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속이 가치인 기업에 투자하는 방법 : ‘매출기반금융(RBF)’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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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지역 활성화’라는 중대한 과제를 앞두고 있다. 이때, 지역을 활성화 하기 위한 방법론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지역 내 인재를 키우거나, 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더욱 많이 만들거나, 혹은 이 모든 것들을 위해 교육 및 인프라, 사업에 투자를 하는 것 등이다.
교육 및 인프라를 확충하고 개선하기 위한 보조금, 정부 지원은 꾸준히 있어 왔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로컬의 ‘투자’는 꽤나 복잡한 사정을 가지고 있다. 투자는 “언젠가 이 지분을 처분한다”는 것을 계약의 전제로 하는데, 로컬 창업가가 다루는 사회문제는 대체로 비즈니스가 ‘해당 지역’에서 ‘존속’되어야 가치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로컬 창업가는 언젠가 지분을 처분해 수익을 달성하기 보다는 이 비즈니스가 존속하여 지역의 사회문제를 끊임없이 풀어나가는 게 제 1의 목적이지만, 이는 투자의 문법과 맞지 않는다. 두 가지 한계 때문이다.
하나는 처분을 전제하지 않는 회사는 투자 검토 대상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고, 검토 가능성이 있는 회사는 좀 더 처분 가능한 모습으로 사업을 조정하게끔 압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투자자 쪽도 편하지 않다. 투자로 얻은 지분의 가치는 처분되는 날에야 정해지므로 초기 투자자는 5-10년의 시차를 견뎌야 한다. 주요 액셀러레이터의 영업수익에서 보육 매출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목적이 분명한 초기 투자자일수록 사정이 답답하다. 사회적 가치 관점에서 훌륭한 회사가 있더라도, 투자 검토에 올릴 회수 구조가 없어 보조금이나 프로그램으로만 관계를 맺어왔다.
초기 소셜벤처, 특히나 로컬에 투자가 닿지 않는 이유
소셜벤처가 만드는 가치의 상당 부분은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다. 취약계층을 고용해 줄인 사회적 비용도, 지역에서 돌린 조달도 매출이나 이익으로 쉽게 환산되지 않는다. 평가받지 못하는 가치가 실재하는 만큼 저평가의 영역이 존재하고, 이는 투자 심의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매력도를 저감한다.
하지만 투자의 어쩔 수 없는 습성도 고려해야 한다. 벤처투자 펀드가 스무 건의 투자를 집행했다고 치면, 주요 투자 수익은 한두 건이 투자금의 수십 배로 돌아와 만드는 멱법칙을 기초로 한다. 나머지 열여덟 건의 손실을 그 한두 건이 덮는 구조다. 그러니 한두 건의 유니콘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만이 투자의 필터를 통과할 수 있다. 즉, 안정적으로 존속하는 회사는 그 한두 건이 될 것이라는 기대조차 받지 못 하는 것이다. 임팩트 투자도 대부분 벤처투자의 구조를 빌려 쓴다. 그래서 이 기업들이 소외되는 것은 값이 낮게 매겨져서만이 아니라 애초에 모델이 맞지 않아서다. 가치를 더 정교하게 측정해도 이 축은 풀리지 않는다.
로컬 기업에서는 이 문제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장 범위가 지역으로 한정돼 스케일 상한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확장을 전제하지 않으면 검토를 시작하기 어려우니, 이들은 투자에서 탈락하거나 탈락하지 않으려 벤처의 성장 문법을 택한다. 그 과정에서 임팩트 기업에는 사회적 가치의 드리프트가, 로컬 기업에는 지역 기여의 이탈이 따라오기도 한다. 지역에 남아 있으려던 회사가 투자를 받기 위해 지역을 벗어나는 계획을 세우는 셈이다.
부족한 것은 이들의 현금흐름에 맞는 회수 방식이다. 확장하지 않아도 돈이 돌아오는 구조가 있다면 확장하지 않는 회사도 검토를 시작할 수 있다. 회수의 형태가 바뀌면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의 범위도 바뀐다.
분명 Fit이 더 잘 맞는 투자 방법론이 있다는 믿음 : 매출기반금융(RBF·Revenue-Based Financing)
우리는 기존의 벤처투자 구조가 품을 수 없으나 ‘존속’에 방점을 둘 수 있는 투자 방법론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여러 모델을 검토했다. 그 결과 도출한 것이 매출기반금융(RBF·Revenue-Based Financing)이다.
매출기반금융은 회수의 원천을 기업가치에서 매출로 옮긴다. 지분 희석 없이 자금을 공급받고 일정 비율의 매출이 약정한 총지급액에 이를 때까지 투자금을 상환하는 구조다. 쉽게 말하면 기업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회수 압박을 받지 않으면서도, 실제 매출의 일정 부분만 사전 협의한 비율에 맞춰 지급하면 되니 매출과 관계없는 원리금 상환에 허덕일 필요도 없다. 이자율도, 만기일도, 원리금 상환표도 없다. 속력보단 방향을 보고, 존속하며 지속 가능하게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가 명확하다면 회수의 원천을 지분 매각이 아닌 매출의 일부분으로 받으면서 가치 창출의 과정을 온전히 함께 짊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사전 협의한 총지급액에 도달하면 이 금융은 역할을 다 하고 사라진다.
국내에서는 이 구조를 두고 ’매출 파이낸싱’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다만 국내에서 해당 표현은 대부분 선정산을 가리킨다. 선정산은 플랫폼이나 발주처가 지급하기로 이미 확정한 정산금을 정산일보다 먼저 당겨 받는 거래다. 금융권에서 쓰는 ’장래매출채권 유동화’도 실무에서는 담보를 잡고 빌려주는 대출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해 보이는 상품을 한자리에 놓으면 차이가 드러난다.
앞의 셋은 이미 확정된 돈을 대상으로 하고, 사업이 잘못됐을 때의 손실은 기술보증기금을 제외하면 대체로 자금을 끌어다 쓴 기업이 진다. RBF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장래 매출에 건다. 사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지급 시점이 뒤로 밀리고, 계약에서 정한 최장기간까지 회수하지 못한 잔액은 투자자에게 남는다. 비교의 핵심은 표면금리보다 대상 매출과 기간, 하방 부담의 주체에 있다.
투자자 쪽에는 이점이 하나 더 있다. 투자한 다음 달부터 배분금이 들어오고 3-4년 안에 회수가 끝나므로, 같은 자금으로 다음 투자를 도는 속도가 지분투자보다 빠르다. 매출이 커질수록 총지급액에 빨리 닿아 회전은 더 빨라진다. 액셀러레이팅이 회수 구조에 직접 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가치를 무한히 키우는 것보다 매출을 앞당기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에 사업 초기,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매출을 일으키는 것에 집중 지원하기 때문이다.
대신 개별 계약의 수익률이 곧 펀드의 수익률은 아니다. 상방이 정해진 배수로 막혀 있어 한 건의 손실을 다른 건으로 메울 수 없고 부실률과 회수율이 성과를 그대로 깎는다. RBF는 적합 기업 선별과 부실 시 회수 구조, 회수기간 관리를 얼마나 체계적이며 정확하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있다.
로컬과 RBF가 만났을 때
임팩트스퀘어는 RBF를 국내에 도입할 수 있는가를 두고 여러가지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으며, 국내 소셜벤처 중 RBF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예시 모델을 정리해보았다.
이런 기업이 우선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분을 넘기지 않고 자금을 받아 물량과 채널을 늘리고, 늘어난 매출에서 약정한 몫을 지급하며, 그동안 고용과 지역 조달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 정도 버는 회사가 5,000만 원을 왜 밖에서 받느냐는 물음이 따라올 수 있지만, 답은 지출과 회수의 시차에 있다. 법인세와 기존 정책융자 원리금을 빼고 남는 현금은 운전자본과 비수기 완충으로 대부분 묶여 있어 초도 물량을 한 번에 감당할 여유가 없다. 자체 현금으로 두세 분기에 나눠 할 일을 한 번에 하는 것이 이 자금의 쓸모다.
이 자금이 들어온 뒤의 경로를 그려보면 이렇다. 초도 물량을 감당한 시점부터 오픈마켓과 자사몰의 재고 회전이 빨라지고, 급식 계약처럼 이미 확정된 채널의 이행 여력도 함께 늘어난다. 매출이 늘어난 만큼 약정한 비율대로 지급하면 되므로, 이 회사는 확장의 속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무리한 배수 성장을 증명할 필요도, 지분을 넘겨 외부의 성장 압력을 떠안을 필요도 없다. 총지급액에 도달하는 시점에 이 자금은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고, 그 사이 고용 13명과 지역 조달 구조는 그대로 유지된다. 즉 이 회사가 얻는 것은 한 번의 운전자금이 아니라, 지역에 남아 있으면서도 자금 압박에 사업의 방향을 왜곡당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환이 끝난 이후다. 지분 희석 없이 매출 규모를 키운 이력은 이 회사에 신용보증부 대출이나 정책융자와는 다른 종류의 실적을 남긴다 — “이 정도 매출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라는 근거다. 이 실적은 두 번째 RBF 라운드의 문턱을 낮추고, 나아가 다른 임팩트 투자자나 지자체 매칭 자금이 결합하는 후속 조달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지분투자 검토에서 반복 탈락하던 회사가, 확장을 전제하지 않고도 반복 조달이 가능한 회사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는 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존속을 전제로도 자금이 도는 모델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근거가 되어 비슷한 처지의 로컬 소셜벤처들이 검토대에 오를 수 있는 선례로 쌓인다.
물론 시중 투자, 융자로는 상상할 수 없이 낮은 대가를 요구하는 자본도 있다. 신용보증부 대출과 특례보증이 있고, 확정된 채권을 앞당겨 주는 팩토링과 선정산이 있다. 문제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어긋난다는 데 있다. 신용보증부 대출 및 특례보증은 전체 한도가 정해져 있어 한도를 소진하면 이용할 수 없고, 팩토링과 선정산은 확정된 채권만 앞당길 뿐이어서 초도 물량처럼 매출이 생기기 전에 나가야 하는 자금 확보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 모든 고민의 시작, 존속이 가치인 ‘소셜벤처’가 속편히 ‘존속’할 수 있는 자본을 만들자
매출에 지급을 걸었다고 해서 투자자와 기업의 미션이 저절로 맞춰지지도 않는다. 기업은 지급 부담을 줄이려 저마진 서비스나 취약계층 대상 사업을 먼저 줄일 수 있고 매출을 계약 밖 경로로 옮길 유인도 생긴다. 이런 유인이 실제로 생긴다는 것은 해외 연구에서 이미 관찰됐다. 투자 전에 보호할 사회성과와 지역기여 지표를 정하고 허용하지 않을 축소 행위와 매출 경로 보고 의무, 이탈이 확인됐을 때의 시정 절차를 계약과 사후관리 기준에 넣어야 한다. 지급은 매출에 걸고, 임팩트 세이프가드는 지키지 말아야 할 선을 그어두는 가드레일로 둔다. 이는 RBF 적격성을 판단하는 조건이지, 사회성과보상사업처럼 성과에 지급을 연동하기 위한 정밀 측정과는 층위가 다르다.
벤처투자법 조문에는 아직 이 계약을 부를 이름이 없다. 계약의 성격은 경제적 실질로 판단한다. 붙인 이름은 근거가 되지 않는다. 투자로 인정되려면 원금이 보장되지 않아야 하고 사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손실이 자금을 댄 쪽에 남아야 한다. 담보와 대표이사 연대보증을 두지 않고 매출이 없으면 지급도 없다는 원칙을 계약에 남기는 이유가 여기 있다. 파일럿에 앞서 계약의 법적 성격과 회계·세무 처리, 미회수 잔액의 처리 방식을 하나씩 확인해 두어야 하는 까닭이다.
한계도 분명하다. 마진이 낮거나 매출 변동이 큰 기업에는 맞지 않는다. 후보가 되는 곳은 실제 영업 손익으로 이 자금의 상환을 견디는 회사다. 선례가 적어 표준 문언이 없으면 계약 한 건마다 법률 비용을 다시 치르고 해석도 다시 다퉈야 한다. 이것은 생태계 차원에서 풀 일이다.
“지분을 어떻게, 언제 팔 것인가” 대신 “사회에 꼭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잘 팔고 있는가”를 묻는 순간, 지금까지 투자 대상이 아니었던 기업들이 대상이 된다. RBF는 회수 상품을 하나 늘리는 데서 나아가, 존속 자체가 가치인 기업이 계속 존재할 길을 연다.
지금 할 일은 확산이 아니라 소수의 파일럿이다. 실효 조달비용과 감당 가능한 이익률 구간, 작은 티켓에서 투자·관리비용이 감당되는지, 계약의 법적 성격은 문서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실제 거래에서만 확인되고, 그 데이터를 생태계가 함께 쌓아야 다음 계약의 비용이 내려간다. 회수 방법이 하나뿐인 시장에서는 그 하나에 맞는 기업만 살아남는다.
글 : 임팩트스퀘어 조용민 투자팀 매니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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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2026.6.2), 「씨앗 뿌려도 수확은 막혀…딜레마 갇힌 AC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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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aKit(2022.7)·TechCrunch(2022.8.30, 2023.1.17)·BetaKit(2026.8), Clearco 감원·해외 철수·창업자 CEO 사임 및 재조달 보도
Silicon Republic(2022.11), 「Wayflyer lays off 70 in Dublin, 200 worldwide」
Uncapped 공식 블로그(2023.9), 「Uncapped removes RBF offering」 / Crunchbase News, 「Capchase, the ‘Affirm for B2B,’ secures $200M」
Lighter Capital(2023.8.29) $130M 신용한도 / GlobeNewswire(2026.2.18) Riverside Acceleration Capital Growth Lending Fund III $200M / ImpactAlpha(2026.4) Founders First Change Catalyst Fund II 1차 클로징 $12M
Silicon Republic(2022.9.6), 「What does Clearco's retraction mean for revenue-based financing?」
BetaKit, Clearco 자본재구성(기존 투자자 추가 출자 + 자산담보부 시설) 보도
RTÉ(2023.12.11), 「Irish tech 'unicorn' Wayflyer records €77.34m loss」(2022 회계연도) / 아이리시타임스(2024.11.26), 「Wayflyer sees losses narrow amid 'efficiency drive'」(2023 회계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