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벌이는 스타트업의 감각수용체 :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말엔 종종 과감함이나 혁신 같은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 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조직 안팎의 작은 자극 하나가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핵심은 그 신호를 얼마나 예민하게 감지하고, 실행까지 옮길 수 있는 감각을 갖추고 있느냐다. 이 아티클은 ‘지금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가’보다, ‘왜 우리는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편집자글>
변화에 반응하는 감각, 그것이 모든 시작입니다
스타트업이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변화의 조짐을 포착하고, 기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음 단계를 그려낼 수 있는 예민한 감각에서 출발한다.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는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투자 한파와 정책 변화, 산업 구조 재편이 연쇄적으로 밀어닥치며 많은 팀들이 예전과 같은 성장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어떤 조직은 위축되는 반면, 어떤 조직은 오히려 더 대담하게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인다.
바로 그 차이가 궁금하다. 스타트업은 무엇을 신호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게 될까? 그 출발점이 되는 자극은 어디서 오며, 조직은 그것을 어떻게 감지하고 해석해서 실행까지 연결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스타트업이 그런 감각 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그 감각이 현재도 예리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진단해보고자 한다.
무엇이 스타트업을 움직이게 만드는가: 네 가지 자극의 유형
1. 환경 변화 자극 : 정책, 기술, 시장 등 외부 환경의 변화가 조직에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는 자극
환경은 멈추지 않고 변화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정책과 제도가 개편되며, 시장 구조가 재편되는 가운데 스타트업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환경 산업 분야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영향력이 더욱 직접적이다. 시장 수요의 상당 부분이 정부 규제에 의해 결정되며, 규제 도입의 속도와 강도가 곧 사업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환경에서는 이러한 규제 기반 수요가 본격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생존 고민을 안고 있는 많은 임팩트 스타트업들이 더 빠르게 시장이 열리고 수요가 구체화되는 유럽이나 북미 등 해외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단순히 규제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글로벌 규제 흐름을 새로운 기회의 신호로 읽어내고, 인증 취득, 현지 파트너십 구축, 시장 진입 전략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며 성장의 돌파구를 만들어가고 있다.
2. 이해관계자 기반 자극 : 고객, 파트너, 투자자 등 외부 이해관계자의 피드백이나 요구에서 비롯된 자극
스타트업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고객, 파트너, 투자자 등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성장하며, 때로는 그들의 작은 제안 하나, 반복되는 요청이 조직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취약계층 맞춤형 문화예술 키트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나더데이는 서비스 지역을 전국으로 확장하면서 직접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의 물리적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기관 고객으로부터 "이 키트를 활용해 교육을 진행해줄 강사를 연결해줄 수 있느냐"라는 요청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추가 서비스 요청으로 여겼던 이 목소리들을 집중하여 살펴보니 점차 패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나더데이는 이러한 잠재 수요를 단순히 개별 요청으로 처리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비즈니스 기회로 인식하게 되었고, 결국 문화예술 콘텐츠부터 강사까지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위클즈'를 신규로 런칭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는 단순한 운영상의 이슈나 고객 서비스 개선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고객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해관계자 기반 자극을 성장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역량이다.
3. 내부 기획 자극 : 조직 내부에서 기회나 비전을 탐색하며 자발적으로 시도하는 기획성 자극
변화의 시작점이 반드시 외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내부의 문제 인식, 창업자의 비전, 구성원들의 창의적 상상력이 '한 번 시도해보자'는 실험 정신으로 발현되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립준비청년의 고용을 지원해온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는 실내외 조경, 반려식물 구독서비스 등을 통해 꾸준히 일자리를 창출해왔다. 조경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된 후에도 대표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년들에게 다양한 일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지속해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자립준비청년 지원에 관심을 갖고 있던 코리아세븐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두 조직은 '청년 그린 편의점' 사업을 공동 기획하게 되었다. 브라더스키퍼의 교육·멘토링 역량과 코리아세븐의 편의점 운영 노하우가 결합되어, 자립준비청년이 점장처럼 매장을 직접 운영하며 실무 역량을 기를 수 있는 혁신적 환경이 탄생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한 일자리 제공을 넘어 경영 감각과 창업에 대한 실질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더 나아가 브라더스키퍼는 다양한 프랜차이즈 및 지역 자원과의 협업을 확대해 더 많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브라더스키퍼의 사례는 외부의 자극을 기다리지 않고 조직 내부의 비전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자발적 기획이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조직이 스스로 품고 있는 질문과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 위기/생존 자극 : 매출 하락, 자금 부족, 성장 정체 등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극
스타트업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게 되는 순간은 바로 생존을 위협받는 시점이다. 매출 부진, 자금 소진, 고객 이탈 같은 직접적인 위기는 조직을 현실적으로 각성시키고, 전면적인 전략 전환을 요구한다. 이때의 변화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움직임이다.
바이루트는 원래 약용작물의 이력 추적 시스템과 거래 플랫폼을 개발·운영하는 스타트업이었다. 약효 중심으로 품질이 평가되어야 하는 작물이 외형 중심으로 유통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데이터 기반 품질 관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일부 고객으로부터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기대한 만큼의 매출을 확보하지 못했고, 자금 소진 속도는 빨라지며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위기 속에서 바이루트는 과감한 판단을 내린다.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며 소규모 수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시장성이 크고 미래 산업 트렌드와 맞닿은 작물에 집중하자는 방향으로 전략을 피봇한 것이다. 그 중심에 있던 작물이 바로 워터렌틸(개구리밥)이었다.
워터렌틸은 식물성 대체 단백질로서의 가능성을 갖춘 차세대 미래 식량으로, 염증 완화, 다이어트 효과 등 기능성까지 겸비하고 있어 헬스케어와 푸드테크 시장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바이루트는 이 작물에 집중하며, 생산·유통·브랜드화까지 연결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사례는 위기라는 자극이 얼마나 빠르고 깊은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은 단기 대응에 머무르지 않고 조직의 비전과 역량을 새롭게 정렬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위기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때로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고, 가장 과감한 시도를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감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조직의 감각수용체 시스템
조직이 새로운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것은 단지 몇몇 구성원의 직감이나 용기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 배후에는 자극을 정확히 감지하고, 의미 있게 해석하며, 구체적인 실행으로 연결할 수 있는 조직의 체계적인 감각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변화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정보 수집 채널이 필요하다. 기술과 정책, 시장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체계, 고객이나 파트너와의 다양한 접점에서 나오는 생생한 목소리를 수집하는 구조, 그리고 구성원들이 현장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내부 커뮤니케이션 채널. 이 모든 것이 조직 감각의 출발점이다.
둘째, 감지된 자극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결정적이다. '이건 그냥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며 흘려보낼 수도 있고, '이건 중요한 변화의 신호다'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려면 구성원들의 제안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조직문화, 자발적인 기획이 현실적인 검토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실현 가능성을 갖도록 하는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조직 내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자극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실행할 수 있는 자율성과 구조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빠르게 실험할 수 있는 자원 배분,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관용적 태도, 그리고 작은 것부터라도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이 핵심이다. 아무리 탁월한 아이디어라도 실행되지 않는다면 조직의 변화는 정체된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어떤 자극에 반응하고 있나요?
이 글은 '지금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느냐'는 단순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다.
자극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발생한다. 하지만 감각이 둔화된 조직은 그 중요한 신호들을 놓치고, 결국 성장과 혁신의 기회도 함께 놓치게 된다. 반면에 미세한 변화의 조짐까지 읽어내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조직은 어떤 자극에 반응하고 있나? 그 자극은 어디서 감지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어, 어느 정도까지 실행으로 이어지고 있나?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 체계는 여전히 예리하게 작동하고 있나?
작성자 : 임팩트스퀘어 최나은 매니저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