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로 세상을 움직이는 필란트로피스트, 제프 스콜
2013. 3. 7. 19:21
본 글은 Impact Business Review 2011 겨울호에 실린 [스토리로 세상을 움직이는 필란트로피스트, Jeff Skoll] 기사 전문을 IBR 편집부 동의 하에 실은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그리고 빌 게이츠. 누군가 이 세 사람의 교집합을 그렸을 때, 그 가운데에 가장 꼭 들어맞는 인물은 누구일까? 인터넷에 기반한 상거래라는 획기적인 유통 패러다임을 제시한 기업가이자, 다양한 영화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 제작자, Forbes가 발표하는 세계 부자 순위에서 십여년 동안 빠지지 않고 선정될 정도로 엄청난 자산을 가진 동시에 이를 아낌없이 내어주며 오늘날 가장 능력있는 자선가들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사람. 대다수는 한 가지도 이루기 어려운 성취들을 모두 이뤄낸 인물이자, 우리 나이로 이제 마흔 여덟에 불과한 젊은 리더기에 아직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더 많은 것을 시도하는 이. 그가 바로 ‘제프 스콜’(Jeff Skoll)이다.
작가를 꿈꾸던 캐나다의 어린 소년, 자선에 눈을 뜨다
제프 스콜은 1965년 토론토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가 특히 좋아하던 작가들은 “멋진 신세계”의 올더스 헉슬리와 “1984년"의 조지 오웰이었다. 주로 어둡고 공포스런 미래를 경고하는 이러한 책들을 읽으며 소년은 자원의 부족, 신무기 개발, 예측하지 못하는 질병 등과 같은 세상의 여러 흐름들이 궁극적으로 매우 파괴적이고 무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어린 시절부터 깨달았고 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꿈꾸었다. 또한 유태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그들 커뮤니티의 전통을 어린 아들에게 늘 강조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세상을 치유하다, 복원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표현 “tikkun olam”이라는 말은 제프 스콜이 10대에 들어서기도 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스콜의 성장환경은 오늘날 자선가로서의 그의 정체성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그가 대학에 가기 몇 년 전, 그의 아버지에게 찾아온 신장암일 것이다. 당시 암 진단을 받은 스콜의 아버지는 인생에서 하고싶은 일들을 하지 못했던 점이 너무나도 아쉽고 후회스럽다는 말을 아들에게 털어놓았고, 이는 아직 10대인 스콜에게 매우 큰 충격을 남긴다. 늘 항해를 꿈꾸던 스콜의 아버지는 이를 계기로 직접 경영하던 회사를 큰 돈을 받지 않고 동료에게 매각한 후, 바로 캐리비안으로 이주해 아내와 함께 배 위에서 8년을 살았다. 스콜의 아버지는 오늘날 암을 이겨내고 건강히 생존해있지만, 이에 대해 이에 대해 스콜은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고 당시의 후회를 접하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자선가 스콜은 없었을 것이라고 술회한다.
실리콘 밸리, 피에르 오미드야르, 그리고 e-bay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힌 가르침과 사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아버지의 투병은 스콜에게 일찍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는 실용주의적인 기업가답게 돈을 먼저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가운데 토론토 대학의 전자공학과에 입학한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7년 컴퓨터 임대 회사를 차렸으나, 사람들이 계속 컴퓨터를 훔쳐가는 바람에 사업은 성공과는 점점 멀어져갔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시스템 엔지니어링 컨설팅 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은 그나마 좀 나은 결과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지만, 제프 스콜은 전혀 성이 차지 않았고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보다 잘 깨닫기 위해 1993년 캐나다를 떠나 스탠포드의 MBA 과정에 입학한다.
1995년 스탠포드를 졸업하고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신문사 중 하나인 Knight-Ridder에 입사하여 인터넷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을 하던 제프 스콜은 실리콘 밸리의 지인들을 통해 피에르 오미드야르Pierre Omidyar를 소개받는다. 그는 스콜에게 온라인 경매 회사를 함께 차리자는 제안을 했으나, 스콜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것 같다며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이듬해 오미드야르가 다시 그에게 찾아와 그의 온라인 경매회사가 매달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서 그의 합류가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스콜은 이렇게 e-bay의 첫번째 종업원이자 대표가 되었고, 엄청나게 빠른 회사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전체 시스템 운영 총괄을 맡아 작은 스타트업을 오늘날 전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의 성공스토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벤처 기업가의 성공 스토리이다. 1998년 e-bay는 IPO를 거쳤고, 스콜은 말그대로 억만장자가 된다.
Ebay의 공동 창립자 피에르 오미드야르와 제프스콜의 모습 (출처: Businessinsider)
스콜은 갑자기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쓰는 것 이상의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몇 백만 달러를 들여 e-bay 재단을 세웠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1999년 그는 사재 3천 4백만 달러를 들여 스콜 재단(Skoll Foundation)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스콜은 e-bay의 일을 계속 하고 있었고, 따라서 재단을 통한 자선 활동은 파트타임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의 스콜 재단은 특정 사업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펀딩을 지원하는 대신, 케이스 별로 일시적 기금을 승인해주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Invest, Connect, Celebrate, 스콜 재단의 3원칙
스콜 재단을 막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제프 스콜은 스키를 타다 등을 다치는 사고를 당하는데, 이후 2000년도에는 회의실 책상에 누워서 일을 해야할 정도로 그 후유증이 심각했다. 결국 2001년 1월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e-bay에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재단 사업을 확장하는데 집중한다. 그는 제일 먼저 당시 산호세 어린이 발견 박물관의 설립자이자 대표였던 샐리 오스버그(Sally Osberg)를 재단 운영 총책임자로 고용하고, 그녀의 멘토인 존 가드너(John Gardener)를 만나러 갔다. 존 가드너는 1950년대에는 카네기 재단의 대표를 맡았으며, 60년대에는 린든 존슨 행정부의 의료/교육/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며 미국 사회복지 정책의 근간이 된 위대한 사회 이니셔티브(Great Society Initiative)를 이끌었던 존경받는 인물이다. 아직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재단이 보다 의미있고 성과를 내도록 방향을 잡고 싶었던 스콜에게 가드너는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들에게 투자하라(Bet on good people doing good things)”는 조언을 해주었고 이는 스콜 재단의 미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자신이 뛰어난 기업가였던 제프 스콜은 아직 사회적기업가정신이 생소했던 2000년대 초반, 사회적기업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금과 홍보 채널, 그리고 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라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재단의 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존 가드너의 충고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스콜 재단의 미션은 사회적기업가들과, 사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이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혁신가들에 대해 투자하고, 서로 연결해주며, 이들의 활동을 널리 알림으로써 큰 규모의 변화를 이끌어내는(drives large scale change by investing in, connecting and celebrating social entrepreneurs and the innovators who help them solve the world’s most pressing problems)것을 목표하고 있다. 투자(invest), 연결(connect), 기념(celebrate)이라는 단어로 미션에 성문화 되어있는 이 세 가지 원칙은 제프 스콜이 많은 인터뷰와 강연에서 강조하는 가치일뿐만 아니라 실제 재단의 주요 사업과 활동에 구현되어 있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원칙이 모두 드러나는 스콜 재단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으로 스콜 월드 포럼(Skoll World Forum)을 꼽을 수 있다. 스콜은 2003년 11월 약 8백만 달러를 기부하여 옥스포드 대학교의 사이드 비즈니스 스쿨에 사회적기업가정신 스콜 센터(Skoll Centre for Social Entrepreneurship)를 세웠는데, 이 센터는 재단과 협력하여 매년 봄에 스콜 월드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은 전세계의 사회적기업가, 투자자, 기업가, 정책 입안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사회적기업가정신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로, 이 곳에서 참석자들간의 연결이 일어나고, 그 해의 사회적기업가와 혁신가를 선정하여 스콜 어워드(Skoll Award)를 시상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널리 알리고 기념하며, 어워드를 수상한 조직은 3년에 걸쳐 최대 2백만 달러에 이르는 펀딩과 함께 여러 전략적인 조언, 즉 투자를 받게 된다.
스콜월드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는 제프스콜
이미지출처: Center for Health Market Innovations
스콜 어워드는 매년 전세계에서 약 300여건의 후보를 받고 그 중에서 4-6개 조직을 선정한다. 스콜과 오스버그는 직접 매우 까다로운 선정 절차를 개발했는데, 이는 단순히 후보 조직들이 어떤 활동을 얼마나 혁신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방법으로 실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뿐만 아니라 스콜 재단이 보유한 네트워크와 그들 고유의 지원 방식이 해당 조직과 어떻게 조화되고 그 임팩트가 가장 극대화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선정 절차는 매우 엄격하지만 스콜과 오스버그는 선정된 조직들이 재단의 지원을 받는데 필요한 절차는 오히려 간소화하였다. 불필요한 서류나 문서 작업을 최대한 배제하고, 기업가와 조직이 최대한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이를 운용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콜 재단의 특별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영 자문과 투자, 재단의 네트워크를 내어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전통적인 지원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콜 재단과 스콜 어워드를 수상한 사회적기업가 및 그 조직들이 지속적으로 임팩트를 창출하고 확장해갈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스토리텔링을 통한 독특한 홍보 전략이다. 앞서 언급되었듯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사회적기업가정신은 미국 주요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방송, 선댄스 인스티튜트와의 영화 제작, 소셜엣지(socialedge.org)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 포럼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 등을 통해 점차 알려질 수 있었으며 이는 모두 스콜 재단의 아낌없는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P2P 마이크로렌딩 웹플랫폼인 키바(Kiva)는 이들이 비즈니스를 시작한지 1년 정도 되었던 2006년 가을, 스콜 재단을 통해 미국 PBS 채널의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Frontline에 소개되었고, 방송 직후 마이크로렌딩을 제공하고자 마음먹은 수 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접속하며 사이트가 3일간 마비되는 소동을 겪었다. 이를 통해 널리 그들의 활동을 알리게 된 키바는 이듬해에는 오프라 윈프리 쇼와 빌 클린턴 대통령 책에 소개되고 2008년에는 스콜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매우 빠른 성장을 보이며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PBS채널의 KIVA소개 영상
영상출처: 유투브
2011년까지 스콜 재단은 사회적기업가, 관련 조직과 활동에만 약 3억 4천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집행하며 오늘날 사회적기업 섹터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는데 누구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이뿐만 아니라 10여 년의 사업을 통해 재단의 지원 전략은 보다 세밀해지고 정교해졌는데, 사회적기업가에 초점을 맞추던 재단 초기의 전략은 이제 기업과 정부와 같은 다양한 섹터의 플레이어들을 보다 아우를 수 있는 생태계 관점의 접근 방법을 취하며 보다 큰 임팩트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2009년까지 사회적기업가만 언급되어 있던 재단의 미션에 “사회적기업가를 돕는 혁신가”라는 문구가 추가된 사실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잘 만든 영화 한편이 세상을 구한다, 파티시펀트 미디어
스콜 재단의 활동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의 꿈인 이야기 창조자로서의 욕구를 채울 수 있었지만, 이는 제프 스콜에게 충분치 않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변화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는 스콜 재단이 한창 바빠지고 있을 무렵 또다른 대담한 행보를 보인다. 바로 영화 제작사를 설립한 것이다. 2004년 1월 파티시펀트 프로덕션(Participant Productions)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제작사는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를 목표, 즉 특정 이슈나 사회적 코즈에 대해 대중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의 영화, 다큐멘터리, 티비 프로그램, 책 등을 생산하고 배급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이 조직은 이듬해 오늘날의 파티시펀트 미디어(Participant Media)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영화 제작을 시작한다.
실리콘 밸리를 떠나 할리우드로 온 제프 스콜은 주변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이슈를 건드리는 미디어나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조직이나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이들이 없다면 그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백만장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억만장자가 된 다음 이곳에 와서 영화 산업에 뛰어드는 것"이란 농담을 던지며 그러한 비즈니스는 결코 돈을 벌지 못한다는 답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조금씩 다른 답들을 듣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의 많은 작가, 배우, 감독, 변호사,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신경쓰고 관심을 갖는 문제를 다루는 영화의 스토리를 보다 깊게 생각하고 애정을 갖는다고 고백했다. 이들이 주목하고 있던 문제는 기후 변화, 성평등, 에너지 문제 등 실로 다양했으며 이는 제프 스콜의 파티시펀트 미디어 사업에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제프 스콜은 이들이 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함으로써 이들의 심장과 영혼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탄생될 수 있음을, 그리고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은 이러한 작고 메시지 중심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적합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파티시펀트 미디어와 같은 사업은, 일반 영리 추구 조직의 계산법으로는 그 리스크를 부담할 수 없으며 영화를 통한 수익 창출에 그 목적이 있지도 않다. 이는 제프 스콜과 같은 자선가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이며, 이에 대해 그는 재단 활동을 통해 임팩트를 창출하는 사회적기업가 혹은 비영리 조직을 대상으로 재정 지원을 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이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수백만, 수천만 사람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반성의 기회와 행동에 대한 열정을 선사하는 것이 더 큰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파티시펀트 미디어는 사회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미션을 회사 설립 직후 이듬해부터 충실히 실천해나가기 시작한다. 2005년 10월부터 12월까지, 이 조직은 <굿나잇 앤 굿럭>, <시리아나>, <노스컨트리>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개봉했는데, 각각 언론의 정치적 자유, 중동 지역의 석유 패권, 여성 인권 등의 이슈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던 이 세 편의 영화는 2006년 1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1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굿나잇 앤 굿럭>에 출연한 조지 클루니에게 남우 조연상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본격적인 영화 제작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와 같은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파티시펀트 미디어는 할리우드에서 특별한 위치와 신뢰를 얻게된다.
영화 <굿나잇 앤 굿럭> 중 한장면
이미지 출처: Fanpix
하지만 파티시펀트 미디어의 특별한 점은 그들이 세상에 선보이는 영화가 사회적인 이슈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파티시펀트 미디어의 하부 조직이자 소셜 액션과 캠페인에 대한 정보를 전문적으로 전달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테이크파트TakePart와의 협업은 제프 스콜의 영화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더 큰 사회적 임팩트를 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각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파티시펀트 미디어는 테이크파트와 협력하여 소셜 아젠다와 캠페인, 액션 등을 기획하고, 관계된 정부 기관, 비영리 조직, 기업 등 여러 조직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함께 펼쳐나가고 있다. 이 개별 영화에 대한 온라인 채널은 테이크파트에 마련되는데, 이는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해당 이슈에 대한 토론에 참여시키거나, 액션 키트 보급, 상영회 개최, 교육 프로그램 및 지역 행사 개최 등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영화 개봉이 끝난 이후에도 이러한 관심과 활동이 지속되어 보다 많은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한다.
파티시펀트 미디어의 영화 선택 기준에 대해 제프 스콜은 크게 세 가지의 질문을 기준으로 삼는다. 좋은 이야기이며 매끄럽게 전달될 수 있는지, 당장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지 아니면 잠재적인지, 그리고 지금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활동이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바로 그 질문들이다. 잘 써진 각본에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영화들이 있어도 그 안에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내용이 깃들여있지 않다면 파티시펀트 미디어는 제작하지 않으며, 이렇게 거절한 제안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오히려 파티시펀트 미디어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영화가 사회에 미칠수 있는 영향력이 얼마만큼 되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상업적 실패가 분명히 예상되는 영화더라도, 해당 이슈에 대해 정말로 큰 변화를 만들만한 가치를 담는 이야기라면 제프 스콜과 파티시펀트 미디어는 오히려 이를 세상에 내놓고 그 영향력을 어떻게 잘 전달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노스 컨트리로, 직장 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지만 제작 당시 부시 행정부에서 한창 여성 폭력에 대한 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던 시기에 파티시펀트 미디어의 눈에 띄었다. 이들은 영화의 개봉 시기를 국회에서 관련 법안의 통과가 결정될 때쯤으로 맞추어, 실제 국회에서 영화 상영회를 가졌고, 수천명들의 지지자들과 함께 다양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2006년 1월 여성폭력금지법(Violence Against Women Act)이 성공적으로 재통과 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06년 5월 파티시펀트 미디어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영화일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해 정치, 경제, 문화적 관심을 일깨운 영화인 <불편한 진실>을 개봉한다. 그리고 <불편한 진실>에 이어 이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2011년 미국 최고 흥행작 중 하나였던 <헬프> 또한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많은 사회적 담론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돈을 벌 방법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컨텐츠에 대한 강한 책임감, 그리고 더 멋진 세상에 대한 신념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수익 창출을 하는 것이 최선의 목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티시펀트 미디어는 이제 스스로 지속가능한 글로벌 미디어 기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영화를 넘어 티비, 출판, 음악 등 모든 종류의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파티시펀트 미디어가 지금까지 제작한 영화들
이미지 출처: Takepart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스콜 글로벌 위험 펀드
파티시펀트 미디어의 순항을 뒤로 하고, 제프 스콜은 또다른 길을 개척한다. 바로 스콜 글로벌 위험 펀드(Skoll Global Threats Fund)라는 조직을 2009년에 새롭게 세운 것이다. 이 조직은 인류를 위협하는 전세계적인 위험에 대해서 미래를 보다 안전히 지킬 수 있는 해결책을 찾고, 협력을 강화하며, 행동을 취한다(to confront global threats imperiling humanity by seeking solutions, strengthening alliances, and spurring actions needed to safeguard the future)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스콜 글로벌 위험 펀드가 해결코자 하는 다섯가지의 최우선 위험 요소는 기후 변화, 물 부족, 전염병, 핵무기 확산, 중동 지역 내 갈등이다. 스콜은 이 글로벌 위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혹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요소들이라고 정의한다. 스콜 글로벌 위험 펀드는 이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레벨의 커뮤니케이션을 촉진시키고, 다양한 섹터와 플레이어들의 협업을 이끌어내며, 정보를 생산하고, 혁신적인 모델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제프 스콜은 굳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했을까? 이에 대해 스콜은 이 위험 요소들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에 결코 단일 국가, 단일 조직의 힘으로 맞설 수 없기에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당장 즉각적이고 심각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향후 5년에서 10년 안에 상황이 훨씬 나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스콜 재단이 사회적기업가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분야,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소녀들을 교육하거나 인도에 농업 용수 관개시설을 마련하는 활동은 대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그 성과를 거두는데 오랜 기간이 걸리지만 전세계적인 위협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다섯 가지 위험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으며, 기존과 다르고 신속한 방법의 개입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재단 외부의 전문가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문제들이다.
이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돼지 독감이 창궐했을 때 구글 재단의 디렉터이자 역학자, 전미 생물감시 자문의원회의 의장이였던 래리 브릴리언트(Larry Brilliant)는 인플루엔자 백신이 부족한 상황을 바로 깨달았다. 특히 전통적인 백신 생산자들과 계약을 맺고 있던 서구의 선진국들이 공급량을 독점하면서 개발도상국 정부는 백신을 구하지도 못하게 되었는데, 이에 래리는 기존 백신만큼의 예방 효과는 미치지 못하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하면서도 기초적인 면역은 마련해줄 수 있는 백신을 만드는 MedImmune이라는 회사를 게이츠 재단과 연결해주었다. 이들은 게이츠 재단의 후원을 받아 백신 개발에 바로 착수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기존 생산자들보다 빨리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서방국에서도 이들의 백신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재빠른 대응은 하룻밤 사이에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에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혁신적이고 기업가적인 조직만이 할 수 있다. 래리 브리리언트는 2009년 스콜 글로벌 위험 펀드가 설립되면서 이 조직의 대표를 맡게 되었고, 오늘날 보스턴 어린이 병원 및 미국 공공 보건 위원회와 함께 Flu Near You라는 프로젝트를 탄생시킨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무료 백신을 맞는 대신 그들의 관련 건강 데이터를 1주일에 한번씩 보고하는데, 이 데이터는 구글 재단의 협력으로 관리되고 있다. 만 13살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현재 5만명이 참가했으며, 백신 접종 이후 참가자들의 건강 반응과 이들의 면역 준비 정도 등의 데이터는 현재 새로운 인플루엔자의 창궐시 협력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 즉 정부의 공공 보건 관료, 의료 연구자, 재난 대해 조직 뿐만 아니라 정보가 필요한 누구나에게 공개되어 있다.
이 세상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제프 스콜
이미지 출처: Barefootagainstpoverty
자선가로서 제프 스콜의 커리어는 이제 막 10년을 넘겼을 뿐이지만 그는 쉬지도 않고 매번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서사하는 다채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콜 재단, 스콜 월드 포럼, 파티시펀트 미디어, 테이크파트, 스콜 글로벌 위험 펀드 등 제프 스콜의 이 모든 다양한 활동은 이제 하나의 포트폴리오로서 제프 스콜 그룹(Jeff Skoll Group)이라는 운영 조직을 통해 관리 되고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모를 일이나, 제프 스콜 그룹에 새로운 조직이, 혁신적인 활동이 추가될 확률은 분명 꽤 높아 보인다.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상상하던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어 거침없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나가고 있다. 제프 스콜과 그의 이야기가 정말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제프 스콜의 기부 서약(Giving Pledge, 2010년 7월 20일)
나는 캐나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의 꿈은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옥션웹(AuctionWeb)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경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출내기 회사의 첫 정규 직원이자 대표가 되었다. 이 회사는 이후 이베이(eBay)로 더 알려지게 된다. 1998년 이베이가 상장되었을 때, 난 모든 빚과 5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쓰는 작은 집을 뒤로 하고, 갑작스럽게 수 억 달러에 달하는 회사 주식을 갖게 되었다.
이때까지 나는 사회공헌에 대해 그리 많이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종이 조각으로 새로운 부를 얻게되자, 나는 스마트한 방법으로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데 이 돈을 쓰고자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한 일은, 1999년도에 스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스콜 재단은 전세계 사회적기업가들이 더 큰 사회적 임팩트를 내도록 돕는 선도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매년 우리는 전세계 곳곳에 있는 혁신적인 사회적 기업가들을 발굴하고 -Partners in Health의 Paul Farmer와 Camfed의 Ann Cotton과 같은 사람들- 그들을 몇년에 걸쳐 지원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사회적기업가정신을 주제로 ‘스콜 월드 포럼’을 옥스포드 대학에서 매년 개최한다. 나는 우리의 파트너들이나 스콜 재단의 지원을 받는 기업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나의 영웅인 존 가드너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이들에게 베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던 원래의 나의 꿈을 다시 살리기 위해 나는 파티시펀트 미디어라는 조직을 설립했다. 이후 우리는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 <연을 쫓는 아이 The Kite Runner>, <찰리 윌슨의 전쟁 Charlie Wilson’s War>, <불편한 진실 The Inconvenient Truth>,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The Cove>, <시리아나 Syriana> 등을 포함하는 25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우리의 영화들은 18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총 4번의 수상을 이뤘다. 그러나 이런 수상 사실보다 나는 이들 영화가 인권,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후변화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와 관련하여 큰 영향력을 만들어냈다는 데에 더 큰 보람을 느낀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의식있는 시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테이크파트라는 이름의 소셜 액션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나에게는 파티시펀트 미디어도 또다른 형태의 사회공헌이며, 세련되게 전달되는 좋은 이야기들은 사회 변화에 영감을 주고 움직이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2009년, 나는 인류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스콜 글로벌 위험 펀드라는 새로운 재단을 설립했다. 우리가 처음 목표한 다섯가지 이슈는 기후변화, 중동 평화, 핵무기, 전염병 및 물부족 문제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지금 당장 함께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문제들이다.
나는 최근 11년 동안 이미 절반 가량의 재산을 내가 만든 이 조직들에게 기부하였다. 앞으로 내가 사는 동안에도, 혹은 사후에도 내 모든 재산이 인류를 위한 사업에 쓰일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계몽된 이기주의를 깨우치고, 시민 참여를 활성화하며 정치적 동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나갈 것이다. 나는 지속되는 사회적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방법들에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콜 월드 포럼이나 테이크파트처럼, 모든 곳 모든 모습의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변화의 동력을 한데 모으는 촉매적인 메커니즘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노력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같이 동참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넓고 복잡한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더 밝은 내일을 물려줄 수 있기 위해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 콘래드 힐튼(Conrad Hilton)은 성공한 이들이 그들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사회에 다시 그 공을 돌려주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말했다. 나는 교육과 성실함, 올바른 선택의 가치를 알고 장려하는 두 나라인 캐나다에서 성장했고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나의 꿈을 계속 좇을 수 있었음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공헌들이 비록 작더라도 지속가능한 세상을 평화와 번영의 길로 이끌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부서약은 미국의 가장 부유한 이들을 대상으로 자선과 관련한 코즈에 대해 그들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기부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억만 장자들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2010년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의 참여로 세상에 알려졌다. 동 컨텐츠의 원문은 다음 주소(http://givingpledge.org/#jeff_skoll)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성: 박혜린 (IBR 편집부, helin@impactsquare.com)
Impact Business Review 는 임팩트 비즈니스 섹터 리더들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한 국내 최초의 경영 레퍼런스 매거진입니다. 본 아티클이 실린 창간준비호에서는 "Money with Purpose"를 스페셜 포커스 주제로 다루었고 창간호 3월호는 "Rethinking Urban"이라는 표제와 함께 임팩트 비즈니스 섹터의 다양한 지식과 인사이트를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