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세계경제포럼의 주제,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출처 : 나무위키
2012 세계경제포럼의 주제,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올해로 42회째를 맞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일명 다보스포럼)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경제, 정치, 학계의 리더들이 모여 제반 경제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대표적 토론장입니다. 지난 1월에 열렸던 다보스포럼은 2008년 이후의 전세계적 금융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탐욕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인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의 물결 속에서 어떤 연사들이 어떤 주제로 논의를 펼쳐 나갈지 많은 주목을 받았었죠. 그런데 그동안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전도사로서 기능해오며 수많은 비판과 시위를 직면해왔던 과거와는 달리, 올해 다보스포럼은 현재를 ‘자본주의의 위기'로 상정하고 과거에 대한 반성과 이에 기초한 미래 성장 전략에 대한 담론이 주를 이뤄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올해 포럼의 주제였던 ‘거대한 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The Great Transformation: Shaping New Models)’이라는 문구였습니다. 그간 신자유주의 일변의 경제 체제가 낳아 온 사회 문제들에 대해 성찰하고,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올해 다보스포럼의 성과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사실 ‘거대한 전환'이라는 말은 다보스포럼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경제 인류학자인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70여년 전에 발표했던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죠.
제목에 담겨있는 그의 생각은, 사람들이 모여 이룬 사회의 안녕을 위하는 방향으로 현재의 경제 체제가 재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간의 주류적 경제를 뒷받침하는 전통적 학자들의 사상과는 조류를 달리 하고 있는 폴라니의 저작을 다시 화두로 던졌다는 것은 분명 짚고 넘어갈 만한 사실입니다. 폴라니는 누구였고,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업적을 남겼기에 현재의 전세계적 경제 위기에 대한 성찰의 아이콘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나아가 최근 십여년간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생산하는 임팩트 비즈니스(Impact Business)와는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의 테마캐스트는 칼 폴라니를 시작으로 해서 사회적 경제가 움직이는 원리를 해석하고 분석한 주요 사상가들의 아이디어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실험들을 알아보며 임팩트 비즈니스를 둘러싼 이론적 배경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칼 폴라니, ‘시장은 현대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칼 폴라니는 헝가리 출신의 경제인류학자로서, 서양 세계의 시장자본주의 체제 분석을 주 연구 과제로 삼았던 지식인입니다. 구체적으로 그의 연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들이 많습니다. 우선 분석의 대상이 되는 역사적 시기가 다른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같이 오래 전의 역사입니다. 시장자본주의의 요소들이 아직 모습을 갖추기 이전인, 미개한 경제 행위만 있었으며 따라서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이야기 해 온 시대이지요. 하지만 폴라니는 트로브리안드 지역의 쿨라 교역, 메소포타미아 고대 제국의 산물 분배 등에 관한 구체적 사료와 문화 분석을 통해 고대 경제에도 교환 행위, 즉 시장이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고대 교역 행위의 세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혜성(Reciprocity)
정치적,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 혹은 개인 간에 선물을 주고 받는 식의 교환 행위입니다. 그의 쿨라 교역 분석을 따르면, 당시에 여러 섬들 간에 이루어졌던 붉은 조개 목걸이 및 흰 조개 팔찌의 교환은 경제적 성격을 거의 띠지 않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즉,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각 사회 내 서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개인 간에 일종의 평화조약으로서 기능했다는 것입니다.재분배(Redistribution)
한 국가 내에서 왕이나 지배 계층이 각 지역의 생산물을 거두어 들인 다음, 다시 각 지역으로 하사하는 형태의 교환을 말합니다. 현대에서 중앙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들여 지방 정부에 복지 예산 등의 형태로 다시 나눠주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죠. 폴라니는 이것도 마찬가지로 중앙 정부가 지역 세력에 대해서 정치적 우위가 있었기에 그러한 교환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지, 경제적 부를 쌓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분석합니다.교환(Exchange)
우리 모두가 익숙한, 상대와 내가 가진 것을 서로 바꾸는 활동입니다. 하지만 고대에는 지금처럼 전국적 규모의 시장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아주 부분적인 지역 내에서 간헐적으로 시장이 열렸다고 합니다. 풍년이 들거나 부족한 물품이 있을 경우 그 때 그 때 시장을 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장이 열리는 주기도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죠. 게다가 위 두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았던 형태였다고 합니다.
‘자기조정적 시장’의 출현: 경제와 사회의 분리
어려운 이야기들을 요약하자면, 근대 이후 사회를 사는 합리적 개인의 전유물로 생각되었던 교환 행위, 그리고 시장이 고대에도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이 시장은, 교환하면 으레 가격이 생각나듯 가격을 설정하는 시장이죠. 이 때 단일 화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물품 간의 비교적 일정한 교환 비율이 존재했을 경우, 가격 설정 기능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 그 경제적 행위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나 위치, 정치적 맥락 등과 같은 사회적 조건에 ‘묻혀 들어가 있었다(Embedded)’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력이 강한 두 부족 간에 생산물을 교환하는 행위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경제적 이익에서만 비롯되거나 그 교환비율을 명시하는 것이 아니라 두 부족 간의 우호적 관계 유지, 친분 쌓기 같은 사회적 맥락의 하부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이죠. 이런 사회적 억제 때문에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은 부분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칼 폴라니는 그동안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온, 교환 행위를 바탕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시장이라는 제도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것이라는 명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주 옛날부터 교환을 모태로 하는 시장 제도는 존재해 왔다는 것이죠. 그는 나아가 사회 속에 묻혀 있었던 경제 체제가 근대 자본주의로 어떻게 이행할 수 있었는지를 연구합니다. 이를 통해 근대 시장자본주의 경제의 등장을 가능케 한 네 가지 제도를 제시했습니다.
세력균형체계
강대국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통해 장기적으로 전쟁을 억제시키는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었던 세계 정치 역학 구조를 말합니다.국제 금본위제
금본위제란 화폐 단위의 가치가 일정량의 금의 가치와 등가관계를 유지하는 화폐제도를 말합니다.자유주의 국가
개인의 자유를 최대의 가치로 상정하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 권력의 개입이 최소화된 형태의 국가 제도를 말합니다.자기조정적 시장
폴라니는 마지막 자기 조정적 시장이 이 체제의 근본적 기반이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자기조정적 시장은 근대 국가의 출현 과정에서 탄생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들어 강력한 국민 국가를 건설하려던 절대 군주들은 지방의 독자적 세력들을 퇴출시키는 노력들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방 도시가 무너지고 지역 시장이 철폐되는, 즉 사회적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국 규모의 시장이 나타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제적 ‘시장’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근대적 시장의 등장 이후 19세기 중반 영국 정부가 실시한 자유무역, 금본위제, 구빈법 철폐 등의 조치들은 시장자본주의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모습으로 거듭나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폴라니가 ‘자기조정적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라고 명명한 이 체제는 이제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 요소로서 투입되는 모든 산물들의 가격을 매길 수 있는 메커니즘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즉,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 ‘묻혀 있어’ 드러나지 않았던 경제적 조건이 돌출되어 ‘튀어나오는(Disembedded)’ 과정이 국민 국가 건설을 위한 이런 일련의 역사적 작업들의 과정과 동일했던 것이지요. 여기서 이제 시장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시장의 모습을 갖추어 갑니다. 현대 시장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자기조정적 시장은 경제 활동에 필요한 투입물과 산출물들의 가격이 자유롭고 탄력적으로 결정되어야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즉, 핵심 투입물인 노동, 토지, 화폐가 상품화되어 개별 시장을 형성하며, 그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죠. 이를 다시 말한다면, 가장 적은 투입으로 가장 많은 산출을 낳는 형식적 합리성의 가치가 다른 모든 사회적 가치들을 압도하는 지배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조정적 시장의 ‘이중적 운동’
자기조정적 시장의 기능을 위한 조건들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노동입니다. 노동은 진짜 상품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들의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동(인간의 노력), 토지와 자원(자연) 등이 출현하고 그 가격이 결정되는 이 시장을 두고 폴라니는 ‘허구적 상품'의 등장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노동의 탄력적 결정’이라는 것은 수요, 즉 경제적 상황에 따라 노동 공급의 양을 줄이고 늘리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바로 해고와 고용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것은 분명 자기조정적 시장이 완전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고용 안정성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뜻하기도 합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의 대량 정리해고 사태, 최근 몇 년 동안 문제가 되었던 경제 인구 내 비정규직 인력 비율의 상승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토지를 포함하는 자연 시장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정된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과 남용은 결국 오늘날의 환경 오염, 자원 고갈과 같은 결과를 낳았으니까요.
이렇듯 자기조정적 시장은 사회에서 분리되어 튀어나온 자유주의적 시장 질서 하에 사회 전체가 재구성되는 과정이 핵심이지만, 결국 그것은 사회의 바탕이 되는 인간과 자연의 존재적 안정성을 크게 위협하기에 동시에 사회가 시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이중적 운동(Dual Movement)’의 양상을 보입니다.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인간과 자연, 심지어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기업들까지도 자생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부단한 노력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계속되어 오고 있는 노동조합 운동, 사회 보장제도의 강화, 중앙은행의 금융시장에 대한 개입, 시장거래의 공정성에 대한 감독 및 규제 등의 장치들은 그 좋은 예가 되겠죠. 이런 보호 장치들은 분명 시장의 기능을 위축시키는 것이지만, 반면에 생산 요소의 질이 떨어지고 와해된다면 결국 시장자본주의도 그 토대를 잃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기조정적 시장의 유지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이너스가 되는데 플러스도 되는, 그야말로 모순적 시스템인 것이죠. 폴라니는 이러한 이유들로 자기조정적 시장은 구조적 모순을 가진, ‘완전해질수록 불완전해지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합니다.
폴라니 이후의 현대 이론가들
소개해드린 폴라니의 사상,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라 처음 접하신 분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한데요. 폴라니가 역사적인 관점에서 자기조정적 시장의 탄생을 이론적으로 밝혀내는 데 주력했다면, 지금부터는 폴라니 이후의 현대 이론가들이 그가 이야기한 '정치사회적 맥락속에 묻혀 있는 경제'를 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맥락에 적용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노력을 알아볼까 합니다. 마이클 포터의 공유가치창출로 시작해서 혼합가치, 트리플 바텀 라인, 필란트로캐피탈리즘, 비즈니스 생태학, 끝으로 조셉 스티글리츠의 세계화 논의에 이르기까지, 폴라니의 뒤를 잇는 현대 주요 인물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경제와 사회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극복하고 이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서 창출되는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 오늘날 빅 아이디어(big idea)를 소개합니다.
(참고로 이들이 폴라니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폴라니의 사상을 중심으로 임팩트 비즈니스의 이론적 뿌리를 찾으려는 저희의 시각에서 이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맥락을 저희 나름대로 해석하여 정리한 내용임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지난해 12월 하버드 경영 대학의 경영 전략 분야의 구루(Guru)인 마이클 E. 포터 교수가, 국내 한 언론사가 개최한 비즈니스 포럼의 연사로 내한하여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라는 개념을 설파하였습니다. 공유가치창출은 원래 지난해 1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같은 이름의 논문 <공유가치창출 Creating Shared Value>에서 제시된 개념으로, 기업의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서로 대비되는 대신 함께 공존하는 공유가치를 창출해야한다는 내용이 그 핵심입니다. 이에 대한 국내 기업 경영진과 정부 및 비영리 섹터 관계자들의 높아진 관심이 마이클 포터 교수의 내한으로까지 이어졌고, 현재에도 기업들 사이에서 CSV 개념과 도입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비즈니스 섹터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비슷한 CSV에 관심을 보이고, 순수한 영리 비즈니스의 경영 전략 분야를 개척하고 이후 뛰어난 연구 커리어와 업적을 닦아오던 마이클 포터 교수가 사회적인 맥락까지 고려하는 이런 CSV 개념을 주창하게 되었을까요?
포터 교수는 그의 논문 서두에 그 답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현재 자본주의는 어려움에 처해 있고, 자본주의를 움직였던 그간의 기업 활동이 사회와 환경 문제의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정당성 위기에 빠졌기 때문에 당장 고쳐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경영 전략의 기본적인 전제부터 바꿀 수 있는 접근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공유가치창출(CSV)이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자본주의는 영리 비즈니스는 경제적 가치 창출에만 집중하여 사회에 부와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데에 기여하고, 비영리 기관을 비롯한 정부 등 공공 부문은 경제적 가치 창출 과정에서 외부 비용화 된 사회, 환경적 문제들을 해결하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일부 기업들이 자선적인 목적을 달성하거나, 평판을 높이고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적 책임 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단편적이고 본연적인 전략과도 일치한다고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공유가치창출은 기후변화나 의료, 교육, 주거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 속에 새로운 비즈니스와 시장 창출의 기회,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전략 코드가 숨어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예시로, 네슬레라는 회사가 만약 순수하게 이익과 비용의 효율만 생각했더라면 커피 원두 생산자들에게 금융과 농법 개발을 지원할 필요도, 커피 원두 가격을 정상 가격으로 쳐줄 이유도, 원두 재배지를 친환경적인 생산 지역으로 가꿀 필요도 없었겠지만, 정부나 비영리 단체가 직접 해야할 일을 경영 전략에 통합함으로써 네스프레소(Nespresso) 커피와 같은 고급 커피 원두를 수급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고대부터 시장이라고 믿어온 인간의 활동 속에 이미 사회적 맥락이 통합되어 있었다는 폴라니의 통찰력과, 사회적 기회를 끌어 안은 포터의 공유가치창출 경영 전략이 닮아 있지 않은가요?
제드 에머슨(Jed Emerson)
제드 에머슨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론가 내지 임팩트 비즈니스 분야의 전략가입니다. 에머슨은 혼합가치(Blended Value)라는 개념을 주창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이분법적으로 구분했던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통합하고, 이를 수행하는 조직의 형태와 섹터를 분류하여 전략 지도를 제시하였습니다. 먼저 가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흔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서 지불하고 교환을 할 때에는 가치라는 개념을 빼놓을 수 없죠. 주류 경제학에서는 소비자 혹은 교환의 당사자로서 무언가에 지불하는 행위가 눈에 보이는 교환물이 내재하고 있는 더 크고 보이지 않는 가치로부터 발생하는 효용을 위해서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업이라는 형태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알려져 있고, 기업은 특정한 미션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담아 상품/서비스를 제안하게 되죠.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느끼는 기업의 상품으로부터 느끼는 효용은 ‘싸다', ‘크다', ‘좋다', ‘효율적이다', ‘빠르다' 처럼 경제적인 관념과 연결된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 ‘아름답다', 평등하다', ‘도움이 된다', ‘자연적이다' 등등의 가치들은 비영리 조직이나 정부 기관이 서비스로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드 에머슨은 혼합가치를 주창하면서, 영리 기업이든 비영리 조직이든 어떤 특정한 미션을 가진 조직이라면 누구나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3가지에 해당하는 가치를 통합적으로 창출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조직의 성격에 따라 그 혼합가치의 구성 비율이나 특정 가치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다를 수는 있기 때문에, 그 성격에 따라 섹터를 구분한 혼합가치 지도(Blended Value Map)까지 정리하였습니다. 혼합가치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려고 하는 섹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래 5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경영 활동으로부터 발생되는 부정적인 사회/환경 효과를 제거하거나, 재량적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다양한 활동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사회/환경적 문제 해결 자체로부터 사업 기회를 발견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적 방법론을 통해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 활동사회적 투자(Social Investing)
사회, 환경적 영향을 고려한 일반 기업에 대한 투자인 사회책임투자(SRI)와 직접 긍정적 영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조직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를 포괄하는 투자 및 금융 활동전략적/효과적 자선 활동(Strategic/Effective Philanthropy)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보조금을 제공하는 단순한 기부를 벗어나, 경제적 효율성과 전략적 차별성을 고려하는 재단 및 비영리 조직의 자선 활동 혁신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신재생 에너지 개발, 윤리적 소비 및 생산 등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 및 활동들
존 엘킹턴(John Elkington)
다음으로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기업의 책임(corporate responsibility)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존 엘킹턴을 소개하겠습니다.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SustainAbility 와 Volans 라는 조직을 설립하여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성, 사회적 혁신에 관한 연구 및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그는 1994년 기업이 창출 혹은 파괴하는 가치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관점에서도 측정해야 한다는 트리플 바텀 라인(triple bottom line)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합니다. 이 용어는 이후에 대중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사람(people), 지구(planet), 이윤(profit)의 첫 알파벳을 딴 3P 라는 개념으로 가다듬어 지는데요. 그의 생각은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와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 (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es) 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경제, 사회, 환경 영역에서 통합적인 가치 창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1990년대 그의 생각은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세 영역을 구분 짓지 말고 교집합을 그리는 지점에서 창출되는 가치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혁신을 통한 비즈니스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회적기업가들을 소개한 그의 책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 (원제: The Pwer of Unreasonable People)> 은 큰 기업의 역할보다 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를 실천하는 사회적기업가들의 역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그의 현재 지향점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영리와 비영리 사이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면서 이 두 영역이 만나는 지점이 점차 넓어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경제, 사회, 환경적 가치가 나타남을 강조합니다.
매튜 비숍(Matthew Bishop)
현재 이코노미스트지의 뉴욕지부 편집장을 맡고 있는 매튜 비숍은 필란트로캐피탈리즘이라는 용어를 동일 제목의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소개하였습니다. 자선(philanthropy)과 자본주의(capitalism)를 결합한 필란트로캐피탈리즘, 우리말로는 박애자본주의로 번역할 수 있는데요, 자선과 임팩트스퀘어 네이버 블로그의 카테고리도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한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이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박애자본주의> 책의 사이트 에서는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미시적 차원에서 필란트로캐피탈리즘은 영리 자본주의 세계에서 비즈니스가 일어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자선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흐름을 가리킨다. 기업가들은 (자선 활동을 할 때) 단지 수표를 끊으려고만 하지 않고 직접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싶어한다. 두 번째로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정의하는 필란트로캐피탈리즘은 자본주의 자체가 인류의 선(善)을 위해 작동하는 자선의 성격을 갖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가 신상품, 높은 품질, 낮은 가격을 통해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혁신을 이끄는 차원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승자들이 부를 획득하는 과정의 필수적인 요소로 사회 환원이 자리잡는 것이다. 특히 금융 위기를 이후로, 점차 더 많은 비즈니스 리더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여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있다."
매튜 비숍은 빌게이츠,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와 같은 세계적인 거부들, 그리고 U2의 보노,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유명 연예인들의 자선 활동에 주목하며 이들의 자선활동이 자신의 부와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한 단계 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자선 활동은 비영리, 비즈니스, 정부의 혁신적인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자선 활동과 역시 차별화되는데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예산이 점차 삭감되는 추세에서,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지닌 이들의 자선 활동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그는 보고 있습니다.
폴 호켄 (Paul Hawken)
환경 운동가이자 기업가이자 경영 분야 내 저명한 저술가이기도 한 폴 호켄은 환경주의의 관점에서 비즈니스라는 기업활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재정의해야할지에 대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시사합니다. 1993년 처음 출간되어 이제는 고전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인 <비즈니스 생태학(원제: Ecology of Commerce)>은 비즈니스와 환경 및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그의 철학을 가장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는 생태계와 인본주의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영리만 추구하는 기업활동은 지양되어야 하며 이러한 활동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지적합니다. 전통적인 비즈니스 활동이 필연적으로 환경적 비용과 사회의 희생을 발생시키고 그것을 당연히 여겼다면, 폴 호켄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비즈니스에서 찾되 구조적인 변화를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즉, 모든 비즈니스 활동이 자연과 생태계에 걸맞도록 새롭게 구조화 되고, 서로 공존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새로운 미래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이지요. 개인이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만들고, 물과 전기의 절약에 앞서 화석연료를 태양에너지와 같은 친환경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그의 제안들은 바로 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비즈니스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파는 제도가 아니다. 비즈니스는 서비스, 창조적 발명, 윤리관을 통해 인류 보편의 복지를 증진하겠다는 약속이다.“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미국 행정부와 국제경제기구가 주도하는 세계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그의 저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원제: Making Globalization Work)>에서 세계화에 대한 반성과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지적재산권에 균형과 조화를 불어넣는 법’, ‘뜨거워지는 지구를 구하라', ‘다국적기업의 사회적 책임', ‘세계통화를 통한 글로벌준비제도의 개혁' 등의 챕터 제목만 봐도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세계화 자체가 곧 전세계적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불공정한 세계화’가 그것을 양산하는 것이며, 따라서 제목과도 같이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세계화를 새롭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라는 비전을 향한 스티글리츠의 역사적 사명과도 같은 노력은 다음의 구절에서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부자들과 권력가들을 위한 세계화가 아닌 극빈국을 포함한 전 인류를 위한 세계화를 달성해야만 한다. 그 길은 멀고도 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시작할 때다”(<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p474)
다음 자본주의를 위한 정부의 실험
여지껏 살펴본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를 둘러싼 담론들은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나아갈 일종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통적 의미의 자본주의와 시장 구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점을 제시하고,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사회적 문제가 이러한 시장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실패의 결과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와 시장 실패에 대한 적절한 해결 방법 또한 오늘날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시도들과 자원들을 활용하는 데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지칭하는 키워드들이 이제는 우리에게도 많이 친숙해진 지속가능경영, 기업의 사회적책임, 공유가치 창출, 사회적기업가정신, 전략적 비영리 등과 같은 개념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노력과 혁신들은 보다 조직적인 지원과 효과적인 보상을 통해 더욱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들이 다양한 사회적 가치제안에 대해 성과를 내고 지속적으로 확대된다면 오늘날의 자본주의 또한 보다 발전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 막 태어나고 있는 임팩트 비즈니스 생태계의 밑거름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들의 노력을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까 합니다.
미국, ‘임팩트 경제(Impact Economy)’라는 새 판을 짜다
작년 6월, 새로운 리더십, 아이디어, 가치에 대한 연구와 활동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국제적 비영리 조직인 미국의 Aspen Institute(참고로 Aspen Institute의 대표는 우리가 잘 아는 스티브 잡스 전기를 직접 쓴 월터 아이작슨입니다.)는 백악관과 함께 “미국의 임팩트 경제 구축하기”(Building an Impact Economy in America)라는 이름의 정상회의를 개최합니다. 이 자리에는 백악관과 미국 정부 부처의 주요 인사들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 금융회사, 기관 투자자 및 대형 민간재단 등 다양한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여 ‘임팩트 경제’라는 새로운 화두에 대해 논의하였지요. 그렇다면 이들이 정의하는 ‘임팩트 경제’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재무적 수익 기대를 넘어 사회적 편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와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정의할 수 있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와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이 만나 재무적 수익과 더불어 사회 및 환경적 임팩트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 생태계를 의미합니다. 전통적 경제학의 시장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가지 동력을 전제한 데에서 출발했듯, 임팩트 경제라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임팩트 투자와 사회적기업가정신을 그 근간이 되는 두 가지 축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 창출이 서로 대척점에 있다는 기존 관점 대신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하고 증진시키는 관계에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이러한 맥락에 따라 혁신과 지속적인 성장은 바로 이 임팩트 경제 시장이 올바르게 작동한 결과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는 계속 누적되는 가운데 장기화된 경제 불황으로 인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재원은 오히려 부족해져가고, 자본주의는 그 성장 동력과 활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시 환경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위와 같은 포럼을 통해 지속적으로 투자자, 기업경영진, 자선가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심도깊은 토론을 통해 임팩트 경제의 발전 방향을 짚어보면서 이를 위한 시스템적인 지원과 법률적 장애물 개선을 통해 지속적이고 통합적인 성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임팩트 창출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조직의 법적 근거 도입(예시: Benefit Corporation), 임팩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자본 조성 및 관련 법률 개정(예시: US Small Business Association의 Impact Investing Initiative, 백악관의 Social Innovation Fund), 임팩트 경제 참여자들의 활동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 개발(예시: GIIN의 Impact Reporting and Investment Standards) 등과 같이 생태계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지원책을 정부가 적절히 도입함으로써 임팩트 비즈니스를 활성 및 확장하고, 이에 기반해 임팩트 경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또한 미국 정부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과 제도적 변화가 미국 내에만 머물지 않고 전세계로 확대되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 방안들의 발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 예로 미국 정부는 최근 4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의 주도 하에 열린 글로벌 임팩트 경제 포럼(Global Impact Economy Forum)을 통해 국제개발 분야 내 임팩트 경제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보다 효과적인 원조와 개발을 도모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이제는 비교적 그 개념이 친숙해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과 임팩트 경제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참고로 작년 부산에서 개최된 세계원조총회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은 한국의 세아상역이라는 회사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티에 민간 기관과 정부와 협력하여 의류공장과 학교를 건설한 프로젝트를 수차례 언급하며, 기업과 민간, 공공영역의 협력에 기반한 임팩트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부를 뛰어넘는 더 큰 사회를 그리다, 영국의 Big Society
매년 연말이 되면 들려오는 단골 뉴스인 각종 단체들의 ‘올해의 단어’ 선정 소식은 우리에게 그 해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해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중에서도 옥스포드대 영어사전 편찬위원들이 각각 영국과 미국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가 아마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지는 뉴스일텐데요. 그렇다면 혹시 2010년 선정된 영국의 올해의 단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 답은 바로 2010년 5월 취임한 보수당 출신의 데이빗 캐머런 영국 총리가 제시한 정책 아젠다인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입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출처 : Third Sector)
빅 소사이어티, 우리말로 ‘큰 사회’로 번역되는 이 정책 기조는 오늘날 위기에 처한 시장과 한정된 재원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부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해답으로 사회, 즉 공동체라는 가치를 제시합니다. 다양한 정책과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현재 이 빅 소사이어티의 계획 아래에서 공동체 의식에 근거한 시민사회 역량의 육성과 활용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모여 있는데요. 기존의 중앙정부가 담당하던 권력과 공공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지역 사회로 옮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빅 소사이어티 정책은 크게 다섯가지로 분류되는 우선적 실행방향을 제시합니다.
지역 사회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주민들이 자신의 지역사회 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중앙 정부에서 지방 정부로 권력을 이전하고,
협동조합, 자선단체, 사회적기업과 같은 조직들을 지원하며,
행정 정보를 시민에게 모두 공개한다.
큰 정부 대신 큰 사회를 그리기 위한 캐머런 총리와 영국 정부의 이러한 정책 제안은 작은 정부 지향과 시민보수주의라는 보수정당의 이념에서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경제 침체로 인한 정부 지출 삭감이라는 부담을 해결하기 적합한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비판의 근거로 작용하기도 하지요.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액션 플랜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인력이 현재로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 이론가들의 공동체 자치 방식으로 공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때 자연히 따라오는 그 효과성에 대한 의문, 필요한 재원 마련의 문제 등이 그 대표적인 비판의 논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 천착하기보다는 현재 시도되고 있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들의 함의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10년 빅 소사이어티 이니셔티브를 제창하며 영국 정부는 우선 Eden, Sutton, Windsor and Maidenhead 등의 도시들을 다양한 빅 소사이어티 시민 프로그램의 시범 지역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어 지역 사회의 활동가들과 시민단체의 지도자들을 모아 빅 소사이어티 네트워크라는 전국적인 시민 조직을 발족하고, 각 공동체 조직의 리더와 청소년 활동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 계획도 발표했지요. 이중에서도 가장 큰 반향을 불러왔던 계획은 빅 소사이어티 캐피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사회투자시장과 제 3섹터 시장의 육성을 목표로 하는 금융기관 설립 아이디어입니다. 약 6억 파운드 상당의 초기 재원 투입이 약속된 이 프로젝트는 사회적 가치를 발생시키는 투자와 비즈니스에 자금 중개와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빅 소사이어티가 목표하고 있는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생태계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투자를 담당합니다. 무상공여를 배제하고, 영리와 비영리의 구분 없이 사회적 임팩트를 실제로 창출할 수 있는 자금 수요에 투자하며, 관련 지표의 활용을 통해 결과까지 철저히 평가하는 독립적인 금융기관의 설립, 이러한 투자 재원의 혜택을 활용할 시민인력 양성과 실행에 적합한 환경 제공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이러한 영국 정부의 시도, 그 성과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사회와 경제의 통합을 시도하는 임팩트 비즈니스
지금까지 칼 폴라니에서 시작해 마이클 포터, 제드 에머슨, 존 엘킹턴, 매튜 비숍, 폴 호켄, 조셉 스티글리츠의 이론을 살펴보고 이어 미국, 영국의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정책의 흐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체적인 논의의 범위나 주장은 다를지 모르지만, 이들 모두가 기본적으로 공통된 흐름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랫동안 서로 분리된 것으로 여겨졌던 영역(경제와 사회, 투자와 사회적 임팩트, 영리와 비영리) 간의 교집합 혹은 합일을 논하면서 오늘날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해결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의견들이 임팩트 비즈니스에 시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임팩트 비즈니스는 좌우파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fad(일시적 현상)인 것일까요, 진화된 자본주의를 시도하는 대안적 방법일까요. 아무래도 그 분석의 출발점은 임팩트 비즈니스의 정체성에서부터 찾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임팩트 비즈니스는 미션과 비전, 비즈니스 모델, 상품/서비스의 가치 제안 자체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고자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어 그렇게 짜여져 있습니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설립한 빈곤층의 자립을 위한 소액대출은행인 그라민뱅크, 인도의 안과의인 고 벤카타스와미 박사가 설립한 저소득층을 위한 백내장 및 녹내장 무료 치료 병원인 아라빈드 안과 병원 등의 사례를 본다면 이해가 쉽겠죠.
앞서 소개한 폴라니의 프리즘으로 임팩트 비즈니스를 본다면, 사회가 자기조정적 시장 질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기능이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국경의 범위를 넘어서는 글로벌 협력 관계의 구축은 전인류적 가치의 증진을 최우선에 놓는다는 점에서 발전된 면모도 보인다고 할 수 있겠죠.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노동조합운동 등이 그동안 이룩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특정 조직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꽤나 두드러지는 차별화 요소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뛰어넘는 임팩트 비즈니스의 의의는, 바로 자기조정적 시장의 등장으로 분리되었던 경제와 사회를 재통합하려는 시도라는 데 있습니다. 자기조정적 시장이 상정하는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선택을 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분리된 로빈슨크루소적 모습입니다. 그러나 임팩트 비즈니스는 시스템 내의 모든 주체들이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는 활동과 노력들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폴라니의 논의를 참고한다면, 사실 시장 체제로 인해 모두가 잊었던 본연의 인간 모습 중 하나를 다시 되찾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뒤에서 살펴보았던 마이클 포터, 제드 에머슨 등 현대의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것 또한 그동안 분리된 것으로 여겨졌던 두 영역 간의 조화와 공통의 가치 추구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런지요.
아울러 자본주의 체제만의 특별한 요소라고 일컫는 시장과 그 부산물 격인 비즈니스를 활용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즉, 폴라니의 주장처럼 교환, 시장 제도는 자본주의 체제만의 특징이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인간들의 여러 사회 활동들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게끔 해 주는 도구로서 성격을 갖게 됩니다. 교환과 시장, 나아가 기업이 흔히 상징하는 ‘계산상의 합리성’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우와 같이 무조건적으로 배제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유일무이의 절대적 가치 혹은 목적으로 승화된 모습입니다. 따라서 홍기빈 박사의 논의와 같이 서로 다른 여러 차원의 합리성을 견주어보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가치에 기반한다면, 비즈니스도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매개체로서 활용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와 사회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인 것이죠. 이렇게 볼 때 경제 활동이 가져다 주는 지속가능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와 맥락의 합리성을 불어넣고, 사회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 임팩트 비즈니스는 좌파와 우파 사이의 어중간한 경계에 서 있다기 보다는, 사회와 경제의 재통합을 시도함으로써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패러다임 전환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요.
* 이 글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칼 폴라니(박현수 옮김), 거대한 변환, 민음사, 1991
칼 폴라니(박현수 옮김), 사람의 살림살이 II, 풀빛, 1998
Sofia Adam, Social economy and the Greek welfare state: Can Polanyi help us?, EMES, 2009
다보스 포럼이 남긴 과제...대수선 필요한 자본주의, 매일경제, 2012-02-13
작성자 : ISQ 변영진