기업 말이다.
✔ 충분조건 (2): 임팩트스퀘어가 기여할 수 있는가
두 번째 조건은 우리가 개입함으로써 기업이 보유한 갈등관계 해결 매커니즘을 더 정교하게 만들거나, 그 범위를 확장하거나, 작동을 가속화할 수 있는가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우리는 투자를 결정한다.
우리의 자원은 단순한 투자금에 그치지 않는다. 경영 관리와 사업 전략에 대한 자문, 시장과 생태계의 연결, 문제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역량 등 기업이 마주한 다양한 병목구간을 함께 풀어가며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코끼리공장과 딥비전스는 이러한 충분조건들이 실제로 작동한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는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갈등 해결 메커니즘의 공동 설계자로 기능했다. 그들이 가진 고유한 해법이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전략을 정교화하고, 막힌 지점을 뚫어주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포트폴리오 사례]
“미션의 스케일을 확장한 코끼리공장”
코끼리공장은 창업자의 강력한 미션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장난감 선순환의 가치를 증명해 왔다. 우리는 이 진정성 있는 미션이 더 큰 사회적·경제적 임팩트로 이어질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을 함께 고민했다. 특히 롯데케미칼 '프로젝트 루프(Project LOOP)'와의 연계 시너지를 설계하며, 기존 모델을 넘어 ‘장난감 폐기물 분리 및 플라스틱 재생 사업’으로의 고도화를 제안했다. 이는 코끼리공장이 단순한 수리를 넘어 자원 순환 시스템의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미션이 지속 가능한 구조 안에서 작동하도록 재설계한 협력의 결과를 이루었다.
“기술의 시장 가치를 입증한 딥비전스”
딥비전스는 독보적인 영상 인식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 기술이 가장 날카롭게 기능할 수 있는 최적의 시장을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는 전략적 코칭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술의 독점적 가치가 발현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냈다. 그 결과, 초기 미세먼지 측정 기술은 일본 와이너리의 병충해 예찰 모델로 연결되며 기술의 범용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입증해냈다. 이는 단순히 수익 모델을 발굴한 것을 넘어, 혁신 기술이 임팩트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주류 시장과 결합할 수 있는지 보여준 성공적인 설계 사례이다.
물론, 정체와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철학은 성공적인 전환의 순간에서만 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업이 정체하거나 흔들리는 순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할 수 없었는지가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기업에 투자해왔는가’만큼이나, ‘어떤 어려움 앞에서 임팩트를 지키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음에 정리하는 장면들은 특정 기업의 실패를 설명하기보다, 포트폴리오를 따라가며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된 구조적 어려움에 대한 기록이다.
스타트업이 어려워지는 것은 흔한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우리가 선택하고 함께해 온 기업의 위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다수 기업의 초기 투자 이후 사업 전개 과정을 지켜보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려움의 원인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다만 이는 임팩트스퀘어가 투자한 기업에 대한 관찰 및 내부 분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제한적인 사례임을 전제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돌아보면 정체와 실패의 상당수는 기술이나 솔루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구조,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드러나는 균열에 가까웠다.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된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 숫자가 의사결정을 압박하던 순간들
가장 자주 등장했던 장면 중 하나는, 사업의 방향이 아니라 숫자 앞에서의 불안이었다. 매출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 흐름을 예측하지 못하거나, 비용 구조를 감각에 의존한 채 이해하다 보니 결정적인 타이밍마다 선택을 미루는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자원이 제한된 초기 기업에게 이 문제는 여실히 드러나곤 하는데, 임팩트 스타트업에게는 특히 더 치명적으로 작동했다. 임팩트 중심 모델은 검증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아, 현금 흐름의 작은 오차가 곧 미션의 중단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를 충분히 경험해 보지 못한 대표자에게 자금 운용의 부담은 단순한 관리 이슈를 넘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다가오곤 했다.
✔ 한 사람의 흔들림이 조직 전체로 번져가던 구조
창업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대표자의 컨디션과 판단 리듬이 곧 조직 전체의 리듬이 된다. 대표가 흔들릴 때, 조직은 그보다 더 크게 흔들렸고, 개인의 위기가 조직의 위기로 전이되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이어졌다. 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심리적 부담 속에서 리더의 판단 리소스가 분산되고, 그 결과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성장의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친 사례들도 있었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개인의 역량이나 의지라기보다,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 그 자체에 가까웠다.
✔ 외부의 바람이 방향을 결정하던 순간들
정부 지원금, 대기업 파트너, 특정 채널에 대한 기대는 초기 성장의 중요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외부 환경의 변화는 기업의 방향을 한순간에 꺾어 놓는 변수로 작용 했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처럼 보였던 판단이,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성장의 리듬을 놓치게 만든 계기였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기업은 정부 지원금 지급 지연으로 약 9개월간 개발이 중단되었고, 또 다른 기업은 정책 자금 축소로 결정적인 성장 시점을 놓치기도 했다. 외부 자원이 ‘기회’에서 ‘전제 조건’이 되는 순간, 기업의 선택지는 오히려 빠르게 좁아졌다.
🖊️ 회고의 질문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질문을 남겼다. 이는 개별 기업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임팩트스퀘어라는 조직이 성장하며 겪는 통증이자 쳬계화의 단서에 가깝다.
우리는 실패의 ‘초기 징후’를 얼마나 빠르게 감지하고 있는가.
감지 이후, 우리의 개입은 어디까지가 적절한가.
대표자의 개인적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관찰하고,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는가.
경영 역량의 부족을 개인의 문제로 남기지 않고 구조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임팩트와 생존이 충돌하는 순간,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안내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결국 함께 고군분투하며 임팩트를 지켜내려는 것임을
이 과정을 거치며 필자는 몇 가지를 분명히 확인했다. 우리는 갈등 관계를 해결할 고유한 메커니즘을 가진 기업을 찾고, 그 메커니즘이 시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함께 설계해 왔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마다 ‘더 빠른 성장’보다 문제가 중단되지 않도록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선택을 반복해 왔으며, 이 선택의 축적이 지금의 임팩트스퀘어를 만들었다.
이러한 선택은 기업의 기록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성과만을 나열한 보고서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 기준을 붙잡았고 어떤 순간에는 개입을 자제했는지가 기업의 궤적 속에서 드러났다. 그 기록을 따라가며 우리는, 임팩트스퀘어가 스타트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조직이라기보다 문제 해결의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기준을 지켜온 조직에 가깝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정체와 실패의 순간을 지나며 분명해진 사실도 있다. 임팩트는 계획한 일정대로 완성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시간은 흔들림과 지연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성과가 잘 보이는 길을 안내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방향을 잃기 쉬운 순간에도, 왜 이 문제를 시작했는지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도록 곁에 서는 일에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게 된 것은 완벽함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 긴 시간을 함께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었다. 임팩트는 단기간의 성취가 아니라, 긴 호흡의 선택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팩트스퀘어는 생존과 임팩트 사이에서 판단이 갈리는 순간, 방향을 가르치는 나침반이기보다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북극성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기업의 형태는 바뀌거나 사라질 수 있어도, 임팩트와 미션만큼은 계속될 수 있도록. 우리는 그 방향을 끝까지 잃지 않기 위해, 지금도 어떤 액셀러레이터여야 하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있다.
작성 : 임팩트스퀘어 박윤세, 조예신 매니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